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대 명산 그 세 번째
100대 명산 오르기 세 번째 산은 팔공산으로 정했다. 그동안 내게 팔공산은 갓바위와 동의어로 인식되어 왔었다. 나의 첫 기억 속 팔공산 갓바위는 IMF 광풍이 덮치기 얼마 전으로 기억한다.
내 아버지는 하시는 사업마다 되기보단 안되기를 더 잘하던 분으로 그때도 역시나 어려울 때였다. 엄마와 누나 그리고 나 이렇게 세 사람은 갓바위 부처님의 영험에 우리 가족의 미래를 의탁하려 갔었다. 늦은 밤 갓바위 주차장에 도착하여 끝없이 이어지던 돌계단을 사람에 밀려 밀려 올라갔던 기억이 있다.
그때 나는 '이 많은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소원을 안고 이 밤에 이곳을 오르는가?', '서로 각기 다른 소원을 안고 올라오는 사람들의 소원을 다 들어주려면 갓바위 부처님은 참 힘들겠다'며 혼자 웃었던 기억이 있다.
세월이 흘러 아내가 막내딸 대입을 앞두고 '다른 엄마들은 모두 아이들 합격을 빌러 갓바위에 간다던데 우리도 한번 가자'고 하였다. 나는 '공부는 아이가 하는데 엄마가 빈다고 무슨 소용이 있느냐'며 퉁을 놓았었다. 그리곤 아내는 막내딸 입시를 보름정도 앞두고 너무나 갑자기 우리 곁을 떠나가고 말았다.
그때 아내는 갓바위에 가자는 말을 농담처럼 하였고, 나도 농담으로 받았었는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내 가슴에 뽑을 수 없는 대못으로 박혀있었다. 그리고 딸들 만나러 서울 가는 고속도로에서 저 멀리 팔공산을 볼 때마다 아내와 함께 가지 못한 것이 가슴에 사무쳤었다. 그래서 이번 팔공산 산행은 될 수 있으면 최대한 힘들게 갓바위에 가고 싶었다. 갓바위 부처님께 엉금엉금 기어서 갈 정도로 힘들게, 그렇게라도 하면 내 마음이 조금이라도 편해질까 해서.
토요일 아침 8시 40분경 가산산성 진남문 주차장에 도착하여 먼저 진남문을 둘러보았다. 안내판엔 칠곡 가산산성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은 후 1639년(인조 17) 9월에 쌓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양대 란을 겪은 후 이 성을 쌓았다면 전쟁의 양상이 변한 것을 몸소 느꼈을 터인데, 이렇게 넓게 열려있는 장소에 조총이나 대포로 공격해 오는 적을 막기가 어려울 것 같은 이런 구조의 성을 만들었다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남해안에 산재해 있는 왜성이라도 벤치마킹하여 지금까지와는 다른 형태의 성을 만들 만도 하건만 우리 조선은 변하지 않았다는 점이 아쉬웠다. 진남문을 뒤로하고 가산봉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가산봉으로 가는 길에 험준한 지형에 자리 잡고 있는 동문과 관아터를 지나니 가산봉을 알리는 표석이 나온다. 그리고 표석 뒤엔 용바위 0.1km, 유선대 0.2km를 알리는 이정표가 있다. 가산산성 성벽을 따라 내려가보았으나 어디가 용바위인지 찾지 못하고 대신 아름다운 기암괴석 감상만 실컷 하고 갈길 바쁜 나그네는 발길을 옮겼다.
가산봉 성곽 위로 난 길은 겨우내 얼었던 땅이 녹아 질퍽이는 구간과 꽁꽁 언 구간의 반복이다. 험준한 지형에 지어진 성곽과 기암괴석이 어우러진 풍광에 발걸음이 잡히며 약 2시간 정도 걷자니 웅장한 바위가 앞을 막아선다. 한눈에 봐도 잘생긴 풍채가 예사롭지 않다. 할매할배바위란다. 예전 자식이 없던 부부가 이 할매할배바위에 치성으로 공을 들여 아들을 얻었다는 전설이 있단다. 이 설명을 보기 전엔 할매할배바위 형상이 할매할배를 닮았나 해서 요리조리 상상력을 동원하여 살펴보았으나 설명을 보고 나니 조금은 이해가 간다.
산이나 바위에 붙여진 이름이 순우리말과 한자말이 서로 섞여있으니 안내판에 한자말은 한자도 함께 표기하면 참 좋을 텐데, 좀 전에 찾지 못한 용바위도 전설의 동물 용인지 아님 솟아올랐다는 뜻의 용인지 몰라 아무리 상상을 동원하여 찾으려 해도 안내판이 없이는 도무지 찾을 길이 없었다.
할매할배바위 다음에 만날 치키봉도 이름에 대한 온갖 추측을 하며 갔다. 이번엔 안내판이 있어 산세가 곡식을 까부를 때 쓰는 키를 닮았다 하여 불려진 이름이라 하니 이해가 쉬웠다. 치키봉과 한티휴게소를 지나 파계봉까지 약 4시간이 걸렸다.
파계봉은 파계사가 있어 붙여진 이름의 봉으로, 흩어진 계곡의 물줄기를 잡는다는 뜻의 파계란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파계사에 한번 가보고 싶다. 어떻게 물줄기를 잡는다는 것인지, 흩어진 물줄기를 잡다 혹여 큰 비라도 내린다면 위험하진 않았을까.
배가 슬슬 고파와 파계봉을 지나 준비해 간 김밥을 먹기 위해 평평한 곳에 자리 잡고 앉았다. 그런데 발 밑에 누군가가 버리고 간 것인지, 아님 이곳에 소원을 담아 뿌린 것인지 알 수 없는 작은 종이학들이 잔뜩 흩뿌려져 있다. 팔공산소원길은 예나 지금이나 간절함을 안고 걷는 길인가 보다.
