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레비츠키 & 대니얼 지블랫 共著, 박세연 飜譯, 어크로스, 2024년 5월, 볼륨 373쪽(각주 제외)
9월이 시작되었습니다. 모기 입이 비뚤어진다는 처서가 지난 지도 오래인데요. 아직도 폭염주의보 문자가 날아오는 걸 보면 무더위가 가시지 않은 모양입니다.
하버드大 정치학과 교수인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의 두 번째 공저입니다. 2017년에 나온 첫 책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이후 저자들이 많이 답답했던 모양입니다. 미국의 민주주의가 심각한 위기에 처해있고, 이는 신성시되는 미국 헌법에서 비롯된 제도에 기인하고 있으니, 헌법을 개정하자는 주장이 등장합니다. 미국이 직면하고 있는 민주주의 위기에 대해 조목조목 사례를 통해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고 있는데요. 읽다 보니 단순이 미국만의 이야기가 아닌, 지금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과 데자뷔(기시감) 되어 흥미로웠습니다.
서문에서는 ‘민주주의가 지켜야 할 3가지 기본원칙’을 제시합니다. 첫째, 선거 결과에 승복할 것. 매우 중요한 이야기인데요, 앞으로 얼마든지 다시 승리할 기회가 열려있다 생각하고, 권력 이양이 재앙(정치보복)으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야만 가능합니다. 둘째, 권력 쟁취를 위해 폭력을 사용하지 말 것, 셋째, 극단주의 세력과 동맹(연합)을 맺지 말아야 함을 원칙으로 삼습니다.
책에서는 ‘충직한 민주주의자’와 ‘표면적으로 충직한 민주주의자’(무늬만 민주주의자로 가짜 민주주의자)로 구분합니다. ‘표면적으로만 충직한 민주주의자’가 민주주의 붕괴의 강력한 조력자임은 두 말하면 잔소리고요.
‘충직한 민주주의자’는 네 가지 기본원칙을 지닙니다. 첫째, 당의 주류에 반대하는 위험을 무릅쓰고(자신에게 불리해 질지라도) 자신이 속한 조직에서 反민주적 극단주의자를 내쫓으려고 한다. 둘째, 반민주적인 행동에 관여한 연합단체와 모든 관계를 끊는다. 셋째, 연합을 생성했거나 이념적으로 가까운 단체가 관여한 상황에서도 정치적 폭력과 다양한 반민주적인 행동을 확실히 비판한다. 넷째, 반드시 필요한 경우에는 반민주적인 극단주의자를 고립시키거나 물리치기 위해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경쟁 정당과 손을 잡는다.
‘표면적으로만 충직한 민주주의자’가 민주주의를 위협해 전제주의 국가로 만들어버리는 방법에 대해서도 이야기합니다. 첫째, 헌법이나 법률의 허점을 이용하는 것(오바마의 대법관 임명 동의안에 법 규정상 언제까지 동의해야 한다는 조문이 없다는 이유를 들어 상원에서 동의를 미루고 트럼프가 취임 후 자기 입맛에 맞는 대법관을 지명해 임명한 사례. 우리나라에서 최민희 의원에 대해 언제까지 임명해야 한다는 규정이 없다는 걸 이유로 대통령이 방송위원으로 임명하지 않은 일), 둘째, 과도하거나 부당한 법의 사용(대통령의 사면권 남용, 거부권 남용, 의회에서의 대통령 탄핵권 남용 등), 셋째, 법의 선택적 집행(이어령비현령), 넷째, 법률전쟁을 들고 있습니다.
1861년 남북전쟁 이후 일명 ‘再建시대’에 흑인의 투표권이 보장되었으나, 이후 백인 우월주의가 다시 등장하고, 1964년 시민법과 1965년 투표법이 개정되기 전까지 흑인들에 대한 권리가 심각하게 침해되었음을 지적하며, 이는 공화당(노예 해방을 추진한 링컨이 당시 공화당이 소속 이었다는 아이러니)과 민주당(남부 노예제 찬성세력)이 공모한 합작품 이었음을 고발합니다.
