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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호 May 23. 2024

[2024  독후기록 32]  아무튼, 데모.

정보라.

[아무튼, 데모]

정보라, 위고, 2024년 3월, 볼륨 170쪽.



제가 좋아하는 <아무튼 시리즈>입니다.  이번엔 주제가 ‘데모’네요.


정보라 님은 1976년 서울生으로 SF소설작가이자 번역가십니다. 대학에서 비정규직으로 보따리 장사를 오랫동안 해오셨고, 집회에 자주 참가하는 활동가 시네요. 연세大를 나와 美 예일대에서 석사를, 인디애나대에서 슬라브문학으로 박사를 하신 분입니다.  2022년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분에 [저주 토끼(2017)]라는 작품이 후보에 올랐고, 2023년에는 전미 번역상 후보에도 오르셨네요.  부커상을 알게 된 건 한강 작가님의 연작소설 [채식주의자(2007)]가 수상하면서입니다.  최근 황석영 작가님의 [철도원 삼대(2006)]가 본상 최종후보작으로 올랐다 어제 본상 수상에는 실패했다고 합니다.  [철도원 삼대]는 <일당백>에서 지지난주 두 번에 걸쳐 다룬 작품인데, 한반도 100년의 이야기가 어우러진 작품으로, 조만간 읽어볼 책으로 찜해 두었거든요.  이 책에서도 공장 노동자 이진오가 굴뚝에 올라 펼치는 고공농성 이야기도 나오는데, 정보라 작가님 책 읽다 보니 고공농성이란 게 매우 위험한 시위방법이더군요.  “집회 보다도, 그 어떤 의제보다도 생명과 안전이 언제나 최우선이다”라는 문장에 밑줄을 진하게 긋습니다.


세월호 농성장, 21세기 수도 서울에서 벌어진 이태원 참사,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 폐지를 주장한 전장연 시위(이분들의 출근길 투쟁이 시민들의 발목을 담보로 한 과한 투쟁이라 여겼었는데, 책을 읽고 생각을 고쳐 먹게 되었습니다),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2007년부터 시작), KTX승무직 해지 노동자 등 수많은 시위 현장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삶은 형벌이 아니다.”  차별금지법, 생활동반자법, 동성혼 법제화 등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담겨있습니다.  이 분은 “세상은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 강조하십니다.

시위 방법 중 오체투지의 장면이 나오는데요.  언젠가 다큐멘터리에서 영혼의 구도를 위해, 티베트 라싸 포탈라궁으로 묵묵히 오체투지라는 수행법을 통해 가는 장면을 본 적 있는데, 이 구도의 과정 자체도 힘들겠지만, 한여름의 아스팔트 길, 겨울의 얼어붙은 땅에서 삼보일배로 나아가는 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겠음을 느끼게 됩니다.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아무것도 모른다.  강의실 앞 빗물을 막기 위해 놓아둔 모래주머니 하나가 누군가 에겐 걸림돌이 된다는 사실을.  타인의 몸을 경험할 방법이 없으니까 비장애인은 장애인이 경험하는 세상을 정말, 전혀, 하나도, 결단코 알지 못한다.  그리고 자기가 뭘 모르는지도 모르기 때문에 배우거나 이해하려고 시도해야 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81쪽)는 문장이 가슴을 푹 찔러 옵니다.


남편(노동 노동운동가)을 2015년 서울대 음악대학 강사 집단해고 농성장에서 만났답니다.  강의하는 사람으로서 학생들 앞에서 떳떳한 사람이 되고 싶고, 학생들의 미래를 조금이라도 안전하고 평등하고 건강하게 만드는데 일조하고 싶기 때문에 열심히 시간 닿는데 까지 집회에 참석하고 응원을 보내고 있습니다.

시위에 참석하는 사람들이 전문 운동가가 아닌, 우리들의 평범한 이웃들이라는 점도 인상적입니다.  태어나면서부터 데모전문가가 있는 건 아니니까요.


홍콩국가보안법을 반대한 홍콩시위, “흑인의 생명도 중요하다”는 조지 플로이드 사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스라엘 군의 가자지구 폭격 등의 해외연대 사례에선, 외국에서 벌어지는 일들도 나와 전혀 무관한 일만은 아님을 인지하게 됩니다.


본인의 박사논문 주제가 ‘유토피아’ 였답니다.  “자신이 살아있는 동안 유토피아가 이루어질 것이라 믿지는 않지만, 꼭 내 눈앞에서 이상향을 보는 순간이 오지 않더라도 어쨌든 더 좋은 앞날을 위해 노력한다.  그래서 데모한다.  나는 언제나 집회에서 많은 것을 배운다.  지치고 힘들어도 우리는 더 좋은 세상을 위해 함께 나갈 것이다.  투쟁!”이라 글을 맺고 있습니다.


얇고 작은 책이지만 많은 걸 담고 있는 책입니다. 일독을 권합니다.


올해 32번째 책 읽기


#독후기록  #정보라  #데모  #집회  #시위  #아무튼데모  #아무튼시리즈

#고공농성  #오체투지  #유토피아  #멘부커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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