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두려워하는 낮
“이노 일어났니?”
엄마의 목소리가 밧줄처럼 밤의 세계에서 이노를 끌어냅니다.
다시 찾아온 아침을 이노는 언제나 한숨으로 맞이했습니다. 무거운 몸을 일으켜 커튼을 걷자, 어김없이 태양이 그를 바라봅니다. 하지만, 이노는 태양을 보지 못합니다. 태양을 보려 고개를 높게 올려도, 두 눈을 질끈 감습니다. 태양은 이노를 바라보고 있는데, 정작 이노는 태양을 보지 못한다니. 이노는 그런 곳에서 두려움을 느낍니다.
볼 수 없는 것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그런 두려움은 엄마에게도 느낍니다.
삐걱거리는 계단을 오르는 소리가 들리고, 문이 벌컥 하고 열립니다. 심장이 바닥에 떨어질 것만 같은 소리와 함께, 엄마가 방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왜 이리 늦게 일어났니?! 내가 늘 8시 이전에 일어나라고 말했잖아!”
“얘는 왜 또 방 정리는 안 해 놓았네? 내가 돌아오면 검사한다고 얘기했었는데?”
엄마는 늘 화가 나 있습니다. 이노는 태양을 보지 못하는 것처럼, 일어나 있는 엄마를 보지 못합니다. 엄마의 얼굴은 기억 속에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머릿속에는 목소리만이, 들려옵니다.
그래서 이노는 엄마의 입을 기억합니다. 이노의 머릿속에서 엄마의 얼굴에 입만 남아 있습니다. 붉고 탱탱한 입술과, 그 안에 숨겨져 날카롭게 벼려진 혀. 그 혀는 보이지 않는 바늘이 되어, 이노의 가슴을 찔렀습니다.
그렇게 되면 이노는 자기 몸이 차가워지는 걸 느낍니다. 죽은 사람의 감각을 알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게 있잖아.”
이노는 뭔가 말하고 싶지만, 엄마는 그 이야기를 듣지 않습니다. 마치 죽은 사람의 말이 들리지 않는 것처럼요
“됐고, 그런 습관을 미리 가져야 네가 어른이 되어서도, 착실히 살 거야. 널 위해서 하는 말이니까, 내일부터는 제발 똑바로 하자.”
엄마는 늘 앞선 미래를 보고 있습니다. 5초 뒤는 10년 뒤든, 그러나 그 시야는 이노의 눈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이노의 눈에는 지금 혼나고 있는 이 순간만이 보이고 있었습니다.
이노는 엄마가 볼 수 있는 저 너머의 세계를 보고 싶었습니다. 엄마의 열린 입에서는 계속해서 바늘과 같은 뾰족한 이야기가 새어 나옵니다.
이노는 고개를 바닥에 떨굴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른이 잘못했다고 하니, 제 잘못인 것 같습니다.
폭풍이 지나간 자리에는 언제나 엄마도 없었습니다. 엄마는 늘 바빴습니다. 엄마는 이노를 두고 먼저, 내려갑니다. 화를 먼저 내는 것도 엄마였고, 먼저 내려가는 것도 엄마였습니다. 이노는 늘 매번 폭풍이 지나간 지 많은 시간이 지나야 만 움직였습니다.
이노가 밑으로 내려오면, 이미 엄마는 없습니다. 엄마가 바쁘게 집 밖을 나가면, 이노는 홀로 집 안에 남아, 엄마의 말을 되짚어 봅니다.
“내가 잘못한 것이 맞아.”
그렇게 믿을수록, 이노의 마음 한쪽은 서서히 무거워졌습니다. 단단했던 나무 바닥이 질척이는 늪이 되어, 이노의 발목을 잡고 저 밑으로 끌고 당기는 것 같았습니다.
그 순간, 종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엄마가 언젠가 알려주었던 마을의 종탑이었습니다. 이노는 그 종탑에 가본 적은 없었지만, 동화책에서 본 것처럼 높은 탑 꼭대기에는 종을 울리는 작은 요정이 살고 있을 거라 믿었습니다. 맑은 종소리에 이끌려 창밖을 보니, 햇살이 집 안까지 들어와 있었습니다.
이노는 들려오는 종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바깥에는 햇빛이 들어옵니다. 태양과 엄마의 목소리, 눈부신 햇빛과, 아득한 종소리가 뒤섞인 낮의 시간이었습니다.
엄마는 바깥으로 늘 나오지 말라 합니다. 밖은 위험한 공간이고, 이 집 안은 안전한 공간이라고 늘 경고합니다. 이노는 착한 아이입니다. 엄마의 말에 반항하지 않고, 노력하고자 합니다. 그렇기에 이노는 종소리를 듣고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엄마가 시켰던 일들을 합니다.
엄마가 시킨 일은 어렵지 않습니다. 쌓인 빨래 더미를 옮기고, 어질러진 거실을 청소하고, 미쳐 하지 못했던 자신의 방까지 청소했습니다. 처음에는 무척 힘들어했지만, 시간은 그런 어려움을 해결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모든 걸 해결해 주지는 않습니다. 시간이 흐른다고 해서, 이노는 밖으로 나갈 수 있지 않았고, 시간이 흐른다고 해서, 텅 빈 집이 익숙해지지는 않았습니다. 때로는 텅 빈 집에 홀로 있을 때마다, 엄마를 따라 밖으로 나가고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건 엄마와 지난 시간 동안 살아온 이노였기에, 알 수 있습니다.
