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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채동 Sep 03. 2021

욥을 생각하다

나는 가나안 성도다.

교회를 나가지 않는 즉, 안나가를 거꾸로 읽으면 가나안이 된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를 가나안 성도라 말한다. 교회를 다니지 않는 이유야 사람마다 다양하겠지만, 내겐 교회문화 자체가 적응이 잘 안됐다. 그래서 도둑고양이처럼 몰래 새벽기도에 가끔씩 나가는 정도였으나, 이마저도 최근 몇 년간은 하지 않았다.


한참 교회에 열성이던 시절 욥기를 읽으며, 그 속에 나오는 하나님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나님에게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그냥 게임 속에 나오는 수많은 캐릭터 중 하나에 불과한가. 영화엔 주인공과 조연의 구분이 있지만 우리 삶엔 모두가 주인공이다. 조연과 주연을 구분하는 시선으로 바라볼 때 조연은 그저 하찮은 존재처럼 보일지 몰라도 그 자신에겐 그렇지 않을 것이다.

욥의 흔들리지 않는 신앙을 보기 위해 죽어야 하는 욥의 아내와 자식들의 삶은 무엇이며, 욥에게 가해지는 고통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내가 봉사하고 있는 장애인단체 회원으로 계시는 한 할아버지는 너무나 기구한 그래서 거짓말 같은 스토리를 갖고 계신다. 이 분은 젊은 시절 부산의 한 해운회사에 다니며 부인과 자식을 둔 평범한 가장으로 살았다. 정년퇴직도 하고 평범하게 살아가던 어느 날, 충청도에 있던 처갓집에 온 가족이 함께 다녀오던 고속도로에서 사고로 아내와 자식을 모두 잃었다. 자신도 한쪽 다리가 절단된 상태로 몇 차례의 수술 끝에 겨우 살 수 있었다. 그러나 그동안 살아왔던 부산엔 도저히 돌아갈 자신이 없어 그나마 가까운 울산에서 살아가고 있다.


처음 이 분을 만나 사연을 들었을 때 현실의 욥이란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도 꿋꿋하게 생을 이어갈 수 있었을까. 그에 더해 봉사활동도 하며 밝고 건강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참 대단해 보이기도 했었다. 다른 한편으론 가족들 모두가 본인이 운전한 차에서 생을 달리 했는데 자신은 무슨 염치로 재밌게 살고 있지 하는 생각도 했었다.


그 후로 몇 년의 세월이 흘러, 경우는 다르지만 나도 갑작스럽게 아내를 보낸 처지가 되고 보니 만 가지, 천 가지 생각이 든다. ‘내가 조금만 더 세심하게 아내를 살폈더라면 병이 자라고 있었던 것을 알았을 텐데’라는 후회와 분노. 인간에게 무언가 가르침을 주려고 하나님이 고난을 준다는 어느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는 ‘신이면 다냐. 내게 고난을 주려면 나를 괴롭히면 되지 왜 멀쩡한 사람을 죽이냐. 내가 죽어 하늘에 가서 저 사람이 이곳보다 몇 억만배 행복하지 않다면 그땐 하나님 당신 각오하시오’라며 하늘을 향해 소리도 쳤다. 때론 ‘하나님의 뜻이 그러하다면 제발 저 불쌍한 여인을 굽어 살펴주소서’며 읍소도 하는 적응의 시간이 흘러왔다.


이젠 그동안 아내와 함께 꾸었던 우리의 꿈 중에 많은 부분을 수정해야 한다.

또 아내의 희생 속에서 편하게 지내왔던 생활습관도 많은 부분 버려야 한다.


오늘 아침 꿈을 꾸었다. 해리포터의 한 장면 같은 마법의 세계.

편의점에서 물건을 사서 나오는데, 같은 가계에 영의 모습을 한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방식으로 벽도 위와 아래의 구분 없이 자유롭게 통과하고 돈도 필요 없이 물건을 산다. 마침 지나가는 택시 지붕에 올라타자 택시는 하늘을 날아오르고 나는 택시 지붕에 아슬아슬 매달려 성으로 돌아가다 꿈에서 깼다.


요 며칠 나는 그동안 아내와 함께 꾸었던 우리의 꿈 뒷부분을 수정했다. 나를 깊이 들여다보는 시간도 가졌다. 그 결론이 아침꿈으로 나타난 것 같다.


오랜만에 기도를 했다.

아무 말도 않고 눈을 감고 손을 모았다.

주책없는 눈물만 책상을 적셨다.

한마디도 못했다.

눈을 떴다.

하나님께 욕했다.

“영감탱아. 아침부터 이 꼴 보니 좋냐.”


알았다. 보았다. 그리고 결정했다.

나의 남은 삶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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