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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쥴리 Mar 03. 2024

 나르시스트와의 이별

돌이켜보면 가 내게 했던 언행들에는 이상하고 이해되지 않는 것들 가득했다. 하지만 의 민낯을 마주 보게 되자, 지난 7년 내내 그로 인해 고민하고 불편하고 고통스러웠어도 도무지 해소되지 않았던 궁금증의 퍼즐들이 조금씩 맞춰지는 기분 들었다. 그 퍼즐 조각들을 얻기까지는 대가를 치러야 했만.


그는 나에게 지나치게 잘해주고, 지나치게 사랑을 표현하고, 맹목적인 믿음을 주는 사람이었다. 마음 깊은 곳에선 이유도 모르게 그의 그런 과하게 지나친 부분이 불편했지만, 나를 목숨 걸고 사랑한다는 사람을 못 믿는 내가 오히려 더 이상한 사람이 아닌가, 내가 사랑을 잘 모르나 보다고 매번 흐린 눈을 하고 넘어갔다. 나는 사랑이 고팠다. 그리고 그를 사랑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나나 자신의 불편한 감정의 원인을 찾았어야 했다. 누가 뭐래도, 아무리 나에게 잘해주는 상대여도, 애매하더라도 불편한 감정이 들면 그 자체로도 충분히 의심해 봤어야 하는 것이었다.


예전의 그는 교회 안에서 멀끔하고 들에게 항상 쿨하게 밥을 잘 사주는 유쾌한 사람으로 소문이 자자했다. 그때 그에게는 7년 사귄 여자친구가 있었는데, 어느 날 여자친구가 다른 남자와 바람을 피워서 헤어지자고 했다 사람들 앞에서 먹거리는 걸 보았다. 그리고 한 동안 그의 sns에는 술을 먹고 쓴 듯 한 구구절절  슬픈 글들이 올라왔다. 때는 그와 그렇게 까지 가까운 사이는 아니어서 그냥 아이고, 진짜 좋아했나 보네 안타깝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당황스럽게도 그로부터 한 달도 안 돼서 그에게 데이트 신청을 받았다.


그의 힘든 모습을 지켜본 나로서는 그 감정 변화가 당황스러웠지만 얼마나 전 여자 친구에게 미련이 없으면 저럴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나도 그가 싫지 않았다. 하필 그때  나는 힘들고 외로웠고, 그는 저돌적이었으니까. 그는 나에게 바람피운 전 여자친구는 더 이상 자신에게 의미가 없고 내가 마지막 사랑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물론 가끔 그의 요동치는 감정선을 따라가기는 어려웠지만, 그게 중요하지 않게 느껴질 정도로 그는 나에게 지극정성이었다. 


