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녀사네 장미이야기 1

"엄마 장미얼굴에 하얀 털이 났어!"

by 김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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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녀사네 장미 이야기 1>


“엄마! 장미 얼굴에 하얀 털이 났어!”


“엄마! 장미 얼굴에 하얀 털이 났어!”

중학생 아들이 반려견 장미와 거실에서 뒹굴다 말고 갑자기 소리쳤습니다.

“장미는 원래 요크셔테리어라 회색이나 흰색 털도 나.”

저는 시크하게 대답하며 아침부터 밀려 있던 설거지 산을 부엌에서 해치우고 있었답니다.

엄마의 시큰둥한 반응이 영 못마땅했던지, 아들은 장미를 안고 와 제 얼굴 가까이 들이밀었습니다.

“아니, 이걸 보라고. 왜 턱 아래가 이렇게 하얘?”

그제야 저는 장미의 얼굴을 제대로 들여다보았습니다. 정말로, 전에는 보지 못했던 흰 털이 턱 아래에 소복하게 자리 잡고 있었답니다. 아무리 봐도, 원래 금빛·은빛이 매력적인 요크셔테리어 특유의 털 색은 아니었습니다.

순간, ‘이건… 노화로 인한 하얀 털’이라는 생각이 스쳤고, 코끝이 빨개졌습니다.

‘뭐야… 아직 8살도 안 됐는데, 아직 아기인데 벌써 흰 털이 난다고?’

저는 서둘러 설거지를 마치고, 제 품에서 벗어나려 발버둥 치는 3kg 남짓한 장미를 덥석 안았습니다.

“말도 안 돼.”

외마디를 내뱉으며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저는 그동안 ‘노화’라는 것은 다른 강아지의 이야기라고만 생각했습니다. 우리 장미는 언제나 집안의 막둥이 아기였고, 영원히 그럴 것만 같은 존재였으니까요. 지금 생각해보면, ‘이별’을 부정하고 싶은 저만의 방어기제였던 것 같습니다.

사실 장미가 제 첫 반려동물은 아니었습니다. 동식물을 좋아하는 저답게, 우리 집을 거쳐 간 친구들은 많았습니다. 햄스터, 고슴도치, 자이언트 달팽이, 육지거북… 짧게는 1년, 길게는 10년을 함께했던 아이들이죠. 무지개다리를 건널 때마다 어렸던 아이들은 대성통곡을 했고, 우리는 집 앞 화단에 정성껏 묻어주곤 했습니다.


모든 작별이 힘들었지만, 10년을 함께한 15살 육지거북 ‘줄리’의 죽음은 온 가족이 충격에서 한동안 헤어나오지 못할 만큼 깊었습니다. 줄리는 지인의 개인 사정으로 우리가 5살 때부터 맡아 키우게 된 아이였답니다. 줄리는 겨울만 되면 가벼운 동면에 들어갔고, 그때는 장미가 아기 때 쓰던 초소형 집에 들어가 조용히 겨울잠을 잤습니다. 3월이면 잠에서 깨어나 부스럭거리기 시작하고, 우리는 줄리를 거실에 풀어주며 물과 애호박을 챙겨주곤 했습니다.

그러나 어느 겨울부터 줄리는 잠에서 깨어나기 힘들어했고, 결국 한 해는 다시 눈을 뜨지 못했습니다. 날씨가 매우 춥던 때라, 우리는 할아버지의 축사 옆에 줄리를 묻었습니다. 아이들은 “할아버지가 소들 춥지 말라고 온열기를 틀어주던 곳이니까 줄리도 따뜻했으면 좋겠다”고 말하며 그곳을 선택했답니다.

'안녕 줄리! 지금 친구들과 엉금엉금 행복한 시간 보내고 있지? 거기에서는 줄리가 좋아하는 봄.여름.가을만 있는 따뜻한 나라였으면 좋겠다!'
-김녀사네 가족이 줄리에게-

그동안 함께했던 반려동물들은 인간과의 교감이 비교적 적은 동물들이었습니다. 제가 온다고 반가워 뛰어나오는 것도 아니고, 먹이만 주면 금방 저를 잊어버리는, 그런 ‘시크한’ 존재들이었죠. 그렇다고 슬픔이 덜했던 건 아닙니다. 다만 동물마다 ‘죽음을 체감하는 온도’가 달랐을 뿐, 충분히 슬퍼하고 애도하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장미는 다릅니다. 강아지는 반려동물 중에서도 인간과의 교감 ‘원탑’이잖아요. 잠시 가족여행이라도 가서 장미를 반려견 호텔에 맡기기만 해도, 우리 작은 구축 아파트에 장미의 빈자리가 어마어마하게 크게 느껴졌습니다.

이런 존재감 200%인 우리 막내딸에게 노화가 오고 있다니… 너무나 자연스러운 이치이지만, 마주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줄리에게 그랬듯이, 언젠가 조용히 잠들고 다시는 깨어나지 않을까 하는 작은 두려움이, 장미 얼굴의 하얀 털과 함께 제 마음을 쿵 하고 내려앉게 만들었습니다.


현재 장미는 일곱 살입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은 12월 초, 이 달이 지나면 장미는 여덟 살, 노령견의 문턱에 들어서는 ‘으르신 강아지’가 됩니다.

생기 넘치던 깨발랄 아기 시절은 이미 한참 전 일. 특히 6살을 기점으로 장미는 놀라울 만큼 얌전해졌습니다. 산책 두 번을 다녀와도 에너지가 넘쳐 인형 던지기를 수백 번씩 하던 ‘리즈 장미 시절’이 있었는데, 6살 이후로는 산책 후 조용히 이불 속에 들어가 쉬는 시간이 많아졌고, 인형 던지기 수십 번만 해도 혀가 쭉 나오며 힘들어하더군요.

얼굴에 하얀 털이 보이기 시작한 것도 그렇지만, 이런 작은 변화 하나하나가 저에게는 ‘우리 장미가 나이를 먹어가고 있구나’라는 사실을 뼈아프게 알려주는 것 같습니다.


우리 장미 말이라도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곧 여덟 살이 되어가는 장미는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어떤 변화를 겪고 있을까요?

노령견을 준비하는 견주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신가요?

동물매개 주연쌤, 부탁드립니다.




KakaoTalk_20251208_093714613_01.jpg 장미야, 어딜보는 거니, 할머니 보고있니? 고구마를 굽고있는 할머니를 보는 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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