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편은거짓말쟁이었다. 심지어 어느 날은 집에 귀가한 시간 까지도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었다. 퇴근해서 4시에 집에 왔으면 꼭 5시에 왔다고 굳이별 소득도 없는 거짓말을 했다. 평소에 나는 그가 게임을 하는 데에도 별로 신경을 안 썼는데, 내가 외출했을 때 게임을 해놓고는 안 했다고 꼭 뻥을 쳤다. 손을 갖다 대면 데일 듯이 열기를 뿜어대는 컴퓨터는, 인간인 그보다도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그는 웃기게 꼭 들킬 때마다 내 탓을 했다. 레퍼토리는 같았다. 네가 화낼까 봐, 네 기분이 상할까 봐, 싸우기 싫어서. 가끔은 사소한 거짓말을 들키고 변명조차 하기 귀찮아지면, 너한테 그런 자질구레한 것까지 디테일하게 말해야 하냐며 오히려 화를 내기도 했다.
애초에 나는 그가 뭘 하던 그렇게 예민하지 않았다. 그런 거에 예민했으면, 매일 저녁마다 회식이라며 뭘 하고 다니는지 모르는 영업사원의 와이프가 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에게 그런 말을 하면 또 난리를 칠 테니 이런 얘기를 한 적은 없지만.
그는 거짓말을 하거나 머쓱할 때마다 항상 코를 만졌다. 코를 파는 건지 만지는 건지 구분이 안 가는 손동작이 맘에 들지 않았는데, 언젠가부터는 그가 거짓말을 할 때마다 손이 코에 가있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코를 파는 듯한 모습이 좀 웃길 때도있었지만, 거짓말과 1+1으로 따라오는 습관이라고 생각한 뒤로는하나도 웃기지 않았다. 거짓말도 습관이라는 건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진즉에 알았다.연애 때부터 한두 번이 아니었다. 연애 초에 소개팅 어플 다운로드 기록을 보았다던지, 그의 헤픈 씀씀이를 알려주는 카드 내역서를 보았다던지, 수도 없었다. 들켜버린 그의 거짓말 기록들을 가지고 그에게 따져 물었지만, 20대 후반의 나는 능구렁이 같은 그를 이겨먹을 만큼 억세지가 못 했다. 매번 핑계가 있던 그는 소개팅 어플은 회사 직원이 자기 계정으로 다운로드한 거라고 했고, 카드는 자기 누나가 빌려 썼다고 했다. 물론 다 우스운 거짓말인 걸 그때도 알았지만 그냥 그러려니 하려고 했다. 헤어지는 게 죽기보다도 싫었고, 다 과거 일이니까 들춰봤자 귀찮다고 생각했었다.
그가 거짓말한 것 들을 설명하자면 몇 번의 밤을 새야 할지도 가늠이 안 될 만큼, 그는 거짓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물론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다. 나는 어리석게도 내 바운더리에 들어오거나, 내가 믿기 시작하면큰 사기 같은 거짓말만 아니면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결혼식 이후 같이 살기 시작하면서 사소한 거짓말들이 쌓이면 나중에 얼마나 사람을 피폐하게 만드는지 그제야 알게 됐다.
전남편과의 거지 같은 헤어짐을 겪고 몇 달 동안 정말 열심히 살았다. 본가로 짐을 완전히 옮기고, 정리하고, 필라테스 회원권을 다시 끊고, 아침부터 밤까지 미팅이나 일정을 잡아서 정신없이 일만 했다. 나는 '안읽씹'을 정말 싫어하던 사람인데, 그렇게 미친 사람처럼 살다 보니 한 달 동안 메시지가 백 개가 넘게 쌓여도 확인을 다 못 할 정도였다. 몸은 그렇게나 바삐 움직이면서도 마음으로는 늘 통곡하듯이 울었다. 특히 운전을 할 때마다 자꾸 눈물이 나서 아예 조수석에 휴지칸을 만들어 놓고 빽빽 울어대면서 코를 풀기도 했다. 그렇게 어떻게든 시간이 지나기만을 기다렸다.
