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법정 스님의 무소유에 관한 글귀 중 일부를 발췌하여 캘리작품으로 만든 액자가 몇 해 전부터 안방에 걸려있었다. 그리고 집을 옮긴 후에도 여전히 그 작품은 내가 침대에서 일어나면 제일 먼저 보이는 벽에 단단히 걸어 두었다.
아내가 있을 땐 무소유란 말에 대해 그 단어 이외엔 별 감흥이 없었다. 그러나 아내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와 첫 밤을 보낸 후 바라본 무소유 액자는 내게 다르게 다가왔다. “크게 버리는 사람만이 크게 얻을 수 있다. 아무것도 갖지 않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갖게 된다”. 언 30년을 함께한 아내보다 내게 더 큰 것이 어디 있으며 그녀와 함께하지 못하는 온 세상은 또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허망함과 한탄 그리고 한편으론 지금의 내 상황을 아내가 위로해주는 듯도 했다.
그 후로 나는 무엇을 소유하고 무엇을 소유하지 않아야 하는가에 대해 긴 시간을 시름했다.
어느 토요일 아침, 그날도 매일의 루틴으로 하는 아침 조깅에서 불현듯 내가 버려야 할 소유는 我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내가 쌓아온 나름의 업적에 대한 相, 남이 나를 이렇게 봐주길 바랐던 相, 내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相 등, 수많은 相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我相에 대한 찌꺼기는 우리 주변에서 너무나 쉽게 볼 수 있다. “내가 왕년에 말이야…”로 시작되는 말에서부터 “옛날에 별것도 아닌 놈이 출세 좀 했다고…”, “실력은 저 인간보다 내가 더 나은데..”, 행사장에서 저 사람보다 늦게 자길 소개했다고 악악대는 방귀 좀 뀐다는 님들 등 수많은 我相들을 모두 버려야 한다. 그때서야 비로소 자유로워진다. 그때서야 비로소 세 살 먹은 아이에게도 배울 수 있어진다.
크고 작은 성과에 대한 집착, 앞으로 어떠하고 싶다는 욕망, 이 집착과 욕망이 커지면 커질수록 불안감은 두려움으로 무기력으로 점점 더 나를 옥죄여 온다. 두려움은 내게 어서 도망가라 속삭이고, 무기력은 나를 따뜻한 이부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막아선다.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여기저기 기웃기웃해봐야 아무 소용없다. 그러면 그럴수록 미래의 불확실은 더 크게 느껴졌고, 불안은 점점 더 가속이 붙어 달려왔다.
그동안 저 무지개만 잡으면 행복할 줄 알았다. 무지개를 잡기 위해 무작정 달렸다. 무지개만 잡으면 아내도 호강시켜주고, 내 딸들에게도 멋진 아빠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었다. 무지개를 쫓아가는 동안 발 옆에 핀 작은 꽃도, 뺨을 스치는 바람도 쳐다보지 못했다. 언제까지나 내 옆을 지켜 주리라 생각했던 아내는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났고, 천진하게 웃고 재잘대던 딸들도 어느덧 다 자라 내 곁을 떠나갔다.
발 옆에 핀 작은 꽃은 내게 지금을 보라고, 지금에 집중하라고 외쳤을 것이나 나는 그 말을 듣지 못했다. 50대, 인생의 반환점을 돈 지금, 내가 온 길을 돌아본다. 너무나 어지럽다. 그런 我相의 쓰레기가 무엇이라고 아직도 붙들고 집착하고 있다.
무소유 액자를 벽에서 내렸다. 대신 그 자리에 헤르만 헤세의 행복 중 한 글귀를 작품으로 아내가 만든 액자를 걸었다. “인생에 주어진 의무는 단 한 가지뿐 그저 행복하라는 것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세상에 왔지”.
‘행복’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행복?
떠난 사람은 이제 잊고 좋은 사람 만나. 친구 같은, 애인 같은 여자사람 만들어. 그럼 행복할 거야.
난 그런 행복을 위해 “우리 인생에 주어진 의무는 단 한 가지뿐”이란 말을 헤르만 헤세가 했을까란 물음을 던져본다.
我相을 버리고 새로운 我相에 들어간다면 무엇을 버렸단 말인가. 난 세상적 행복과는 다른 행복을 찾아보련다. 삶은 어차피 불확실한 것, 죽음만이 가장 확실할 뿐. 물속에서 숨을 쉬지 못하는 고래는 바다가 얼마나 무서울까. 그렇다고 바다 밖으로 나가는 것은 가장 확실한 죽음뿐. 두려움은 내가 코로 숨 쉬는 동안은 영원한 일. 현재에 집중하고, 주변에서 ‘너는 어떤 사람이다’, ‘다 이렇게 산다’는 말에 귀 기울이지 않고 나의 길을 가련다. 그렇게 매 순간에 집중하다 보면 언젠가 길의 끝에 도착하겠지.
그럼 나도 천상병 시인처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처럼 말할 수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