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관돌 Apr 09. 2024

엄마! 오늘만은 내가 엄마 할게요!

"다음 생애는 내가 엄마 할 테니 꼭 내 딸로 태어나주세요!"

저녁 시간이 되었다.

다행히 오후에 환자들이 퇴원한 덕분에 3인 병실이었지만 영애 씨 어머니의 단독 병실로 사용할 수 있었다.

'우와! 엄마랑 조용히 하루를 보낼 수 있겠다!'

비록 호텔이 아닌 병원이었지만, 영애 씨는 약간 들뜬 마음이 들기도 했다.

어머니는 여전히 창 밖을 바라보며 누워 계신 상태다.

영애 씨는 조용히 침대 밑에 있는 간이침대를 꺼내어 어머니 밑에 자리를 잡았다.

"엄마! 난 오늘 여기에 누워있을게! 혼자가 아니라서 심심하지는 않을 거예요!"

"니 안 불편하겠나? 여기 내 옆에 와서 누울래?"

"아이다! 엄마는 환자고 나는 보호자잖아! 어떻게 불편한 환자 옆에 누워서 더 불편하게 만드노?"

"참나... 불편할게 뭐 있다고... 내가 좀 뚱뚱해서 옆에 누워 있기 힘들라나?"

어머니는 자신의 옆자리로 오는 것을 거부하는 듯한 딸의 모습에 약간 서운한 기색을 보였다.

눈치가 빠른 영애 씨는 바로 말을 돌리며...

"그럼 잠깐만 엄마 옆에 좀 누워 있어 볼까? 옛날 생각도 좀 나게..."

"그래. 빨리 온나!"

엄마의 옆에 살며시 누운 영애 씨는 아이가 된 것 마냥 해맑게 웃으며 엄마의 뱃살을 만진다.

"엄마! 살 좀 뺴야겠네! 뱃살이 왜 이렇게 많이 쪘노?"

"니도 나이 먹어봐라! 이렇게 안 될 줄 아나?"

"난 운동 열심히 해서 살 안 찔 거거든!"

아이가 된 것 마냥 즐거워하는 영애 씨와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엄마.

잠깐 동안이었지만,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화기애애한 시간이었다.


잠시 후...

"영애야! 니 안 불편하나?"

"아니! 괜찮은데... 이렇게 엄마 옆에 오랜만에 누워있으니깐 너무 좋은데... 엄마가 불편한 거 아니가?"

"가시나야! 내가 인제 불편한 게 뭐 있겠노? 일 안 하고 하루종일 누워가 이렇게 호강하고 있는데..."

"이게 무슨 호강이고! 좀만 기다려 봐라! 내가 진짜 엄마 호강시켜 줄 테니깐!"

"아이고... 우리 가시나 이제 다 컸네! 엄마 호강시켜 준다는 말도 할 줄 알고..."

"치이... 엄마 내 나이가 몇 살인줄 아나? 60이... 아니 18살이다!"

순간 영애 씨는 실제 본인의 나이가 입 밖으로 나올 뻔했다. 깜짝 놀란 영애 씨.

"야가 말하는 거 봐라. 지 엄마보다 더 나이 먹을라고 하네!"

"그러게...ㅎㅎㅎ"


"영애야! 진짜 고맙데이!"

"갑자기 뭐가? 오늘따라 고맙다는 말 대게 많이 하네. 내가 뭐 한 거 있다고 자꾸 그러노? 민망하게..."

"계속 그러면 내 화낼 거 데이! 고마해래이!"

영애 씨는 엄마가 하는 말의 의미를 잘 알고 있지만, 이상하게 그 말이 듣기 싫었다.

아니 자꾸만 나약해져 가는 엄마의 모습이 보기 싫어졌다.

그리고 힘들었다. 어떻게 반응해야 될지 몰라서 그냥 속마음과 달리 계속 짜증 섞인 말을 내뱉었다.

또 미안했다. 엄마를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들어서...


"엄마! 내 짜증 내건 아닌 거 알제? 서운해하지 마래이!"

"계속한 것도 없는데 고맙다고 하니깐 민망해서 그런 거 데이."