사귀자마자 새 핸드폰을 선물하고, 데이트나 여행 비용도 자신이 무조건 내야 한다고 일방적으로 내고, 나와 결혼하고 싶다고 앵무새처럼(?) 매일 읊어댔다. 그렇게까지 나에게 헌신적인 남자는 처음이었다. 그의 나쁜 습관빚과 여러 문제들을 알고 나서도 내가 그와 헤어질 없었던 이유는 그런 그 순간들이 내가 살면서 느끼는 최고의 순수한 사랑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가 나와 결혼을 하고, 별거를 한 지 2달 만에 또 같은 패턴으로 누군가와 만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는 를 향한 그의 사랑이 너무나도 순수하고 깊어서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범주 속에 있다고, 계속 그렇게  믿었다. 심지어 그가 상담을 거부하고 나 몰래 여행을 다녀온다거나, 대출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에도 의심하지 않았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랬을까, 외로웠던 걸까? 상담을 가서도 나는 그가 걱정돼서 펑펑 울었고, 상담 선생님은 그가 건강해질 때까지 조금 더 기다려주자고 하셨다. 그와의 미래가 그려지지 않았음에도, 그 와중에 망 다니는 그를 보면서도, 도무지 그와 헤어져야겠다는 결심이 서지 않았다. 식이장애와 수면장애로 상담을 잠시 쉬겠다는 그를 회유하면서 가끔은 만나서 식사를 하거나 연락을 주고받으며 그렇게 한동안 이도 저도 아닌 채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생일이 왔다. 아직 정리되지 않은 나의 배우자 그의 생일을 축하야 했다. 그에게 내가 준비한 선물도 주고 좋아하는 갈비에서 함께 저녁을 먹었다. 그날 역시나 식사 내내 나에게 보고 싶다고 하기도 하고, 돌아와 달라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지만 정작 우리가 대화해야 할 내용들은 여전히 회피했다. 그런 그에게 나는 우리의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기 전 까지는 상담을 해야 한다고 강하게 말했다. 지만 이내 그는  이야기를 듣는 둥 마는 둥 타들어가는 내 속도 모르고 여행 가서 사 온 물건들을 나에게 신나게 자랑하거나, 자기가 좋아하는 색으로 머리를 염색도 했다며 깔깔대며 웃었다. 나는 그런 그짠했다. 그가 건강해질 때까지는 조금 더 기다려겠다고 마음먹었다. 나를 본가로 데려다주며 서 그는 나에게 또 보자며 손을 흔들다. 그 가 본 그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그날 이후로 그를 만난 적이 없으니.


그와의 관계는 그로부터 얼마 안 가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허무하고 처참하게 끝나버렸다.  별거를 시작하고 나는  한동안 sns를 비활성화하고 사람들과도 만나지 않았다. 그래서 그에게 여자가 생겼고 소위 말하는 럽스타그램을 하고 있다는 것도 나만 모르고 있었다. 그와 식사를 하고 난 다음 날, 가까운 지인에게 갑작스러운 연락이 왔다. 최근 그가 좀 분위기가 묘한 사진들을 올리고 있다며 sns에 들어가 보라고 했다. 손이 벌벌 떨렸다. 당장 비활성화를 풀고 그의 피드를 들어갔다.


그의 두 달간의 피드에는 그동안 그에게 궁금했던 것들을 해소해 주는 내용이 빼곡하게 담겨있었다. 그가 나를 위해 예약했다고 믿었던 우리의 신혼 여행지 숙소 예약 기록과 말도 없이 다녀왔다던 여행, 새롭게 받은 대출들은 다 그 여자와의 새 연애를 위한 것이었다.


7년간 함께 찍은 우리의 사진을 다 지워둔 그의 sns 피드에는 애교 섞인 하트 이모티콘이 빠짐없이 달려있었다. 피드를 내리다 발견한 글에서 마지막으로 나와 저녁을 먹으며 자기가 셀프 생일선물로 여행을 가서 샀다고 자랑했던 에어팟과 한 권의 책을 비스듬히 찍은 사진을 보았다. 그 사진에는 어떤 여자가 태그 되어있었고, 이런 생일 선물은 처음이야 고마워라는 그의 감동적인 멘트 적혀 있었다. 댓에는 역시나  여자의 하트가 달려져 있었다. 언젠가 나도 그에게 책을 선물했었는데, 쓸데없는 걸 준다고 타박을 하는 그에게 미안하다고 앞으로는 쓸모 있는 선물만 주겠다고 머쓱해하던 내 모습이 문득 스쳐 지나갔다. 서럽고 아프고 별 생각이 다 들어서 눈물샘이 고장 난 것처럼 눈물이 줄줄 흘렀다.


그래도 알아야 했다.

정신없는 가운데 지인들 통해, 그의 sns를 통해 그의 근황을 알아냈다. 직시한 사실은 생각보다도 더 기가 막혔다. 그의 상대 여자는 그 보다 11살이나 어린 20대 중반의 미혼 여자였고, 난 7년 동안 나와 처음 만났고 함께 다니던 교회에서 그와 함께 봉사활동을 하는 사람이었다. 분명 그녀도 나의 얼굴을, 우리의 결혼 소식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더 슬픈 건  나와 그를 모두 알고 잘 지내던 우리를 함께 아는 지인들도 그의 럽스타 글들에 좋아요를 누르고 있었다 사실이었다.


