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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호 Feb 19. 2024

[영화 한 편] 461개의 도시락

벤또의 추억이

[461개의 도시락]



와타나베 토시미의 에세이를 원작으로 한 영화입니다.


일요일 오후부터 비소식이 목요일까지 예보되어 있어 오전에 일찌감치 멍멍이를 산책시키고 넷플릭스를 시청했습니다.  요즘 일본 드라마나 영화를 자주 봤는데요.  [연예를 허하라(8부작)], [노다메 칸타빌레(11부작 + 영화 2편)], [진격의 거인(90편쯤 됩니다)]등을 보다 보니, 하지도 못하는 일본어가 귓가를 맴도네요.

일드를 보다 보면 주인공들이 대부분 미남, 미녀들입니다.  웃기는 캐릭터에서도 등장하는 잘생긴 배우들을 보며, “아 이래서 사람은 잘 생기고 봐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런데 [461개의 도시락]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미남은 아니에요.


[461개의 도시락]은 자유로운 영혼을 소유한 뮤지션(밴드활동을 하는) 아빠와 엄마가 이혼하면서, 15살 아들 코우키가 아빠랑 둘이서만 살며 겪는 이야기입니다.  잔잔한 스토리인데요.  고입시험에 떨어진 아들(공부를 못했던 모양입니다)이 재수를 거쳐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학교에서 급식을 제공하지 않는 관계로 점심식사를 매점에서 해결하거나 도시락을 싸가야 하는 상황입니다.  아빠는 바쁜 생활에도 불구하고 아들에게 고등학교 3년간 도시락을 싸주기로 약속합니다.  반대급부로 아들은 학교를 빼먹지 않기로 하고요.

1년을 재수해 한 살 어린 친구들과 같이 생활해야 하는 코우키는 학교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합니다.  내성적인 성격에 방황은 시작되고, 어느 순간 아빠를 ‘그 사람’이라 칭하게 되는 상황에 이릅니다.  어찌 되었든 아빠의 아들 도시락 챙기기는 하루도 빠짐없이 진행되고, 어느 날엔 싸준 도시락에서 고약한 냄새가 나는 바람에 급우들로부터 곤란을 겪기도 하지만, 아들에 대한 사랑이 가득 담긴 아빠의 도시락은 졸업 전까지 계속되지요.  도시락을 통해 친한 단짝 친구들도 생기게 되고요.  잔잔하지만 보는 내내 마음이 따뜻해지는 내용이었습니다.

여러 가지 반찬 요리 모습이 나오는데요.  이중 계란말이 하는 모습이 자주 등장합니다.  보는 내내 입맛을 다시게 되더군요.  그래서 집사람에게 계란말이를 해 달라 요청해 맛있게 먹었습니다.  어디선가 들은 이야긴데 초밥집에 가면 이 집이 진짜 제대로 된 스시집인지를 알아보려면 계란말이 초밥을 맛보면 된다고 하네요.  대부분의 초밥집이 이미 가공된 계란물을 사용하는데, 제대로 된 집에선 직접 계란물을 준비해 요리한다고.  말이 좀 곁길로 흘렀네요.

얼마 전 우연한 기회에 접해 읽고, 드라마화되었던 강창래 작가님의 [너무 매울지도 몰라]가 떠오르더군요.  말기 암투병을 하는 아내의 음식을 챙겨주는 남편의 요리 이야기(작가님 본인의 실화)인데요.  두 작품의 공통점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정성과 사랑이 담긴 요리를 한다는 점이라고나 할까요?


60년대말 출생인 저는 고등학교시절 저녁 10시까지 진행되는 야간 자율학습으로 등교할 때 늘 도시락 두 개를 챙겨 다녔습니다.  지금은 학교에서 급식을 제공하지만 저랑 연배가 비슷하신 분들은 다들 공감하시죠?  반찬으로 싸간 김치국물이 가방 속에서 흘러, 교과서에 물들어 책이 쪼글쪼글해지고 김치 냄새가 풍겼던 기억을요.  나이도 한창때인지라 점심시간이 되기도 전인 휴식시간에 도시락을 미리 까먹던 기억도요.  추운 겨울엔 교실 한가운데 설치된 갈탄 난로 위에 양은 도시락을 켜켜이 쌓아둔 추억도 있고요.  새벽부터 일어나 자녀들의 도시락을 싸기 위해 고생하신 어머님 생각도 납니다.  그땐 어린 마음에 매일 다른 반찬을 기대했었는데, 저도 나이를 먹다 보니 매번 다른 반찬을 준비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님였음을 알게 됩니다.  오래전 하늘나라로 가신 엄마표 음식이 그립습니다.


고등학교 3년 동안 도시락을 싸주는 아빠.  그런데 영화 제목 ‘461개’의 의미를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현 수업일수가 우리나라 기준으론 년간 190일 전후거든요. 3년이면 약 570일이 되고 도시락 개수도 이 정도 되어야 맞지 않나 하는 의문이 일더군요.  달을 보라 가리키는 손가락을 본질이 아닌 손가락만 쳐다보는 격이었을까요? ‘461개의 도시락’은 그 정확한 숫자보단, ‘많다’는 의미를 지닌 것으로 해석하는 게 맞을 것 같아요.


영화 말미에서 대학 진학을 희망하는 아들의 대사가 나와요.  대학가서도 도시락을 싸 주실 거냐고?  아버지는 대학 가면 친구들과 학식을 먹는 게 좋을 거라 이야기하죠.  이젠 성인이 되니 아버지의 사랑보다는 친구들과의 우정을 소중히 하라는 아빠의 배려라 해석됩니다.  2021년 개봉된 영화인데요.  러닝타임 약 2시간 동안 지루하지 않고 재밌게 본 영화입니다.  영어 제목이 [461 days bento : A promise between father and son], 대충 어떤 영화일지 감 잡으셨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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