"그래. 다 알고 있다. 우리 딸내미 눈만 봐도 엄마는 다 알고 있다!"

"우리 영애 마음 내가 몰라주면 누가 알아주겠노!"

그러고 나서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셨다.

"갑자기 또 왜 우는데! 그만해라!"

눈물을 흘리시는 엄마의 모습을 본 영애 씨는 떨리는 목소리를 감추기 위해 오히려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흐르는 눈물을 감추기 위해 고개를 뒤로 젖히면서 애써 감추어보려고 했지만 흐르는 눈물은 어쩔 수

없었다. 두 모녀는 아무런 말은 하지 않았지만, 서로가 같은 마음인 것을 알고 있었다.


영애 씨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래. 이게 엄마와의 마지막 시간이 될 수도 있다. 나까지 나약해지면 안 된다!"

다짐했다.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더 꿋꿋하게 있기로.

'정신 차리자! 영애야!'

그리고 엄마에게 말을 건넸다.

"엄마! 혹시 뭐 드시고 싶은 거 없나? 오늘은 내가 엄마의 엄마 해줄게!"

"뭐라고? 니가 내 엄마 해준다고?"

"빨리 말해봐라! 원래 엄마는 자식이 하고 싶어 하는 거 다 들어주잖아!"

"엄마도 이제까지 내가 하고 싶어 하는 거 말만 하면 다 들어줬잖아!

이제 내가 그거 갚아줄 테니깐 얘기해 봐라!"

어머니는 흐뭇한 표정을 지어 보이시며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우리 영애 아인줄 알았는데 언제 이렇게 다 컸노?"

"당연하지! 이제 시집가도 될 나이구만. 아직 애로 보이드나?"

"니 벌써 시집가고 싶나? 어디 마음에 드는 남자는 있나?"

"뭐라카노! 그냥 해 본 말이지! 어휴... 엄마 앞에서 말을 못 하겠니!"

"영애야! 니는 시집 좀 늦게 갔으면 좋겠다."

장난을 멈추고 어머니는 영애 씨에게 진중하게 말씀을 하셨다.

"어? 왜? 난 일찍 가면 안 되나?"

"왜 니 일찍 가고 싶나?"

"아니... 솔직히 이제는 결혼 진짜 늦게 늦게 하고 싶다!"

"뭐? 이제는? 언제 한 번 갔다 왔나?"

"아! 아니... 말이 헛나왔네."

"야가 오늘 와 이러노! 60살이라고 하지를 않나... 결혼을 했다고 하지를 않나! 그냥 지금이라도 집에 가서 좀 쉬라! 야가 정신을 못 차리는 것 같네."

순간 영애 씨 본인도 당황헀다. 계속 현실이랑 헷갈려했다.


"아니! 만약에 결혼한다면 천천히 하고 싶다는 말이지!"

"그래. 진짜 천천히 해라. 내처럼 일찍 가서 생고생하지 말고."

"니는 내 딸이지만 진짜 똑똑한 애거든. 집이 지금 형편이 안 좋아서 그렇지...

하긴 니 아버지도 공부에 그렇게

신경을 쓰는 편이 아니긴 했지... 그래서 니가 손해를 좀 많이 봤다."

"엄마가 건강만 더 좋았으면 우리 딸 책임지고 고등학교 까지는 마쳐주는 건데... 미안하데이."

"또 봐라! 또 미안하다 하는 거 봐라! 그만해라고 했데이!"

어머니는 계속 영애 씨의 아픈 곳을 정확히 알고 계신 듯 살살 어루만져 주시면서 마음을 풀어주었다.

'진짜... 내가 엄마한테 이런 말까지 들어보네.'

그랬다. 영애 씨는 학업에 대한 욕심이 많은 편이었지만, 아버지의 반대로 학교를 오래 다니지 못했다.

중학교도 야학으로 대신했다. 공부를 더 하고 싶었지만 더 할 수 없는 분위기였다.

그게 못내 서운했었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것 같았는데... 어머니는 그걸 정확히 꿰뚫고 계셨다.

고마웠다. 영애 씨 입장에서는 지금으로부터 몇 십 년이 지난 일인데 그 부분을 어루만져 주신 엄마가...

