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채동 Aug 26. 2021

현관 청소를 하며

우리 대부분은 자신이 생각하는 삶의 가치와 자부심을 갖고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나는 비록 경제적을 풍요로운 삶을 살았다던가, 사회적 지위나 명망에서 우월했던 적은 없었다. 하지만 아내와는 서로의 영역이나 역할에 대해 존중하고,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적당선을 지켜오며 결혼생활 20년 동안 큰 다툼 없이 지내왔다. 딸들도 이런 부모의 영향인지 간섭 없이 잘 지내왔고 공부도 야무지게 잘해주었다. 나에겐 이런 가정이 내심 자랑이었다.


20년 10월의 마지막 날은 그동안 애지중지 가져왔던 가정이라는 유리구슬이 한순간 박살이 나고 말았다. 정신없이 아내의 장례를 치르고 돌아온 현실의 집은 너무나 막막했다. 


딸들을 1월 말에 서울에 집을 구해 올려 보내고, 나는 아내가 그동안 사용했던 많은 것들을 버리고 최소한의 물건만 챙겨 2월 초에 병영성 주변 조그만 빌라를 구해 피난을 갔다.


나에게 이 상황은 그동안 내 손에 들려 있던 유리구슬이 박살 나고, 한 순간 나락으로 떨어져 버린 것 같은 참담한 심정이었다. 


아내의 결핍과 딸들의 부재는 다양한 증상으로 나타났다. 첫째, 밥을 먹는 중에도 계속해서 배가 고팠다. 둘째, 추위가 계속 밀려들어 보일러를 아무리 많이 틀어도 추웠다. 셋째, 책을 읽지 못하고 TV만 하염없이 봤다. 눈은 분명 TV 화면을 보고 있으나 보지 않는, 그래서 하염없이 시간만 죽이는 그런 상황이 계속됐다. 이런 증상으로 점차 안방에만 콕 처박혀 거실로도 주방으로도 나가기 어려워지고, 침대에서 일어나기도 점점 어려워졌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병원에서 우울증 치료약도 받아먹어 보았다. 그러나 알았다. 이렇게 해서 해결되지 않겠다는 것을. 이 모든 것이 내 마음의 일이라는 것을, 한 생각 돌리면 된다는 것을. 그래서 다시 아침부터 달리기 시작했다. 평소 운동량보다 훨씬 많이 달렸다. 일요일엔 친구들과 매주 산에도 갔다. 한 달에 한번 정도 딸들을 만나기 위해 서울로도 갔다. 그곳에서 유리구슬이 완전 박살 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눈으로 보고, 내가 아내의 빈소에서 딸들에게 했던 ‘엄마는 우리를 떠난 것이 아니라 우리를 졸업시킨 거다. 그중 가장 문제 학생이 아빠였고 아빠가 다 배워 이젠 우리를 졸업시킨 거다, 그래서 우리가 잘 살아가길 항상 응원하고 있을 거다’ 했던 나의 말을 상기하며 다시 힘을 내 억지로 억지로 버텨왔다. 


나의 피난처는 오래되고 관리가 잘 안된 집이라 손을 봐야 할 곳이 많았다. 그러나 어느 한 곳도 손 보고 싶은 의욕이 없었다. 조금만 수리하면 훨씬 나을 것이 눈에 훤히 보여도 움직여지질 않았다. 그러나 며칠 전부터 지저분한 현관과 현관문 안쪽에 전 주인이 붙여 둔 시트지 그림이 눈에 계속 걸렸다. 


오늘은 아침 운동을 갔다 와선 바로 대야에 물을 받고, 버리려 했던 낡은 러닝셔츠를 들고 현관 물청소와 함께 시트지를 벗겼다. 현관바닥이 깨끗해졌다. 내 속도 개운해졌다. 인터넷으로 현관문에 새로 붙일 시트지와 분위기 전환을 위한 그림액자도 주문하고, 안방 앞 베란다 유리에 붙일 시트지와 화장실 청소용품도 함께 주문했다. 이제 현관에 놓아 둘 화분이랑 안방 베란다 천정 크랙 보수를 위한 자재와 페인트는 직접 사러 갈 거다.


수족관에 처음 열대어를 들여왔을 때, 이 녀석이 먹이만 먹으면 살 수 있다. 먹지 않으면 죽는다. 그동안 나도 열대어처럼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려면 일단 먹이활동을 하자는 심정으로 살았다. 주면에서 걱정스러운 맘에 잘 지내냐고 물으면 먹이활동 열심히 하고 있으니 죽지는 않겠지라고 말하곤 했다. 그런데 오늘 아침 현관 청소를 하는 나를 보며 스스로에게 말했다.

 ‘이젠 살겠네!’             


작가의 이전글 1번 물음에 답하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