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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채동 Aug 07. 2022

버리고 묻고 답하다

영남알프스 영축산 산행

내게 달리기와 등산은 운동 그 이상의 역할을 한다. 생각을 정리하고 버릴 것은 버리고 다짐할 것은 다짐하는 역할을 한다.

올 초 그날도 아침 러닝을 하던 중 우측 종아리에 통증이 조금씩 올라오더니 약 9킬로 지점부터는 더는 달릴 수 없어 러닝을 멈추고 걸어서 집으로 왔다. 그 후로는 종아리 통증으로 인해 1킬로도 달릴 수 없었다. 


밀린 운동도 할 겸, 내게 쌓인 수많은 상념들도 정리할 겸 산행을 계획했다. 

양산 통도사 뒤를 감싸고 있는 영축산 일대를 한 바퀴 돌아오는 약 20KM 정도의 거리에 해당하는 산행을 계획했다.

오랜만에 다시 시작하는 산행이라 너무 만만하게 생각한 탓도 있고, 생각을 정리한다는 마음이 너무 커 산행 계획을 꼼꼼히 준비하지도 않았다. 

근처 마트에서 빵 3개와 커피물 약 1리터 정도만 배낭에 넣고 무작정 출발했다.

지내 마을을 지나 산 초입에 발을 들여놓으면서부터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4~5개월 동안 운동을 전혀 하지 못한 탓에 근력도 많이 감소해졌고, 무엇보다 폐활량이 많이 줄었다는 것을 느꼈다.

애초에 산에다 생각의 찌꺼기를 버릴 요량으로 계획한 산행인지라 홀로 조용히 출발한 것과 체력과 준비물 등 모든 것이 걱정이 되었다.

그래도 8월의 무더위가 등산객들의 발걸음도 막아 세운 탓에 일행 없이 혼자 고행과 상념의 걸음을 걷는 내겐 너무나 조용하고 한적한 것이 참 좋았다.


골드그린CC 옆으로 영축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은 임도와 옛날 산길이 서로 번갈아 만나며 계속 이어진다. 

우리네 인생길도 이와 비슷하리라. 누군가는 죽어라 거친 산길을 걸어가고, 누군가는 임도를 따라 천천히 걸어가고, 또 누군가는 임도 위를 멋진 차를 타고 편안히 가듯 말이다. 그러나 행복의 척도는 그 길을 가는 방식과 정비례하진 않으리라. 

땀을 한 바가지나 쏟으면서도 간혹 불어오는 바람에 행복을 느끼고, 온갖 새들의 지저귐 소리가 그 어떤 오케스트라 연주보다 평안을 주는 것. 

우리네 인생도 이와 같길. 

그래야 ‘숨 쉬고 있는 것이 곧 지옥이다’는 생각으로 살아가는 나 같은 사람도 살아갈 이유가 되지 않을까.


아침을 먹지 않은 탓에 출발한 지 30분 만에 배가 고파온다. 

마트에서 산 한 봉지에 3개 들어있는 빵 중에서 먼저 한 개를 먹었다.  

5시간을 예상하였으니 지금 한 개를 먹어도 충분하리라 생각했다. 

다리 근력에도 다소 부담이 되어 스틱을 조립해 짚었다.

1시간여 만에 정상에 도착했다.

너무나 뜨거운 햇살과 산을 넘어오는 찬바람이 서로 정상에서 만나니 한쪽은 햇살과 한쪽은 안개로 자욱하다.

가야 할 길이 멀어 풍광의 아름다움을 뒤로 한채 걸음을 재촉했다. 

전체적인 코스를 머리에 숙지하지 않고 위성지도만 보고 가는 길이라 몇 번의 되돌아옴을 경험하며 나아갔다.

산행 시작 후 2시간 정도 경과되니 또다시 허기가 찾아왔다. 

다시 빵 하나를 먹었다. 앞으로 약 3시간만 더 가면 산행이 종료되니 그렇게 부담스럽진 않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수통의 물도 3분의 2 정도 남았으니 충분하다 생각했다. 그러나 지도는 내 바람과는 달리 전체 거리 중 3분의 1도 지나지 않았다.