"엄마! 고맙데이!"

"야가 와 이러노! 지가 고맙다고 하지 말라더니 이번에는 지가 그러고 있노!"

영애 씨는 쑥스러워하는 엄마를 살며시 안아드렸다. 엄마도 싫지 않았는지 그 순간에는 가만히 계셨다.


"엄마! 만약에 내가 나중에 결혼한다면 어떤 남자랑 했으면 좋겠노?"

"니 남편? 아니 내 사위?"

잠시 생각에 잠긴 듯 머뭇거리시더니...

"엄마는 다른 거 없다. 그냥 우리 딸내미 많이 아껴주는 사람 만났으면 좋겠다. 속 안 썩이고..."

"그리고 하고 싶은 거 있으면 다 시켜줄 수 있는 사람이면 더 좋을 것 같고..."

"그런 사람이 있겠나? ㅋㅋㅋ. 그런데 엄마는 내가 나중에 어떤 사람 됐으면 좋겠는데?"

"이거 뭐 청문회하나? 뭘 계속 물어보노! 힘들어 죽겠네!"

그렇게 핀잔을 주시면서도 어머니는 정성을 다해 영애 씨의 질문에 답해주셨다.

"엄마는 우리 딸내미가 뭐든지 척척 잘하니깐 그냥 니가 하고 싶은 거 하는 게 제일 좋겠다!"

"에이. 그런 말이 어딨노! 그래도 엄마가 생각하고 있는 거 없나?"

"엄마는 그냥 니가 건강하고 많이 배운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 인성이 바르고..."

"애들 가르치는 선생님해도 니 잘할 것 같다. 말도 잘하고 예쁘게 생겼으니깐 인기도 많겠고!"

"맞나? 내가 이쁘게 생긴 건 알고 있었지! 엄마 닮아서 이쁘게 생긴 건 인정해 줄게!"

"그럼 내가 오늘은 엄마 소원 들어준다고 했으니깐... 오늘부터라도 공부 열심히 해서 나중에 고등학교도

다시 가고, 대학교도 가서 선생님 되도록 한 번 노력해 볼게!"

"내 애들 가르치는 거 볼라면 엄마도 자꾸 아프다 하지 말고 빨리 퇴원해야된데이! 알겠제?"

"어이구! 뭔 말을 못 한다!"

영애 씨는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로 재밌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마치 엄마를 매일 본 것 마냥

편안하게 느껴졌다.


"엄마... 내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뭔데?"

"나중에 내가 엄마가 되면... 솔직히 난 엄마처럼 할 자신은 없을 것 같다."

"그게 뭔 말이고?"

"아니... 난 아이도 안 키워봤고... 엄마처럼 애들 푸근하게 잘 키울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그때도 엄마가 옆에서 내 좀 도와주면 잘 키울 수 있을 것 같은데... 모르는 거 있으면 친정엄마 찾으면 되고!"

"뭔 소리하노! 내처럼 키우면 어쩌란 말이고!"

"니는 천성이 착하고 심성이 고와서 애들 잘 키울 거다. 그런 걱정은 아예 하지도 마라!"

"그리고 하다가 정 힘들면 내 찾아온나! 그때 내가 있을지 없을지는 몰라도 우리 딸내미가 힘들다고 하면

하늘나라에서도 내려와서 봐줄게. 저 위에 계신 분도 그거 하나 안 들어주겠나!"

"엄마가 배운 건 많이 없어도 우리 딸내미 문제 해결 하나 못해줄까? 걱정하지 마라!"

든든한 엄마의 말에 영애 씨 눈가가 촉촉이 젖어왔다.

살아생전 엄마의 온기가 그대로 전해지는 것 같았다. 지금 이 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 의사 선생님이 엄마 말 많이 하면 안 된 다했는데.."

어머니는 복부 쪽에 통증이 심해서 말을 많이 하면 상태가 더 심각해질 수 있다는 의사의 말이 생각났다.

"괜찮다. 이제 얼마니 남았다고..."

"왜 자꾸 그런 소리 하노! 얼마나 남기는... 아까는 내 선생님 되는 것까지 본다면서!"

