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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호 Apr 24. 2024

[명사강의] 영웅은 어떻게 탄생하는가?

사기 항우본기를 중심으로 한 이성원 교수님 강의 요약

[영웅은 어떻게 탄생하는가 :

사마천의 영웅서사中 ‘항우본기’를 중심으로]

이성원(전남대 사학과 교수)   2024.04.23(수) 19:00 ~ 21:00 강의



저녁시간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광주시 남구도서관에서 기획한 ‘인문학 밤 산책’ 첫 강의가 남구 청소년도서관에서 열렸습니다.  雨中 퇴근 시간임에도 불구,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60여 명의 청중이 모인 가운데, 첫 강의로 전남대 사학과 이성원 교수님이 초청되었습니다.


이성원 교수님은 서울대 동양사학과에서 학석박사를 하셨고, TVN <벌거벗은 세계사>에 출연해 삼국지를 강의하신 분입니다.  목소리가 참 좋으십니다.  두 시간 동안 진행된 강의는 알차고 만족스러웠습니다.


교수님 외부 강의에 요즘 잘 다루는 주제라고 하니, 강의 전체를 자세하게 적다 보면 교수님 밥그릇(?)에 문제가 생길 수 있어, 간략하게 요약해 봅니다.


강의는 사마천이 [사기]를 왜 기술하게 된 배경과, [사기]가 가진 의미와 구성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사기]는 기전체(本紀의 紀와 列傳의 傳에서 따온 말로, 紀와 傳 이 없으면 기전체가 되지 않음)로 기술되었으며, 역사의 중심을 그 주체인 ‘사람’에 둔 책입니다.  130권 총 526,300字 분량으로, 제왕들의 역사를 다룬 本紀가 12권, 기전체임에도 시대순으로 정리한 연표인 表가 10권, 하늘의 운행 원칙인 8괘의 세계를 차용해 주제별 역사를 기술한 書가 8권(이 부분이 가장 어렵다고 합니다), 제후들의 이야기인 世紀가 30권,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인 列傳이 70권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당시는 종이가 아닌 죽간이나 목간을 끈으로 묶었는데, 목간 하나의 사이즈가 세로 21센티(尺이라고 함), 가로 1센티(寸이라고 부름) 정도로, 이 모양이 책처럼 생겨 冊이라는 부르고, 이 책들을 가죽끈으로 묶어 말아 놓은 것이 두루마리 권 자를 사용해 卷이라 불렀답니다.  이러한 사기는 正史의 효시이자 위대한 역사서로 동양역사의 아버지로 불러도 손색이 없고요.

특이한 건 제후들의 이야기를 다룬 세기는 원래 북극성을 수호하는 28개의 별자리를 차용해 28名이여야 하나, 제후가 아님에도 공자와 진나라가 멸망하게 된 민중봉기의 방아쇠를 당긴 진섭이라는 사람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네요.  많이 들어 보셨겠지만 진섭은 “왕후장상의 씨가 태어날 때부터 따로 있겠는가?”라는 말을 했다고 하는데, 정확한 전언보다는 사실에 입각해 사기를 기술한 사마천의 스토리 텔링이라는 게 더 적절한 표현입니다.


이야기는 항우와 유방이 치열한 다툼을 벌인 초한지를 생각하시면 됩니다.  진시황이 다섯 번째 천하순행을 하던 중 길에서 객사(BC210)하고, ‘지록위마’(사슴을 가리켜 말(馬)이라 우긴다”는 말로 윗사람을 멋대로 주무르고 권세를 마음대로 휘두른다는 의미)의 고사로 유명한 천하의 간신 조고가 진시황의 유언을 은폐, 왜곡해 호해를 2대 황제로 만들지요.  진승(진섭)의 반란과 유방과 항우의 봉기, 둘의 다툼이 전개됩니다.

홍문이라는 곳에서 운명을 건 항우와 유방의 홍문지회가 이루어지는데, 유방을 제거하려던 책사 범증의 계략이, 항우의 자존심과 우유부단함으로 인해 실행되지 못하고, 유방은 줄행랑으로 기사회생하면서, “아! 어린아이(항우)와는 천하를 도모할 수 없구나.  항우를 무찌르고 천하를 얻을 자는 반드시 패고(유방)이 될 것이다”라는 탄식의 말이 나오게 되지요.  여기에 항우 휘하의 장수로 있었던 한신이 항우를 배신하고 유방 편으로 변절하면서 천하를 차지하기 위한 일대 대전인 초한전쟁이 벌어집니다.  홍문의 기회를 잃고 함양에 입성한 항우가 또 한 번의 시대착오적인 패착을 두는데요.  첫째, 학살과 파괴. 시황릉의 방화 등으로 유방의 위민정책인 ‘약법삼장’(“사람을 살해한 자는 사형에 처하고, 사람을 상해하거나 물건을 훔친 자는 죗값을 받는다”는 내용으로, 그 밖의 진나라의 무자비한 법은 모두 없앤다는 위민정책)과 대비되는 행태를 보였다는 점,  둘째, 중국 통일로 중앙집권체제를 만든 진의 체제를 다시 봉건제로 후퇴시켰다는 점,  셋째, 유방을 한왕으로 책봉하고, 자신을 서초패왕으로 스스로 삼고, 함양을 버리고 자신의 근거지로 돌아갔다는 점(여기서 ‘금의환향’이라는 고사가 유래)입니다.  교두보를 제대로 확보하지 못한 게지요.

