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학자이자 동물행동학자인 최재천 교수님 新刊입니다. 워낙 유명하신 분이기에 작가 소개는 따로 하지 않겠습니다. 저녁 걷기 운동하다 <세바시>에 나온 교수님의 짤막한 강의를 접하고 읽게 된 책입니다.
200쪽 조금 넘는, 얇은 책입니다. 총 5부 구성인데요. 1부 ‘숙제’에서는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여러 갈등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이념갈등, 지역갈등, 계층과 빈부갈등, 남녀갈등, 세대갈등, 환경갈등(본원적으로는 세대갈등의 한 유형), 다문화갈등을 살펴봅니다. 갈등에 대해 “수면 아래 가라앉기보다 세상에 드러나고 있는 현상이 오히려 우리 사회가 그만큼 선진화하고 있음을 방증한다”는 시각이 새롭습니다. 갈등 자체가 나쁜 게 아니라, 이러한 갈등을 어떻게 슬기롭게 극복하고 보다 합리적이고 따뜻한 사회를 만들어 낼지가 핵심입니다.
2부는 교육 문제입니다. ‘체계적인 가르침’이 교육입니다. 다른 동물들과 달리 인간은 이전 세대가 터득한 지식과 지혜를 口傳 또는 記錄으로 다음 세대에 전달하는 유일한 동물로, 이런 체계적 가르침을 위해 만든 게 학교입니다. 우리 교육은 혁명적 변화가 필요할 만큼 고질적인 폐해를 드러내고 있는데요. 교육 문제든 갈등이든 상당 부분이 ‘토론 부재’에 기인합니다. 우리 사회는 조선시대 왕실에서의 경연제도, 구한말 <독립신문> 등을 통해 토론문화가 자리 잡고 있었는데, 일제 식민시대를 거치면서 토론문화가 말살되었고, 오늘날까지도 악영향을 받고 있다 진단하십니다. 지금 우리의 교육은 결코 4次산업혁명 시대에 걸맞은 창의적 인재를 길러낼 수 없으니 혁명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주장합니다. 우리 교육이 도약하려면 무엇보다 학교 현장에서의 숙론 수업이 도입되어야 한다면서요.
토론(Discussion)은 남의 예기를 들으며 내 생각을 가다듬는 행위입니다. Debate가 논쟁이라면, 우리는 논쟁 수준에도 못 미치는 언쟁, 즉 말싸움을 하고 있을 뿐이라 진단합니다.(민의의 전당이라는 국회를 보면 실감) 書名인 숙론(Discourse)은 여럿이 특정 문제에 대해 함께 깊이 생각하고 충분히 의논하는 과정을 뜻하는 말로, ‘진지하고 심각한 토론’을 의미합니다. 숙론은 상대를 제압하는 게 목적이 아니며, 남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왜 나와 상대의 생각이 다른지 숙고해 보고 자기 생각을 가다듬으려고 하는 행위입니다. 여기서의 핵심은 ‘누가 옳은가(Who is right)?’가 아니라 ‘무엇이 옳은가(What is rigut)?’를 찾는 겁니다. 우리나라가 모든 분야에서 ‘K’를 앞세워 약진하고 있는데 상대적으로 뒤떨어진 게 토론분야임을 지적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된 건 전적으로 학교에서 제대로 된 토론 수업을 받아본 적이 없기 때문인데요. 토론을 잘하는 방법에 앞서, 토론을 제대로 이끌 진행자(퍼실리테이터) 양성이 필요하며, 학교에서의 토론수업 도입을 위해 교사들에 대한 교육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이를 위해 5장을 통째로 할애해 바람직한 숙론을 이끄는 기술들에 대해 설명합니다. 저자께서 이 책을 쓴 가장 큰 목적이기도 한 핵심이라 생각됩니다.
“대담이나 숙론이나 자신이 말을 잘하는 게 대단한 게 아니라, 상대의 말을 얼마나 잘 듣느냐가 중요하다.”(170쪽) 백 번 맞는 말입니다. 以聽得心.
“이 세상에 멍청한 질문이란 없다”(칼 세이건). “진짜 멍청한 질문은 묻지 않는 질문이다”(180쪽)는 문장에 진하게 밑줄 긋게(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이라 실제 줄 긋진 못하고 마음속으로 긋습니다) 됩니다. 2010년 G20 서울회의 폐회 기자회견에서 오바마 美대통령이 성공적인 회의가 되도록 물심양면으로 힘써준 한국에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자, 한국 기자들에게만 질문할 기회를 부여한 적 있습니다. 이때 명문대를 나오고 언론고시를 통해 기자가 된 분들 중 단 한 명도 오바마에게 질문하지 못하는 장면이 연출되고, 이때 중국기자 한 명이 일어나 한국기자들 질문이 없으니, 아시아인인 자신이 대신 질문해도 되느냐 요청합니다. 이를 제지하는 오바마 대통령과 중국 기자 사이에 약간의 실랑이가 벌어지는데요… 이 장면을 보면서 많이 씁쓸하더군요.
“소통은 안 되는 게 정상”이라 해도, 우리가 하는 거의 모든 일의 어느 순간에는 반드시 소통이 필요합니다. “대담이나 숙론의 목적은 참여하는 사람들의 경험과 지혜를 보다 많이 이끌어 내, 주어진 이슈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공감대를 넓혀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내는 것”(188쪽) 임을 다시 눈여겨보게 됩니다.
토론이 主가 되는 교육혁명, 갈등의 의제를 놓고 언쟁이나 논쟁을 멈추고, 서로를 존중하며 대화하는 숙론의 과정을 통해, 대한민국이 존경받는 진정한 선진국이 되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