그의 거짓말은 몇 달이 지나고 연말이 돼서 또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나를 찾아왔다. 어느덧 연말정산 시즌이 찾아왔고, 프리랜서인 내게 갑자기 국민연금과 세금 명세서가 폭탄처럼 날아왔다. 말도 안 되는 금액이라 세무서에 일일이 전화도 해보고 찾아가면서 이유를 찾아냈다. 그가 내 명의를 가지고 자기가 소속된 회사의 작은 지사에 나를 직원으로 등록해 놓고 지금까지도 해촉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기가 막혔다. 내 컴컴한 기억을 더듬어봤다. 결혼 생활 중에 그가 마지막으로 물건을 던지고 싸운 다음 날, 그가 나한테 불쑥 전화해서 심드렁한 목소리로, 회사에서 주민번호를 필요로 하는데 프리랜서니까 부탁할게 너 밖에 안될 것 같다고, 큰일이 아니라면서 잠깐만 쓰겠다고 했었다. 자초지종도 모르는 나는 바보같이 어차피 내 주민번호를 알고 있을 테니 그에게 알아서 하라고 했다. 알고 보니 그는 그렇게 내 명의를 사무실에 팔아버린(?) 것이다.
그렇게 그에게 몇 달 만에 전화를 걸었다. 절대 걸일 이 없으리라 생각했던 전화였다. 그는 내 전화를 차단했는지 걸리지가 않아서 비즈니스 용 전화로 전화를 걸었더니 그가 마지못해 퉁명스레 받았다. 어떻게 된 일인지 자초지종을 따져 물으니 그는 나한테 네가 명의를 줘놓고 왜 이제 와서 지랄이냐며 화를 냈다. 자기는 상관없는 일이니 사무실에 전화해서 알아보라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리고는 문자로 돈 필요하니까 연락하냐며 또 되지도 않는 말을 덧붙였다.
내막은 이랬다. 그의 사무실에 연락해 보니 사장이라는 사람은 전남편이 사무실에 내 명의를 빌려줌으로써 자신이 개런티를 제공했다고, 해촉은 진작 처리했고 늦게 해 드려서 죄송하다며 사과를 했다. 개런티라고 입금을 했다는데 나는 받은 적이 없었다. 또 구라구나. 전남편한테 물어보니 그러네. 말 안 했네. 그때 사이가 안 좋아서 안 줬나 봐.라는 개소리를 한다. 남의 명의를 맘대로 도용하고 중간에서 돈을 받아놓고는 그동안 나 몰라라 했던 그는, 헤어지고 몇 달이 지나 내가 이 일을 알고 연락하니 오히려 네가 명의를 줘 놓고 왜 지랄이냐고 나에게 윽박을 질렀던 거다.
내 인생을, 멘탈을 왜 이렇게 까지 쥐어짜듯이 탈탈 털어가는 건지 이해가 안 갔다. 그를 죽여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했지만 또 새로운 거짓말을 마주하니 그가 그냥 길 건너다가 차에 치어 죽어도 안 슬플 것 같다는 생각까지도 들었다.
나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명의를 도용했다는 건 명백했고 내가 그에게 명의를 빌려줬다는 증거도 없었다. 사장이라는 사람에게도 명의를 내가 의도를 알고 빌려준 게 아니며 개런티를 받은 사실이 없다고 알렸고 내 피해를 모른 척하면 회사며 전남편을 고소할 생각도 있다고 전달했다. 상간 소송도 더불어서 해버릴까 싶었다.
그렇게 나한테 니 탓이니 어른이 돼서 지 명의도 간수 못 한 게 어쩌고 하던 싹수가 노랗다 못해 썩어버린 그는, 내가 고소 얘기를 꺼내자 태도를 싹 바꿔서 미안하다며 '사과 퍼레이드'를 시작했다. 물론 그것도 거짓이었을 게 명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