우리가 길을 걸을 때 내가 어디쯤 가고 있고, 남은 길이 어느 정도 인가를 알 때와 모를 때 중 어떤 것이 더 힘들까. 

남은 길과 나의 체력을 모두 안다면 스스로 포기하려는 마음도 많이 생길 것 같다.

우리는 자신의 한계와 남은 길의 거리를 모르니 오늘도 속고 내일도 속아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그러다 보면 언젠가 끝에 와 있을 것이다.

알 수 없는 길을 가다가도 가끔씩은 앞이 훤히 보여 내가 어디까지 왔고, 일단은 저기까진 가야 하는구나를 알 때면 잠시나마 편안함과 자신을 돌아보는 여유도 생긴다.

아무리 걸어도 내가 생각한 거리만큼 진행이 안된다. 

내 앞에도 뒤에도 아무도 없다. 들리는 소리라고는 침입자를 경계하는 새들과 풀벌레의 요란한 지저귐 뿐이다. 어디다 물어볼 수도 없다.

체력은 점점 한계를 나타내는지 물을 계속 찾고, 호흡은 3시간 이상 더운 열기를 계속 들이킨 탓에 들숨과 날숨 모두가 익어버린 듯하다.


아무래도 애초에 5시간을 예상한 건 처음부터 틀린 듯하다. 지금으론 8시간은 족히 걸릴듯하다. 

물은 절반 정도 남았고, 빵은 한 개 남았다. 

앞으로 5시간은 족히 걸어야 할 것이나 무릎이 잠시의 쉼도 없이 걸어온 탓에 열이 너무 많이 난다. 

이대로 계속 가면 무릎 때문에라도 더 이상 걷기가 힘들지도 모를 지경이다.


이제부턴 약 30분 간격으로 잠시라도 쉬면서 무릎의 열을 빼주면서 걸어야겠다.

허기는 점점 심해지고 근육의 피로는 회복이 쉬 되질 않는다. 

갈증의 정도는 한계를 향해 온다. 그러나 수통의 물과 남은 거리를 볼 땐 먹을 수가 없다.

산행 4시간 정도 경과되었을 무렵 지도상 거리를 추측할 때 절반을 조금 넘긴 정도의 지점인 오룡산에 도착했다. 


영축산 정상을 지나면서부터 오르막 내리막이 연속되는 능선길이지만 추측컨데 오룡산을 지나면서부터는 계속해서 내리막이 연속될 것이므로 무릎이 부담스럽긴 하지만 그래도 체력적으로는 훨씬 덜 힘들 것이다. 


여기에서 방심한 탓일까 길을 잘못 들었다. 한 갈림길에서 잘못 들어서고 만 것이다.

오룡산에서 약 200미터 정도는 내려왔을까. 지도를 보니 전혀 다른 방향이다. 산에서 길을 잘못 들었을 때 가장 안전한 방법은 처음 잘못 들어선 지점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체력은 바닥이고 다시 오룡산을 올라가는 길은 너무나 멀고 힘들었다. 갔던 길을 다시 간다는 것은 그것도 체력이 완전 바닥을 향해가는 시점에서는 더욱 힘들다. 


나에게 온갖 욕을 퍼부으며 돌아갔다 오룡산으로.

그리고 갈림길의 다른 방향으로 내려갔다. 오룡산에 다시 오르며 남은 체력을 다 쓴 탓인지 허기와 갈증을 도저히 참을 수 없다.

남은 마지막 빵의 절반을 먹었다. 예상컨데 내리막임을 감안하더라도 앞으로 족히 3시간 이상은 더 걸어야 할 것 같았다.

빵보다 더 심각한 것은 수통의 물이 이젠 4분의 1도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도 나의 힘으로 걸어야 한다. 이 첩첩산중에서 누가 나를 위해 대신 걸어 줄 것인가. 오직 나 이외엔 아무도 내 길을 걸어줄 사람은 없다.


우리네 인생길에서 때로는 동반자를 만나 함께 길을 걷다가도 서로의 인연이 다하면 혼자 걸어야 한다. 