가산산성을 지나서부터 지금까지는 여느 등산로 같았으나 톱날바위를 시작으로 제법 릿지를 경험할 코스가 나타난다. 단독산행이 아니라면 호기롭게 걸어도 보련만 혼자이고 등산객도 거의 없는 곳에서 미끄러지기라도 한다면 낭패인지라 엉덩이로 걸었다. 그래도 제법 간이 쫄깃쫄깃한 것이 좋았다.
이제 비로봉이 손에 잡힐 듯 다가왔다. 그러나 지금부터 능선길은 실컷 올라온 것을 모두 토해내라 한다. 정신없이 오르고 내리고를 반복하며 서봉을 향해 걷다 보니 어느새 이정표에 서봉이 사라졌다. 지나온 건지 아님 옆으로 오는 길로 와버린 것인지 모르겠으나 돌아가 확인할 엄두가 나지 않아 그냥 갔다.
가까이에 위성안테나가 잔뜩 보이고 길은 철조망으로 막혀있다. 철조망 옆으로 오르다 보니 철조망 사이로 넘어가는 문이 있다. 철조망을 통과하고도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망설이고 있을 때 저만치 안쪽 철조망 건너에 몇몇이 앉아 있다. 개구멍인지 그냥 길인지 모르겠으나 그곳으로 가보니 비로봉으로 가는 길이 나온다. 그동안 내가 서봉으로 생각하고 왔던 그 봉이 팔공산 주봉인 비로봉이었다. 모든 곳을 두루 비춘다는 뜻의 비로봉이 지금은 위성안테나로 두루 비추는 것을 보니 안타깝고 산에 많이 미안했다.
비로봉에 대한 아쉬움을 뒤로하고 이제부터는 하산길이자 이번 산행의 이유인 갓바위를 향했다. 동봉에서 갓바위까지 약 6km 정도 남았다 하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도무지 길이 줄어들지가 않는다. 해는 뉘엿뉘엿 산을 넘어가려 하고 길은 줄어들지 않으니 조바심만 난다. 산행시간 8시간, 거리 25km 지점에서 손목에 있는 와치는 배터리가 다되어 꺼져버렸다. 아직도 이정표엔 갓바위가 2km 넘어 남았다.
이제 갓바위가 보인다. 이번 산행 내내 정리한 나의 염원을 오롯이 모아 한 마음으로 걸었다. 갓바위 뒤로 연결되는 돌계단이 나온다. 앞에 중년부부가 힘겹게 계단을 오르는 게 보인다. 남편은 부인의 손을 잡고 당겨가며, 서로 의지하며 올라간다. 나도 조금만 더 일찍 이곳에 왔었다면 저 부부처럼 서로 손을 끌며 이곳에 왔을 것을.
너무 늦었다. 너무 늦었다. 너무 늦었다.
갓바위 부처님이 마치 '왜 이제 왔느냐'며 나무라는 듯 무섭게 노려본다. 한쪽 귀퉁이에서 신을 벗고 삼배를 올렸다. 첫 절은 먼저 간 아내의 천도를, 두 번째 절은 아이들이 살아갈 길에 방향을 잃지 않도록 북극성 같은 빛이 되어 달라고, 세 번째는....
이곳에 오기 전까지 세 번째는 내 남은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고 아내가 날 데리러 오는 그날 후회가 남지 않게 해 달라 기원하려 하였으나 그러지 못했다.
아내의 천도를 다시 빌었다. 나 따위는 상관없다고 오직 아내의 천도를 다시 빌었다.
신을 고쳐 신고 끝없이 이어지는 계단길을 서둘러 내려왔다. 해가 지고 계단에 불이 들어오는 그 시간에도 사람들이 올라온다. 각자의 염원을 담아.
한참을 계단을 내려올 때 저 아래에서 종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온다. 저녁 예불이라도 있나 보다. 석양에 붉게 물든 하늘과 어둠에 묻혀가는 사위 그리고 은은한 종소리는 긴 산행의 끝자락에 서있는 등산객의 마음에 평안을 심어준다.
10시간의 산행을 마치고 세속으로 돌아왔다. 소원길이란 이름답게 순례길을 걷듯 걸었다. 많은 상념의 찌꺼기는 버리고, 새 각오는 담고 소원길 종주를 끝냈다.
보은사 앞 버스 정류장에는 가산산성 진남문으로 가는 버스가 없다. 앱으로 검색하니 마을버스는 진작에 끊어진 모양이다. 택시도 없고 대략 난감이다. 지도로는 찻길로 대략 30~40km 정도 가면 될 듯도 하다. 무작정 다시 걸었다. 밤새워 걷다 보면 언젠가 도착하겠지.
배낭에는 삼각김밥 1개, 바나나 1개, 물 몇 모금이 남아있으니 괜찮다. 다만 무릎이 견뎌줄 것 인가가 걱정이긴 하나, 가다 보면 어찌 되겠지 싶다.
대구 외곽이라 그런지 도로는 한산하기 그지없다. 계속 걷기만 하는 것도 지루하여 뛰기도 하고 걷기도 하길 한 시간여, 백안동 어느 우체국 앞에 도착했다. 우체국 계단이 앉아 쉬기에 적합해 보여 숨도 돌릴 겸 쉬는데 택시들이 간혹 지나간다. 택시를 불렀다. 16분 후면 도착한단다.
계단에 반쯤 누운 나를 보니 웃음이 난다.
자유롭다.
좋다.
이게 여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