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시작하며 만나는 가을
걷잡을 수 없이 뛰던 심장은 등줄기를 따라 흐르는 땀 한 방울에 잦아들었다.
허리는 꺾이고 숨은 땅을 향해 뿜어 나오지만, 눈은 더 깊고 맑아졌다.
나뭇잎 사이로 쏟아지는 햇빛이 옅은 연무에 갇히듯 알갱이 하나하나가 살아서 움직이고 있다.
치열했던 시간이 가고 잠시 멈추어 뒤돌아본 길은 이미 저만치 멀어져 버렸다.
짙은 초록은 기억에 남고 지나온 발자국 하나하나는 갈길 잃은 아이처럼 헤메이고 있다.
이 가을에 무언가 새롭게 시작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에너지를 나누는 것 역시 쉽지 않다.
힘껏 의욕을 앞 세우다가도 한 템포 쉬어 가기를 반복할 뿐이다.
나에게 부여된 역할과 그 기대에는 늘 작아도 부담이 따르고 선택에 대한 확신 역시 욕심만큼 쉽게 채워지지 않는다. 역시 일은 의욕만 가지고 할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다.
체력이다. 삶은 곧 체력이다.
이 단순한 원칙을 자주 잊는다. 힘을 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아 내기 위해 필요하다.
깊어가는 가을만큼이나, 겨울을 준비하는 나무들만큼이나,
서서히 버리고 내려놓을게 점점 더 많아진다.
어제의 가을보다 시간의 속도와 무게는 더 짙게 다가오는 듯하다.
하지만, 곱게 물든 단풍처럼 노랗게 바닥을 물들이는 낙엽처럼 내 지나온 길이,
내가 내려놓은 것들이 더욱더 화려 했으면 좋겠다.
가을이 그러하듯 나의 계절도 화려한 눈부심으로 물들어 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