처음 혼자가 되어 걸어야 할 땐 너무나 막막하고, 두렵고, 힘도 들지만 그래도 걸어야 한다. 누구도 나 대신 그 길을 걸어 줄 이는 없다.

나의 짐을 어깨에 지고, 나의 두 다리로 한발 한발 걸어가다 보면 언젠가 끝에 도착하리란 신념으로 걸어가야 한다.


무릎과 발가락이 한계 신호를 보내온다. 산행을 할 땐 양말이라도 여벌로 몇 개를 가져오건만 그래서 수시로 갈아 신어 발가락 물집을 예방하는 것을 잘 알면서도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출발한 탓에 갈아 신을 양말 하나 없다. 

발가락은 그래도 어찌한다만 무릎이 보내오는 신호는 심각함과 함께 불안감으로 다가온다. 


산행 초입에서 허벅지 불안으로 스틱을 너무 일찍 꺼낸 바람에 체력에 무리가 오는 것 같아 산행 약 4시간 지점부터는 스틱을 접어 넣고 스틱 없이 걸어온 것이 무릎에 무리가 가중된 것 같다.

스틱을 꺼내자니 체력이 자신 없고, 그냥 가자니 무릎이 자신 없다.

일단은 무릎을 좀 더 믿어보기로 했다.


산행 약 6시간 봉화봉에 도착했다. 이제 약 4킬로 정도 남았다.

부지런히 걸으면 2시간 정도면 될 것 같다. 문제는 무릎과 체력이다.

오룡산에서 남긴 절반의 빵과 두 모금 정도의 물. 

봉화봉에서 한 모금 마셨다. 남은 한 모금은 최후에 먹으리라. 

다시 걸었다. 다행히 내리막길은 그리 경사가 없이 완만한 내리막이었다. 그러나 무릎은 그 정도의 경사도 받아내기 힘겨워했다. 30분 간격으로 조금씩 쉬었다 가는 전략을 지키기 어려워졌다.

약 2킬로 정도 남은 지점에 이 한 몸 겨우 누울 수 있을 정도의 바위가 보였다. 바위에 철퍼덕 주저앉아 양말을 벗고 벌러덩 누웠다. 한참을 누웠다. 온갖 모기떼가 간만에 만난 포식을 위해 일가친척 모두 불러 모았나 보다.  

모기떼의 독촉을 더는 이기지 못하고 젖은 양말을 다시 신고, 마지막 남은 물 한 모금도 마셨다. 혹시라도 발생할지 모를 조난 때를 위해 남겨둔 마지막 한 모금의 물을 먹었다.

앞으로 남은 거리는 약 2킬로. 지금 상황이라면 1시간 이내에는 통도사 매표소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그곳에는 물 사 먹을 편의점은 있을 것이다. 사고 없이 조심조심 내려가면 1시간은 어찌어찌 될 것이다. 

스스로에게 마지막 남은 물을 마신 것을 상기시키며 발걸음을 옮겼다. 다시금 무릎에 전해지는 무게감과 통증이 느껴진다. 삶도 고통이라는 양념이 있어야 제맛인가 생각한다. 


저 멀리서 음악소리가 들려온다. 지금까지 매미소리, 새소리, 내 숨소리만 듣다 음악소리가 멀리서 들려오니 살았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애굽에서 탈출한 유대인들이 자신의 힘으로 자신의 발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과 같이, 여호와는 그들의 애원에 감응하여 탈출을 돕고, 광야의 생활 중 저장이 불가능한 만나를 주며 고통을 통한 연단의 시간을 보내게 하였으나, 결국 가나안 땅에 들어가느냐 그렇지 못하느냐는 오직 그 길을 가는 자의 자기 의지에 속한다는 것을 다시금 생각한다.

내 삶의 길도 이와 같으리라. 내가 처한 현재의 삶의 길도 나의 의지와 나의 두 다리로 걸어 가나안 땅으로 들어 가리라. 오늘 이 산행에서와 같이.


오늘 산행은 총 거리 약 24킬로, 시간 8시간 40분이 소요되었다.

내가 버려야 할 생각의 찌꺼기를 감안하면 충분한 시간이었다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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