그는 나를 속이고 있었다. 그리고 여전히 멍청했다. 아마 와 내가 서로를 팔로우한 상태에서 비활성화를 해놓았다가 풀면 기가 올린 사진들이 나에게도 보일거란 생각을 했을 것이다. 나는 그것들을  애써 못 본척하기로 했다.


무너지는 마음을 부여잡으며  그에게 연락을 해 곧바로 물었다. "나 몰래 만나는 사람이 있지?" 그는 한참을 침묵하다가 대답을 했다. 최근에 만나고 싶은 새로운 사람이 생겼고 나에게 말을 하려고 했지만 못 했다고, 그 사람과 안 지 얼마 안 되었다고 말을 못 해서 미안하다고 했다. 이제는 더 이상 나와 함께 노력하고 싶지 않다고 그만하자고 내가 자기를 혼자 둔 2달이 너무 힘들다고 이야기를 이어갔다. 이미 한참 만나고 있었으면서 또 내게 거짓말을 하는 그가 뻔뻔했다. 도무지 참을 수가 없어서 그에게 이미 알고 있다는 증거를 보내자 그는 돌연 나에게 화를 냈다.


"야. 맞아. 나 새로운 사람 생겼다. 네가 나를 두 달간 방치해 놨고 그래서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을 만나기로 한 것뿐이야. 너랑 신혼여행을 갔던 곳에 걔랑 같이 가면 안 되는 이유가 뭔데? 그 숙소가 네 거야? 네가 집을 나갔고 우린 끝난 거야. 헛소리하지 마"


알고 보니 그는 별거 기간 중에 교회며 주변 지인들에게 내가 바람을 펴서 집을 나갔고, 혼인신고도 일방적으로 거부해서 헤어지게 되었다고 울면서 이야기하고 다녔다고 한다. 내가 내 소식을 알리지 않고 숨어 지낸 기간 동안 사람들은 그 말을 믿었고, 그가 새로운 여자와 연애를 하는 모습을 보고 당황했지만, 한편으론 이혼의 상처가 깊어서 정신이 나갔나 보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그게 진심인지는 나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도 그 사실을 알게 된 이상 참을 수 없었다. 그 여자에게도 그 여자의 가족에게도 그가 나와 사실혼 관계고 제대로 정리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당신을, 그들의 여동생을 만나고 있다고 알렸다. 그에 돌아오는 대답은 더 기가 막혔다. 그 여자는 그가 자신에게 내가 유책배우자라서 이혼했고 이미 깨끗하게 정리된 상태라고 말해서 만나기로 했던 거라고,  내가 유책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면 헤어지겠다고 했다. 나는 더 이상 당돌한 그의 어린 여자친구에게 그의 거짓말에 대해, 나의 진실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할 이유가 없었다.


돌이켜 보면 그 여자에게 한 말들이 7년 전 그가 나에게 7년 사귄 여자친구가 바람을 펴서 헤어졌다고 울먹 거리며 이야기한 것,그리고 얼마 안 가 내게 만나자고 하면서 했던 말들까지 죄다 비슷했던 것도 같다. 어쩌면 그것도 거짓말이었을 수도 있었겠다. 사실 그때 그와 만나고 얼마 안 되었을 때 모르는 여자가 나에게 친구 추가를 보내와서 거절했었는데, 알고 보니 그의 전 여자친구여서 황당했고 그가 차단하라고 화를 냈던 기억이 떠올랐다. 어쩌면 그 사람도 나에게 뭔가를 알려주려고 연락했던 게 아니었을까? 나는 그렇게 사실인지 픽션인지 모를 소설을 쓰고 있었다.


