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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독후기록 36] 이토록 역사적인 도서관

우리 근현대사의 무대가 된 30개의 도서관 이야기

by 서민호

[이토록 역사적인 도서관]

副題 : 우리 근현대사의 무대가 된 30개 도서관 이야기.

백창민, 한겨레엔, 2025년 3월, 볼륨 503쪽.



연휴가 시작되기 전 친구랑 둘이서 베트남 고원도시인 달랏에 다녀왔습니다. 해발고도 1,500 고지에 위치해선지 덥지 않고 시원하더군요. 여행가방에 담아 함께 여행한 책입니다.


백창민 님은 책을 좋아하는 책사냥꾼입니다. '북헌터'의 대표이자 도서관 덕후, 도서관 스토리텔러입니다. 전국에 위치한 모든 도서관(공공도서관만 작년 기준 1,271개소)을 둘러보는 '도서관 도장 깨기' 중으로 현재까지 500여 곳을 다녔다고 합니다. <오마이뉴스> '도서관 그 사소한 역사'라는 칼럼에 16개월간 연재한 내용을 묶어, 올봄 출간한 오백 쪽이 넘는 두툼한 책입니다.


도서관이 주인공입니다. 도서관과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잘 믹싱해 총 4部로 구성되었습니다.


1部는 '도서관의 정치학'이란 제목으로 도서관과 정치, 정치적 공간으로서의 도서관을 다룹니다. 조선시대 유일한 대학도서관인 성균관 존경각에서 출발해, 식민지 조선의 3대 도서관이자 6.25 때 폭격으로 사라진 철도도서관 등 이 등장합니다. 정독도서관의 이름이 박정희의 정 字와 독서의 독 字를 따와 '정독'으로 이름 지어졌다고. 정수장학회가 박정희의 정 字와 육영수의 수 字를 딴 거랑 같은 맥락입니다.


여기서 을사오적, 을사삼흉, 정미칠적, 경술국적 등을 다시 한번 환기할 수 있었습니다. 을사늑약에 유일하게 반대한 참정대신 한규설, 내각 대신들 중 유일하게 독립운동을 한 분이 동농 김가진(이후 3代가 모두 독립운동에 가담)이라는 사실만큼은 꼭 기억하고 싶습니다.


2部는 '혁명과 민주화 투쟁의 무대'로 지배권력에 맞서 시민이 투쟁의 무대로 활용한 도서관의 역사를 다룹니다. 대구에 설립되었던 우현서루. 중앙대학교 설립자이자 이승만의 비서, 여성 최초의 국회의원이었던 임영신이 이승만에게 도서관 이름을 바친 중앙대 학술정보원. 이기붕 집터에 세워진 혁명을 기념하는 단 하나의 도서관인 419 혁명기념도서관, 부마민주항쟁의 불꽃이 타오른 부산대, 동아대, 경남대 도서관.

518 민주항쟁의 중심에 선 광주의 도서관들 이야기로 채워져 있습니다. 여기에 서울대 도서관 앞 아크로폴리스 광장과 건국대 사태, 미문화원 점거와 방화사건 등 은 덤으로 접하게 됩니다.


3部는 '제국부터 민국까지. 국가도서관'으로 정치권력이 설립, 운영한 국가도서관 이야깁니다. 일제가 식민통치를 위해 세운 조선총독부도서관, 해방 후 국립도서관, 국립중앙도서관, 국회도서관 및 평양에 위치한 단일 도서관으론 세계 최대 규모라는 인민대학습당이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북한과 우리나라의 도서 분류체계와 사서, 도서관 명칭 등 을 비교한 내용이 관심을 끌었습니다.


마지막 4部는 '사서도 모르는 도서관의 숨은 역사'로 잘 알려지지 않은 도서관 이야기입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사서가 누구인지, 우리나라 사서 자격은 세 종류로 나뉘어 있으며 1966년부터 자격증을 발급했고, 현재 약 10만 명 정도가 사서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다는 내용 등입니다.


명성교회도서관을 통해 교회세습에 대해서도 다루고, 특히 남산도서관을 설명하며 도서관이 산으로 간 까닭에 대해 비판합니다('달마가 동쪽으로 간 이유는?'의 패러디 표현인 듯).


"도서관은 장애인과 노약자를 포함한 누구나 이용가능한 문화시설이다. 공공기관이 山에 자리하면 불편하듯, 시민이 일상적으로 이용하는 도서관 역시 마찬가지다. 불편한 접근성은 폭력적이라 표현할 수 있다" 지적하는 말에, 동의하게 됩니다.


요정이었던 대원각을 시주해 길상사로 탈바꿈시킨 김영한 여사의 이야기와 이곳에 길상도서관이 문을 열었다가 지금은 복합문화공간으로 리모델링되어 사서 없는 공간이 된 다라니다원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30개 도서관 이야기는 마무리됩니다.


시인 안도현이 쓴 [백석평전]에서 "삶은 평가라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것이다"는 문장을 인용하는데요. 공자께서 역사를 기술하며 기준으로 삼은 述而不作. 있는 그대로를 기술할 뿐, 새로 지어내지 않는다는 자세를 견지하면서도 할 말은 다하고 있는 작가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도서관에 대해 저자와 같은 덕후가 있음에 축복이다라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해박하다. 탁월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 진짜 전문가다. 제가 받은 느낌입니다.


"대다수 시민이 책을 읽지 않는 사회에서 도서관은 제대로 성장하고 기능할 수 있을까? 모든 국민은 자신의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갖는 것처럼, 모든 시민은 자신의 수준에 맞는 도서관을 갖는다"는 저자의 지적에 공감하게 됩니다. 책 읽읍시다.


도서관도, 도서관 이야기도 이렇게 재미있을 수 있음을 알게 해 준 책입니다. 한마디로 유레카! 일독을 강추드립니다.


올해 36번째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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