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 작가님 新作 산문集입니다. 1948년生이시니 올해로 76세입니다. 부친이신 김광주 님은 경향신문 편집국장을 지내셨고, 백범 김구 선생님을 모셨던 분입니다. 백범선생님이 흉탄에 유명을 달리한 후 실의에 빠져 술로 아픔을 달래다 일찍 돌아가셨네요. 부친의 별세로 가세가 기울어(묘지 비용 마련도 힘들어 분할 납부) 다니던 고려대를 중퇴합니다. 1973년 한국일보에 입사했고, 국민일보와 한겨레신문을 거쳐 시사저널 편집국장을 지냈습니다. 1994년 소설 [빛살무늬 토기의 추억]으로 46세의 나이에 문단에 등단 후, 30여 년을 작가로 살아오신 분입니다.
제가 믿고 읽는, 그리고 좋아하는 작가입니다. 한국일보 근무 당시 황석영 작가 전담 기자였답니다. 당시 황작가께선 [장길산]을 신문에 연재 중이었는데, 원고가 펑크 나지 않도록 관리하는 일이 주업무였다고해요. 그럼에도 펑크가 나면 지난 줄거리 요약으로 지면을 땜빵하곤 했는데, 그 글을 쓰신 분이 김훈 작가였다고 합니다.
2004년에 나온 [자전거여행]에 푹 빠졌고, [칼의 노래], [남한산성], 얼마 전엔 의사 안중근이 아닌 인간 안중근의 이야기를 담은 [하얼빈]도 좋았습니다. 산문집으로 [라면을 끓이며(2015)], [연필로 쓰기(2019)]이후 내놓으신 책입니다. 코로나 시대와 현재까지의 글들을 엮어 내놓으셨네요.
“핸드폰에 訃告가 찍히면 죽음은 배달 상품처럼 눈앞에 와 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산 자의 시간과 죽은 자의 시간은 서로 넘나들지 못한다. 이 경계에 관하여 산 자는 말할 수 없고(경험해보지 않았기에), 죽은 자는 산 자에게 말해 주지 않는다(죽었기에 말할 수 없기에).(35쪽)” 제가 고등학교 동기동창회 총무를 맡고 있는데, 주로 하는 일이 경조사를 공지하고 화환을 보내는 일을 하다 보니, 이 문장이 눈에 확 들어오네요. 코로나 이후 집합금지 등으로 ‘마음 전하실 곳’ 이란 표현으로 부조금 계좌를 알려오는 게 일반적인데요… 편하고 좋은 면도 있지만 왠지 좀 삭막하고 씁쓸한 느낌도 드는 게 사실입니다. 前 직장 친한 선배님께서 이 책을 소개하면서 “서론 ‘늙기의 즐거움’에 반해 고른 책”이란 카톡을 보내와 신간이 나온 걸 알았습니다.
책은 訃告뿐 아니라 작가님의 자택과 집필실이 있는 일산(고양) 정발산 이야기, 일산호수 이야기, 집 나무에 날아든 여치의 알 품기, 집 근처 버스 정류장 인근에 위치한 ‘대중식당’ 등 일상에서 접하는 대상들에 대한 관찰과 생각의 편린들이 담겨 있습니다. 더불어 중도주의자로 분류되어 정치색을 잘 나타내지 않는 분이신데, 세월호 사건과 하청 노동자분들의 안타까운 사고를 접하면서 세월호특별법, 산업안전보건법,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에 관심을 갖고 목소리를 내셨는데 해당 내용들도 책에 담겨 있습니다. “문학이 세상을 구원한다”는 말을 인정하지 않으며, “세상의 길과 이어지지 않는다면 책 속에 무슨 길이 있겠는가(158쪽)”라며 본인의 생각을 차분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書名으로 쓰인 ‘허송세월’은 反語적 의미입니다. ‘허송세월’의 사전적 의미가 의미 없이 시간을 흘려보낸다는 뜻이 잖아요. 그런데 “난 허송세월로 바쁘다”며 그 한 가지 일로 일산호수공원에서의 ‘햇볕 쪼이기’를 이야기합니다. 이 장면을 읽다 알렉산더 대왕이 디오게네스를 만나 “무엇을 원하는가?”라 묻는 장면이 오버랩되더군요. 디오게네스가 “태양을 가리지 말고 비켜달라(Stand out of my sunshine!)”는 그 장면 말입니다.
소설가의 문장임에도 중언부언 만연체가 아닌 간결한 문장, 시인처럼 언어의 조탁이 느껴지는 글, 형용사와 부사의 사용을 가급적 자제하는 작가님의 문체가 잘 느껴지는 책입니다. 다 아시는 사실이겠지만 지금도 운전면허가 없고, 기계치이다 보니 원고지에 반드시 연필로만 글을 쓰시는 분입니다. 인쇄된 자신의 글은 절대 다시 읽어보지 않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