“언젠가 어른이 된다면.”
이노는 어른이 되어서 홀로 저 문을 열고 나가는 자신의 모습을 생각해 봅니다. 그러나 정작 어른이 되고 싶으면서, 어른이 무엇인지 이노는 모릅니다.
키가 크면 어른일까요? 숫자가 높아지면 어른인 걸까요? 어른이란 게, 어떻게 보이는 걸까요? 넌 아이고, 난 어른이라는 게, 한눈에 보일 정도로 쉽게 구분이 되는 걸까요?
알 수 없는 것에 대한 두려움. 그것이 엄마의 경고와 뒤섞여, 이노를 이 세상에서 아주 작은 존재로 만들고 있었습니다. 이노는 세상에서 작았고, 이노의 세상 또한 무척이나 작았습니다.
-
그런 이노의 작은 세상에, 누군가 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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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신가요?”
이노는 그 목소리의 주인을 알고 있었습니다. 매번 찾아오는 그 사람이 어떻게 생겼는지, 왜 찾아오는지 알고 있었지만. 단 한 번도 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눠본 적은 없었습니다.
이노는 익숙하게 제자리에 멈춰 서서, 작은 새처럼 숨을 죽였습니다. 혹여나 소리가 새어 나갈까 두려워, 두 손으로 입과 코를 단단히 틀어막았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문밖에서 “아무도 없나?” 하는 혼잣말과 함께, 편지 한 장이 문틈으로 스르륵 밀려 들어왔습니다.
발소리가 멀어지고, 또 멀어져 이윽고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이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의자를 끌고 문으로 다가가, 문구멍을 통해 밖을 몰래 쳐다봅니다.
저 멀리, 자신과 비슷한 또래의 소녀가 무거운 가방을 짊어진 채, 다음 집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이노는 그런 소녀의 뒷모습을 보면서, 자신이 아는 이름을 나직이 읊어봅니다.
“린.”
이노가 린의 이름을 알게 된 건 우연이었습니다. 그녀는 이노의 집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주점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그곳의 소리는 바람을 타고 이노의 창가까지 흘러 들어왔습니다.
술에 취한 사람들이 그녀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를 이노는 계속 들어왔습니다. 혀가 꼬인 채 늘어지게 부르는 리이인. 화가 난 목소리로 딱딱하게 끊어 부르는 린. 친근하게 웃으며 부르는 린.
주점에서 들려오는 각기 다른 색깔의 이름들은, 밤을 지켜보는 이노에게 있어 신기한 구경거리 중 하나였습니다.
그녀는 이노와 달랐습니다. 타오르는 듯한 붉은 머리카락은 낮의 햇살 아래에서도, 밤의 어둠 속에서도 결코 자신의 빛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이노는 낮이고 밤이고 그녀를 볼 수 있었습니다.
린은 낮에는 신문과 편지를 돌리고, 밤에는 주점 일을 도왔습니다. 이노는 창문 너머로 몇 번이고 보았습니다. 제 몸보다 훨씬 큰 취객을 등에 업고 끙끙거리면서도 절대 쓰러지지 않은 작은 뒷모습을요.
“거기 멈춰!”
어느 날은 린이 낯선 취객들에게 쫓기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습니다. 이노는 당장이라도 내려가서 현관문을 열고, 이곳에 들어오라고, 이곳은 안전하다고 외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문을 여는 것은 이노에게 세상 그 어떤 일보다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엄마의 경고는 여전히 이 밤 속에서도 울리고 있었고, 그 경고가 계속 들리는 한 이노는 창문조차 마음대로 열지 못하는 작고 여린 아이일 뿐이었습니다.
결국 이노가 어쩌지 못하는 사이, 린은 어른들의 커다랗고 어두운 손을 피해 이노의 시야가 닿지 않는 어두운 골목 너머로 사라졌습니다.
“까불지 마!”
또 다른 날에는 취객과 싸우는 린의 모습을 본 적이 있었습니다. 자기보다 덩치가 몇 배는 큰, 어른에게 겁 없이 싸우고 있었습니다. 린의 모습은 경계심이 가득한 고양이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그럼에도 그녀는 물러서지 않고 싸웠고, 결국 가게에서 여러 사람이 나오고 나서야 그 싸움은 끝나고 말았습니다.
린은 얻어맞아 빨개진 자신의 볼을 붙잡고서는, 침을 뱉었습니다. 또 그런 모습에 화가 난 취객이 그녀를 몇 번이고 더 때렸지만, 린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녀가 어른들의 목소리에도 지지 않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모습을 이노는 보았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 걸까요?
마침내 모두가 사라지고, 차가운 거리에 그녀가 홀로 남았습니다. 이노는 그 모습을 보며 가슴 한쪽이 아려왔지만, 한편으로는 심장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무척 멋있고 강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누구보다 강한 인상이 남게 되었으며, 이노의 마음속에 도저히 잊을 수 있는 [린]이라는 이름이 남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노는 자신이 린처럼 할 수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이노가 할 수 있는 건 이렇게 창문에 기대 밖을 바라볼 뿐. 이노는 아직도 어른이 되지 못했고, 엄마라는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린은, 저 깊은 어둠 속에서도 밝게 스스로 빛날 수 있는 걸까요? 이노의 눈에는 이미, 린은 밤하늘에 밝게 빛나고 있는 달이나 다름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