천하를 동서로 양분하기로 한 명세를 한 홍구지맹을 유방은 지키지 않고, 회군하는 항우 뒤통수를 말머리를 돌려 급습합니다.  이때 쫓긴 항우의 군대는 해하성에 들어가게 되는데요.  해하성을 겹겹이 포위한 유방의 진영 사방에서 들려오는 초나라 노랫소리를 들으며, 항우는 비분강개하며 눈물을 흘립니다.  이때 항우가 읊었다는 ‘해하가’를 잠시 감상해 봅니다.


해하가(垓下歌) : 항우(項羽)

힘은 산을 뽑을 만하고, 기운(기개)은 세상을 뒤덮을 만한데

때가 이롭지 못하여(불리하여) 오추마(관우의 적토마에 비견되는 자신의 명마)도 나아가지 못하는구나.

오추마가 치고 나아가지 않으니 어를 어이할꼬?

나의 애첩 우미인(虞美人)이여 너를 어찌할꼬?


力拔山兮氣蓋世 時不利兮騶不逝

騶不逝兮可奈何 虞兮虞兮奈若何


이미 이 시에서 승패는 갈린 것으로 보입니다.


 홍구에서 천하양분 지맹을 맺었다고 했죠?  당송 8 대가의 한 사람인 당 시인 한유(768~824)가 사건이 발생한 천 년 후, 하남성 개봉 서쪽을 흐르는 홍구를 지나가다 유방과 항우의 고사를 생각하며 지은 詩라는 ‘과홍구’도 한 수 감상해 보시죠.


過鴻溝(과홍구) - 한유

龍疲虎困割川原(용피호곤할천원)

용은 지치고 호랑이도 피곤하여 강과 들을 나누어 가지니

億萬蒼生性命存(억만창생성명존)

이로 인해 억만창생의 목숨이 살아남게 되었네

誰勸君王回馬首(수권군왕회마수)

누가 임금에게 권하여 말머리를 돌리게 했는가

眞成一擲賭乾坤(진성일척도건곤)

참으로 한번 겨룸에 천하를 걸었구나


이 시에서 고사성어 ‘건곤일척(하늘이냐 땅이냐를 한 번 던져서 결정한다’이 나왔습니다.


해하성에서 빠져나와 오강에 이르렀을 때, 항우를 따르는 군졸은 28기에 불과했습니다.  오강을 건너 “차일을 도모하라”는 부하의 말을 따르지 않고, 항우는 여기서 스스로 자결을 택합니다.

당 시인 두목(803~852)이 오강정자에서 지은 시라는 ‘제오강정’입니다.


題烏江亭(제오강정) : 오강정을 제목으로 짓다 : 杜牧(두목)


勝敗兵家事不期(승패병가사불기)

이기고 지는 것은 싸움의 보통일로 예측키 어렵나니


包羞忍恥是男兒(포수인치시남아)

수치를 참고 견디는 것이 진정한 사내라


江東子弟多才俊(강동자제다재준)

강동의 아들들 중에는 뛰어난 인물들이 많으니


捲土重來未可知(권토중래미가지)

흙먼지를 일으키며 다시 온다면 결과는 알 수 없으리

여기서 그 유명한 ‘권토중래’가 나왔고요.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는 말이 있지만, 항우가 자결을 택하지 않고 후일을 도모했다면 역사는 어느 쪽으로 진행되었을지 자못 궁금해지는 게 사실입니다.

이번 강의는 역사 이야기만 있는 게 아니라, 역사와 관련된 한시도 접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강의 말미에 교수님께서는 “전쟁에서의 승자는 유방이었으나, 역사에 길이 남는 승자는 항우였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기에 [사기]에서 가장 매력적인 부분이 항우본기라고 하시고요.  2003년 만우절에 거짓말처럼 자살한 故 장국영이 출연한 중국영화 <패왕별희(1993)>에 대한 추억도 이야기하십니다.


“지금도 초한전쟁은 끝나지 않고, 장기판에서 현재도 진행 중”이라는 말씀으로 강의를 맺으셨습니다.

강의 듣는 내내 교수님께 흠뻑 빠져버렸네요.  혼자 듣고 묻어 두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좋은 분들과 공유하고자 간략하게 정리해 보았습니다.  정리한 내용이 강의와 다른 부분이 있다면 오로지 정리를 잘못한 저의 불찰이니 양해 부탁 드립니다.

열강 해주신 이성원 교수님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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