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쥴리 Feb 25. 2024

내 편이 아닌 사람과의 신혼여행.

그렇게 나와 그는 불안한 신혼여행을 떠났다. 이미 결혼식을 치렀고, 그의 전 재산이 70만 원이고,

그가 속이려고 한 건지 내가 바보여서 흐린 눈을 했던 사실 둘 중에 뭐가 정답인지 가릴 여유가 없었다.

그저 이미 내가 선택한 일이니 내가 앞으로 잘 메꾸어 나가야겠다는 결심을 되새김질하듯이 했다.

그럼에도  목지가 잘못 적힌 배에 어쩌다 올라탄 기분은 내내 사라지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그는 이상한 강박증이 있었다.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나 내가 싫어하는 것에 대해 일부러 관대해지는 강박증.

이게 왜 강박이라고 밖에 표현을 할 수 없냐면 그렇게라도 이해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냥 그런 강박이 있나 보다고 생각을 해야  어떻게든 그를 조금이나마 이해하는 노력을 수 있었으니까.


코로나 시국에 결혼식을 치른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제주로 신혼여행을 갔다.

그런데 정말 우연히 내가 정말 싫어하는 지인을 신혼여행 첫날부터 호텔 식당에서 마주쳤다.

그 지인도 나랑 비슷한 시기에 결혼을 했고, 코로나 시국이라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올 거라는 건 들었지만

굳이 그렇게 마주치고 싶지 않았고, 그도 그걸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참 이상하게도 그런 상황이 닥치면 내가 보는 앞에서 내가 싫어하는 이들에게 더 친절하고 다정하게 베풀었다. 그리곤 꼭 그 타이밍에 나에게 훈계를 덧붙였다. "넌 왜 사회부적응자 같이 구냐? 좀 적당히 해."

마치 내가 일 아닌 것에 사람을 쉽게 싫어하는 사람처럼,

아무 이유 없이 타인에게 예민하게 구는 사람처럼.

왠지 마음이 불편하니 신혼여행 내내 컨디션이 좋지 않았는데 지인을 마주치니 상태가 좋지 않아 졌다.

음식을 먹다가 머뭇거리며 앉아있는 나에게 기다리라 말하고는 그는 굳이 지인과 지인의 배우자에게 인사를 하겠다고 호탕하게 웃으며 떠났다. 30분이 지나서야 돌아온 그는 지인에게 받은 선물이라며 sns에 올려야겠다고 먹던 음식을 내팽개치고 사진을 찍었다.

식은 음식을 다 먹지 못하고 방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는 그의 행동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아 그렇게까지 하는 거냐고 물었지만 그는 자신의 관계라며 네가 사람을 싫어해도 어쩔 없다고  오히려 이상한 사람이라고 화를 냈다. 그리고는 내일 돌아오겠다며 짐을 싸서 호텔방을 나갔다.

많이 비참했고 서러웠다. 사실 그 지인이 싫어진 이유도 그의 직장 동료이자 나의 동창인데 너무 선을 넘는 행동을 해서 싫어졌던 거라서 이유는 정당하다고 여겼지만 그는 그런 말이나 나의 이유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그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는 타인에게만 호인이고 싶어 하는 사람인 것 같다고, 그런데 소름 돋는 건 나는 이제 그에게 '타인'이 아닌 '가족'이라는 것이었다.

 아. 어쩐지 나에게 그렇게 냉소적으로 다그치는 이유는 그에게는 나에게 호인일 이유가 이제 없어서였던가.

그제야 그의 행동이 좀 납득이 되었다. 밤하늘이 예뻤던 제주의 첫날, 나는 방에 홀로 남아

그와 가족이 된 게 전혀 기쁘지가 않다는 생각을 하며 울다가 잠에 들었다.



맞다. 연애 때부터 그는 그런 좋은 사람 호소인 같은 사람이었다. 자기도 없는 주제에 남이 빌려달라고 하면 그렇게 친하지도 않은 사람들에게 선뜻 몇 백만 원씩 빌려주기도 하고 꼭 다 같이 밥을 먹으면 자기가 계산을 해야 하는 그런 포지션을 놓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그런 사람. 그게 때론 좋아 보일 때도 있었지만 막상 부부로 지내기 시작하니 그런 부분이 다 나를 옥죄어왔다.


하지만 그는 매번 시큰둥하게 나에게 화를 내며 회유했다.

 "네가 사회생활을 덜 해봐서, 뭘 몰라서 그런 거야". " 네가 예민해서 그런 거야"

"어른이라면 이렇게 살아야지. 어떻게 사람을 모르는 척 하니?"

"사회적 관계를 중요시해야 살아갈 수 있는 거야".

생각해 보면 돈은 내가 더 열심히 벌어오는데 왜 멍청하게 저런 말을 듣고도 내가 그랬나라고 자아성찰을 했을까. 그에게 나는 무엇이었을까.


그렇게 파란만장한 신혼여행에서 많은 걸 깨닫고 돌아온 나는 많이 지쳐있었다.

돌아온 일상에서 나를 기다리는 건 고된 장거리 출퇴근과, 신혼여행에서 쓴 카드값, 그리고 신혼여행에서 상처받은 마음이었다. 돈은 내 돈대로 쓰고, 마음은 상할 대로 상했다.


그리고 그 서러움을 바쁜 신혼 적응기 가운데 조금씩 잊어갈 때 쯔음, 나는 그가 또 다른 자신의 여자 지인에게 나 몰래 돈을 빌려주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에게 70만 원을 보냈다는 것도 그것 때문이었다는 것도 덤으로 알게 됐다. 고민하다가 그에게 그가 나 몰래 빌려준 돈에 대해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낸 날,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지 딱 2 달이 되던 그날부터 그의 언어적, 물리적 폭력이 시작되었다.

이전 01화 서른셋의 봄, 1년도 안되어 사실혼 정리를 결심하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