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후 이후 모더나 백신 2차 접종을 맞았다. 1차 접종 땐 신체적 고통보단 심한 무기력감을 극복하는 것이 어려웠다.
꺼질 듯한 불씨를 겨우겨우 살려 버텨오던 내게 무력감은 너무 힘든 고통이었다. 다시금 침대 속으로 들어가려는 나를 돌려세워야 했다. 그러나 2차 접종은 육체에 직접적으로 가해지는 고통이 대단했다. 그날 저녁부터 시작되는 근육통은 나를 눕지도 앉지도 못하게 만들었다. 일단 잠이라도 자면 시간이 해결해주겠지란 생각에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그러나 밤새 온 산을 헤매고 다니는 꿈을 꾸고 또 꾸는 힘든 밤을 보냈다.
아침의 몸은 더 참담했다. 물을 먹기 위해 부엌으로 가는 길은 너무도 멀었고, 엊저녁 설거지를 안 한 통에 무언가를 먹으려면 먼저 설거지부터 해야 했다. 가족의 빈자리 특히 아내의 빈자리를 온몸으로 실감했다.
아내와 나는 연애 10년, 결혼 20년 얼추 30년 세월을 함께 보냈다. 그런 사이에서 무슨 애틋하고 알콩달콩한 사랑을 말할까. 그러나 너무나 갑작스러운 영원한 이별의 순간을 겪으며 나는 알았다. 서로가 떨어져 살 수 없는 존재였다는 것을 마치 공기가 너무 당연하듯 나도 아내의 존재를 너무 당연하게 생각했었다.
접종 3일 차 새벽 꿈속에서 아내를 만났다.
푸른 밭이 펼쳐진 한적한 농로길에서 우리는 함께 걸었다. 난 속으로 죽어 장사까지 치른 아내가 살아 돌아온 것을 주변에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를 고민했다. 그리고 몸은 괜찮냐고 물었고 아내는 잘 모르는 눈치였다. 그런데 내가 그 말을 한 직후부터 아내는 걷기 힘들어했다. 내가 업고 한참을 걸었다. 아무런 무게가 느껴지지 않았다. 아내가 힘들다고 하여 이번엔 손을 잡고 또 한참을 걸었다.
장면이 바뀌어 병원에 도착하고 나는 의사에게 전에 상황을 설명하고 검사를 요청했다. 그런데 병원은 그런 검사를 잘 모르는 것 같았다. 그리고 아내는 링거를 맞기 위해 병원 베드에 누웠고, 난 사람들과의 약속이 있어 이를 어쩌나 고민할 때 간호사가 내게 링거를 다 맞으려면 2시간 반 정도 걸리니 편안히 일 보고 오라고 한다. 그동안 자기들이 잘 보살피고 있을 테니 걱정하지 말고 다녀오란다. 그 길로 난 급하게 병원을 나오고 꿈에서 깨어났다.
꿈에서라도 잡아봤던 아내의 손, 그 느낌을 잊을 수 없다. 그리고 우리가 평소에 함께 나누었던 많은 말들. 그 말들을 다시금 되짚어 봤다. 그 말들 속에 내가 2시간 반이란 주어진 시간 속에 마무리하고 병원으로 돌아와 아내에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이야기는 무엇일까를.
접종 5일 차 몸의 컨디션도 조절하고 마음 정리도 할 겸 홀로 무룡산에 올랐다.
무룡산은 동해의 바닷바람으로부터 도시를 막아주는 울타리와 같이 역할을 하는 산이다. 높이로는 인근의 문수산이나 언양 쪽의 영남알프스 1천 미터급에 비하면 낮은 4백 미터급 산이다. 그러나 울산을 한눈에 굽어볼 수 있는 곳으론 이 산이 단연 최고라 생각한다.
나는 내가 살고 있는 병영성을 찾아봤다. 병영성에서 주변을 바라볼 땐 그래도 제법 높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무룡산에서 바라본 병영성은 마치 작은 공원처럼 보였다.
그렇다 아내와의 갑작스러운 이별, 학업을 위해 서울로 떠난 딸들, 직장에서 프로젝트를 완수한 후 해고 통보, 그리고 새롭게 시작하는 사업. 이 모든 일이 불과 몇 달만에 스나미처럼 덮쳐오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허겁지겁 살아온 날들.
그날들이 어느덧 10월의 마지막 날이면 1년이 된다. 높게만 보였던 산도, 깊은 계곡도 이렇게 높이 올라 멀리 보니 아무것도 아닌 것을.
가끔씩은 이렇게 산에 올라 먼 곳을 바라봐야겠다. 내 남은 2시간 반을 위해. 우리의 딸들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