지난 7년간 나 자신 보다 더 잘 안다고 생각했던 그는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 같았다. 내가 아무리 흐린 눈을 해왔어도 이렇게 엉망인 사람은 분명 아니었는데. 모든 사실을 알게 된 이후 정신과 선생님, 우리의 상담 선생님, 주변 사람들까지도 그가 나르시시스트가 아닐까 의심된다고 했다. 그 얘기를 듣고는 몇 시간 내내 나르시스트에 관련된 글을 죄다 찾아 읽었다. 그를 이해하려고 발버둥 쳤던 시간들이 무색하게도, 나르시시스트를 설명한 모든 글의 대부분에서는 내가 그동안 그를 이해할 수 없고 앞으로도 이해할 수 없을 이유들을 빼곡히 설명하고 있었다.


그는 겉으로 보기엔 쾌남이지만 가까운 사람들을 착취하고 가스라이팅하는 나르시스트였다. 지난 그와의 추억이나 언행들을 하나하나 짚어보며 그의 행적을 더듬어 보았다.


나와 차를 타고 가다가 싸우거나, 화가 나면 나에게 내리라고 소리를 지르고 도로에 두고 가기도 했으며 이내 다시 돌아와서 울면서 미안하다고 하던 그, 헤어지자고 해놓고 매 번 30분도 안 돼서 붙잡던 그, 내가 친하게 지내는 나의 남사친들에게 연락해서 나 몰래 으름장을 놓던 그, 나에게 거짓말을 들키면 화를 내던 그, 나에게 내가 죽으면 따라 죽을 만큼 사랑한다던 그, 사람들에게 매번 돈을 빌려주고 나에게는 물건을 집어던지는 그각각의 순간에 매번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꾸 다른 모습들의 그에게 느끼는 괴리감을 이해하지 못했던 나는 그와 결혼을 하면, 내가 노력을 하면 언젠가 그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날이 올 거라고 믿었는데, 사실 그건 나부터 틀려 먹은 것이었다.


바로 그날, 우리가 사실혼 관계 별거 중이라는 이유로 바람이라고 설명해야 할지 뭐라고 말해야 될지도 모르겠는 그 배신을 알게 된 날,  그의 여자친구와 그에게 내가 유책이 아라는 사실을 증명하라는 연락을 받은 날, 멍청한 나는 정신이 나가서 가족 몰래 을 매려고 시도하다 곧바로 실패했다. 정말 찰나의 순간이었고, 지금도 후회한다.


그날 나의 메시지를 보고 이상함을 느낀 상담 선생님의 신고로 본가 경찰이 찾아왔고, 배우자인 그에게까지 연락이 가자 그는 자신의 탓이 아니라외면했다. 그의 로봇 같은 목소리를 경찰관의 핸드폰을 통해 똑똑히 들었다. 그는 내가 어떻게 되든 그 여자와 헤어지지 않는 게 중요했다. 내가 목숨을 포기할 만큼 사랑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었다. 그걸 깨달든 그 순간 정신이 번뜩 들었고 가족들에게는 미안하기만 했다.


그는 지난 시간 정말 나를 사랑하긴 했던 것일까. 어디부터 잘 못 된 걸까. 내가 많이 실수한 걸까. 그를 내가 방치한 걸까. 애초에 내가 사람 보는 눈이 없던 걸까? 애초에 헤어지자고 하고 잘 헤어졌으면 됐는데 왜 그는 상담을 거부하고 도망 다닌 걸까? 꼬리를 물고 쉴 새 없이 이어지는 물음표에 질식해 죽을 것 같았다. 


렇게 7년간의 모든 시간과 우리의 결혼생활은 그렇게 산산조각으로 끝났다.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가 나에게 요구한 작용과 반작용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그그렇게 제멋대로  기만하고 우리의 결혼과 약속을 쓰레기통에 버리는 동안, 산산조각 나서 날아오는 파편 온몸으로 맞고 있어야 하는 건 , 결국 바보같이 끝을 내지 못하고 기다렸던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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