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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끝내 넘지 못한 것

by 나영

다치고 나서 가장 걱정되었던 건 ‘다시 말을 탔을 때 무서우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었다.

말이 너무 좋고, 말을 타는 게 너무 좋은데 한 번 떨어졌다는 이유로 무서워져서

다시 말을 타지 못하게 되면 어떡할까 걱정이 되었다.


내 걱정은 반은 맞았고, 반은 틀렸다.


말을 타는 것 자체는 무섭지 않았다.

다치고 난 후 말을 타러 갔을 때, 오히려 교관님께서 왜 이렇게 신나서 타냐고 하실 정도로 무섭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일주일 동안이나 말을 못 탄 한을 풀 듯 나는 재미있게 말을 탔다.


하지만 장애물은 달랐다.


마사회에서는 정해진 일정이나 계획이 있는 편이 아니라 어떤 날은 장애물을 하고, 어떤 날은 하지 않았다.

그러다 날씨가 조금 더 추워질 즈음, 교관님들이 다시 장애물을 시작하셨고 우리도 함께 하게 되었다.

다친 지 한 달이 조금 넘었을 때 감독님께서는 장애물로 간단한 평가를 하겠다고 하셨다.


몸을 푸는 동안 크리비퀸은 위아래로 점핑을 하며 에너지를 풀어냈다.

코로는 마치 자기가 공룡이라도 된 것처럼 콧김을 세게 내뿜었다.

평소 같았으면 웃겼을 그 모습이 그날은 괜히 더 크게 느껴졌다.


드디어 장애물 앞에 섰다.

구보를 시작해 속도를 붙이고, 코너를 돌고, 장애물을 바라보며 거리를 쟀다.

맞는 타이밍이 오기를 기다리며 마음속으로 숫자를 셌다.

하나, 둘, 셋.

제대로 뛰긴 뛰었지만 착지하자마자 크리비퀸은 뒷발을 차며 로데오를 했다.


두 번째 시도.

다시 같은 과정을 거쳐 장애물에 가까워졌고 마음속으로 숫자를 세려 했다.

하나, 둘, 셋.

낙하. 장애물이 떨어졌다.


세 번째 시도에서는 더 이상 과정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어떻게 코너를 돌았는지도, 속도를 어떻게 맞췄는지도 흐릿했다.

머릿속에서 해야 할 생각들이 제자리를 잃고 흩어졌다.

원래라면 자연스럽게 세어졌을 거리도 세어지지 않았다. 대신 ‘또 떨어지면 어떡하지’라는 생각만 반복해서 떠올랐다.


그때 나는 내 손과 다리가 떨리고 있다는 걸 느꼈다.

떨린다는 사실보다 그걸 멈출 수 없다는 게 더 무섭다는 것이었다.

조끼를 입은 가슴이 점점 답답해졌고 숨이 얕아졌고 다리에 힘이 풀렸다.

크리비퀸의 걸음 하나하나가 평소보다 너무 크고 무겁게 느껴졌다.

마치 말이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쪽으로 끌려가는 기분이었다.


그 순간에는

‘넘어야 한다’ 거나 ‘해내야 한다’는 생각이 아니라 그냥 여기서 멈추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이 순간만 벗어날 수 있다면 어떻게든 괜찮아질 것 같았다.


다시 해볼 거냐고 물으시는 감독님께 나는 못하겠다고 대답했다.


못하겠다고 대답했을 때,

누군가가 이유를 묻거나 멈춰 서서 기다려줄 거라 기대하지는 않았다.

다만 내가 느낀 이 두려움을 나 혼자 해결해야 한다는 사실을 그제야 분명히 알게 되었다.

교관님도 감독님도 내가 무서워하고 있다는 걸 정확히는 모르는 것 같았고,

그 이후에도 이 감정을 함께 넘어가 줄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냥, 혼자 남겨진 채로 장애물을 넘는 말들을 멀찍이서 지켜봤다.


“그럼 마무리해.”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알 수 있었다.

아마도 나는 다시는 장애물을 하지 못할 거라는 걸.


마무리 운동을 하며 감독님께서 장애물을 지도하시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순간의 두려움을 넘지 못하고 멈춰 선 나는 이후에도 지켜보기만 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축구 경기에서 벤치에라도 앉아 있던 사람이 이제는 혼자 락커실에 앉아있는 기분이었다.


그때로 다시 돌아가 다시 해보겠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나는 아직도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다.

1년이 지난 지금도 이 글을 쓰며 그 순간을 떠올리면 심장이 떨리는데

과연 다시 할 거라고 말할 수 있을까? 싶다가도,


다시 해보겠다고 대답하고 장애물을 넘었더라면

마사회에 조금 더 오래 있을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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