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살 게 되고 말았다.

자식 덕분에. 때문에.

by 티티카카


작년에 이어 올해 2학년인 아이의 공개수업도 혼자 가게 되었다. 공교롭게 남편의 출장 기간과 겹쳐서. 그리고 아이도 굳이 아빠까진 안 와도 된다고 크게 신경 쓰지 않아서 그냥 나 혼자 연차를 쓰고 다녀왔다

작년과는 또 다른 분위기. 이제 한번 해봤다고 조금 익숙해지고 그렇게 긴장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다들 편안해 보였다. 나 또한 그랬지.

작년엔 끝나고 잠시 사진 찍을 수 있는 분위기였는데 올해는 그렇지 않아서 간단히 인사를 하고 돌아왔다.

남편이 출장 간 사이 하루가 다르게 벚꽃이 만개하더니 남편이 돌아오는 오늘 절정으로 보인다. 아이는 3일 정도까진 딱히 아빠 얘기를 하거나 보고 싶단 얘기를 안 하더니 어제부터는 중간중간 아빠 얘기를 한다. 보고 싶다, 원래 하루 마무리는 아빠랑 놀아야 하는데, 아빠가 오면 이걸 보여줘야지. 아빠랑 먹어야 하는데. 등등.. 그러다 오늘 아빠가 비행기에서 내렸다, 공항버스를 탔다, 내려서 택시를 타서 조금 있음 도착한다고 수시로 알려줬더니 은연중에 기다리고 있었나 보다. 도어록 소리를 듣자마자 공부하던 자리를 박차고 아빠를 반기러나간다.

비록 4박 5일이지만 전할 이야기가 많다. 듣고 있는데 웃음이 난다. 밖에서 만난 타인이 나를 기다리며 기대한다 생각해도 웃음이 날 텐데 아이가 그토록 자기를 기다리며, 오자마자 두 팔 벌려 반겨준다니 남편도 아이가 크면 클수록 감회가 새로운 눈치이다.

우리는 보통이라 말할 만큼 보통으로 살았다. 학교는 당연히 가야 하는 것이고, 대학 땐 둘 다 어지간한 일이 아니면 수업에 빠지질 않았다. 나는 딱 한 번 성시경의 콘서트를 보러 수업을 빠진 것이 다였고 남편은 아마도 한 번도 무단결석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곤 별다른 이유 없이 공백을 갖지 않았고 남편도 나도 당연히 취직을 하고, 좀 더 나은 회사를 다니고자 틈틈이 노력을 했다.


그것들 모두 사실 별다른 목적의식이나 목표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냥 그런 모습을 보였던 부모님을 보며 자랐고, 응당 순서에 맞는, 시기에 맞는 행동을 하며 사회의 구석에 자리 잡더라도 어딘가 구성원으로 자리를 잡긴 해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렇게 생각의 꼭짓점이 크게 다르지 않은 사람들이 모여 결혼을 했다 보니 매사 최선?까지 다하지 못하더라도 노력은 하며 살았다. 다만 목표가 없었고 누가 물어보면 분명한 목적을 대지 못 했던 것은 사실이다.

아이는 이 모든 것들을 상쇄시키고, 우리가 왜 열심히 살아야 하는지 가장 단순하고, 가장 고리타분하며, 가장 예스러운 방식으로 목표와 목적을 알려주는 수단이자 배경이 되고 있다.

짐이 되지 않기 위해 우리는 건강해야 하고, 하나뿐인 아이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우리는 경제생활을 지속해야 하고, 아이에게 작게나마 물려줄 것을 만들기 위해 우리는 계획적으로 살아야 한다,라는 대화를 끊임없이 나눈다.

아이가 없이 2년간 오롯이 두 사람만의 시간을 보냈을 때도 물론 열심히 살았다. 회사를 다니며 또 다른 목표를 위해 학원을 다니고, 운동도 해야지 하며 운동조차 게을리하지 않았다. 다만 그런 행위를 하며 이게 한 번씩은 무의미하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자식이 없이 지속되는 열심의 삶이 결코 가치 없었다는 말이 아니다. 다만 의외로 결단력 없는 남편과, 쉽게 무너지는 내가 자식으로 인해 조금 더 단단해지고, 좌절하지 않는 법을 배웠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써놓고 보니 고리타분하다. 자식을 낳아서 행복하다, 열심히 산다-라는 결론을 내고 싶지 않았는데 쓰다 보니 그리되었다. 다만 조금의 변명을 하자면 자식이라는 수단 덕분에 열심히 살게 된 것이 그리 나쁘지 않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어떤 이유가 있든 간에 계속 살아가야만 한다면, 그리고 그 김에 그게 자식이라면 뭐하나 나쁠 것 없단 생각이 드는 밤이다.

외국 동전이 갖고 싶단 말에 일부러 껌을 사며 현금을 바꿔와서 아이 지갑을 채워주는 남편에게 "우리 아빠처럼 최고의 아빠가 없어" 하고 말하는 아이 표정이 오늘따라 더 말갛다.

너는 어쩌면 줏대 없이 살던 우리에게 가느다랗지만 단단한 기둥을 세워준 우리의 은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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