괜히 짜증이 나왔다. 자꾸 나약해지는 엄마의 모습이 싫었다.


"영애야... 많이 힘들제? 니 말 안 해도 다 안데이. 엄마라는 사람이 이렇게 무책임하게 애들 놔두고

가버리게 됐으니.. 진짜 면목없데이. 니한테 바라는 거 다른 건 없다."

"너무 가족들 위해서 희생하려고 하지 말고. 니 하고 싶은 거 우선으로 생각하고. 니거 챙기면서 지내래이."

"남들 다 챙겨주고 나면 남는 게 없더라. 니도 맛있는 거 먹을 줄 알고. 좋은 옷 입을 줄 아는데..."

"엄마가 항상 첫째라고 참고 양보하라고만 한 것 같아서 진짜 미안테이. 이제는 그러지 말라고."

"그냥 이 말은 꼭 니한테 해주고 싶었다!"

"됐거든! 이제 애들이 내보다 더 커서 옷도 같이 못 입는다! 영자 입다가 안 입어도 그 옷 내한테 안 맞아서

못 입는다! 진장에 새 옷 내 좀 입혀주지!"

괜히 영애 씨는 엄마에게 핀잔을 주기도 했다. 엄마의 진심이 와닿았기에...

이제까지 마음으로는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엄마의 목소리로 진심을 들어보는 건 처음이었다.

엄마와 이렇게 둘 만의 진심 어린 대화도... 속 깊은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도 처음이었다.

아니... 어쩌면 처음이자 마지막일지도 모른다.


문득 생각이 났다. 2주 후 숙제를 제출하는 시간이라는 그때 그 의사 선생님의 말씀이...

그 기간 동안 몇 가지 과제가 주어진다고 했는데... 그 첫 번째 과제가 바로 지금 이 순간...

엄마와의 만남이었다.

'그래도 내가 지금까지 헛살지 않았구나! 나에게도 이런 행운 같은 시간을 다시 살게 해 주는 걸 보면...'


"영애야... 엄마 이제 좀 피곤하네... 먼저 눈 좀 붙일게."

"엄마... 내 엄마 많이 사랑하는 거 알제? 엄마 딸로 태어나게 해 줘서 진짜 고마웠데이!"

"싱겁기는... 니가 내 딸로 태어나줘서 엄마가 고맙지!"

"오늘 니 덕분에 엄마 이제까지 살면서 제일 많이 편하게 웃어 본 거 같다. 영애야! 고맙데이!"

영애 씨는 어머니가 주무실 수 있게 병실 불을 꺼주었다.

적막감이 흐르는 병실 안... 그래도 마음만은 따뜻함이 느껴졌다.

영애 씨도 엄마의 아래쪽에 펼쳐진 보조침대에 몸을 뉘었다. 그리고 직감했다.

이제 잠이 들면 엄마를 영영 만날 수 없다는 것을...눈물이 흐르기도 했지만, 이젠 슬프지 않았다.

이건 슬픈의 눈물이 아닌 기쁨의 눈물이었다.

그리고 이건 꿈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사실 또한 이제는 알고 있었다.


'엄마... 내 엄마라서 정말 감사했어요. 다음 생애는 내가 진짜 엄마 할 테니 꼭 내 딸로 태어나주세요!'

그렇게 영애 씨와 어머니는 깊은 잠에 빠져들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 뒤, 다시 영애 씨는 눈을 떴다.

조금 전 그 병실의 모습은 아니었다. 아마 또 다른 과제를 하기 위한 공간인 듯했다.

'여긴 어디지?'


다음 회차에 계속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에필로그

영애 씨는 그토록 그리워하던 엄마와의 마지막을 비록 병실이었지만 함께 보낼 수 있었다.

그리고 못다 한 감사의 마음을 충분히 전달할 수 있었다.

이제 후회는 없었다.

그리고 다시 눈을 뜬 상황! 이제 두 번째 과제를 수행해야 한다.

영애 씨 앞에 펼쳐진 두 번째 과제는 과연....



이전 07화 엄마! 병간호 하루만 할 수 있게 허락해줘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