민주주의는 ‘다수의 지배’(다수결의 원칙)와 동시에 ‘소수의 권리가 보장’되어야 합니다. 다수결의 원칙이 적용되더라도, 절대 침해되지 않아야 할 것에 대해 소수의 권리를 위한 여러 장치를 마련해 놓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수에게 족쇄를 채우기 위해 설계된 이러한 규칙은 정치적 소수가 다수를 지속적으로 억압하고, 심지어는 다수를 지배하도록 만들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임을 지적합니다. 헌법을 개정하기 위한 규칙이 실제 개정이 불가능할 정도로 엄격하고, 입법을 방해하기 위한 무제한 필리버스터가 허용되고 있다는 점(우리나라와는 다르게 운용됨), 임기제가 아닌 종신 대법관 제도를 채택하고 있어 한 세대 전에 법을 공부한 판사들이 시대에 맞지 않는 판결을 내놓는다는 점(낙태금지를 다시 합헌으로 만들어 놓은 사례), 승자독식의 구조를 만든 선거인단 간접 선거제도,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사법부의 사법심사제도 등에 대해 조목조목 비판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2020년 민주주의 다양성 연구소가 내놓은 “미국 공화당을 중도우파라기보다, 튀르키에의 정의개발당, 오르반 총리가 이끄는 헝가리의 피데스와 같은 독재 정당과 더 가깝다”는 평가에 주목합니다. 그래서인지 마지막 8장에 <민주주의를 민주화하다>라는 제목으로, 미국이 다인종 민주주의 사회로 나갈 것인가? 아니면 민주주의가 아닌 사회로 빠져들게 될 것인가? 의 기로에서 미국의 위기를 해결할 대안을 제시합니다. 그 대안은 첫째 투표권을 제대로 확립해야 한다(공화당에서 도입한 투표자 신분확인법의 철폐). 둘째, 선거결과가 다수의 선택을 반영하도록 만들어야 한다(국회의원 선출방식에 ‘비례 대표제’ 도입), 셋째, 지배하는 다수의 힘을 강화해야 한다(상원에서의 무제한 필리버스터 폐지 혹은 강제종료 가능 정족수 완화, 대법원 판사에 대한 종신제 폐지 및 임기제한)로 정리하는데, 현재의 헌법하에서는 실효성을 거두기에는 요원한 이야기로 들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화를 가로막는 가장 큰 무기는 침묵”임을 이야기하며, “민주주의는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개혁은 우리가 의식적으로 만들어 나가는 것”이라 주장하며 책을 마무리합니다.
이 책을 쓰게 된 직접적인 계기가, 2021년 1월 6일 선거 패배에 불복한 트럼프 지지자들이 국회의사당을 습격하는 사건 이었는데요. 이러한 의회파괴 사건에 대해 트럼프는 이들을 두둔하고 배후 조종하는 역할을 맡아 미국을 충격에 빠뜨렸습니다. 그 전인 2019년 12월 16일 우리나라 국회에서 먼저 그와 유사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자유한국당과 우리 공화당 지지자들이 공수처설치, 선거법 저지 규탄대회 도중 국회의사당에 불법 진입하여 국회의원과 경찰에게 폭력을 행사하였습니다. 처음에는 우발적인 행동으로 여겨졌으나 실제로는 전날부터 미리 계획한 계획범죄였음이 밝혀졌는데요. 당시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는 국회에 들어온 시위대 앞에서 “여러분이 들어오신 거 이미 승리한 겁니다. 이긴 겁니다. 자유가 이깁니다.”는 환영 연설까지 했었는데, 이런 면에선 우리가 미국보다 선진국(?) 이였네요.ㅠㅠ
미국 이야기를 읽으며 두 가지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나는 가장 민주적이라 생각되던 미국이 시대와 상황 변화에 제대로 반응하지 않아 비민주적인 국가로 추락하고 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이러한 현상이 태평양 건너 미국만의 상황이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라는 점입니다. 대부분 공감하시는 부분일 테니 구체적인 이야기는 이만 줄입니다만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내용임은 꼭 말씀드리고 싶네요.
자유민주주의를 사랑하시는 분, 발전된 민주주의를 희망하시는 분, 독재와 전제주의에 반대하시는 분들에게 일독을 추천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