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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관돌 Apr 15. 2024

그 순간의 남편은 정말 마주하기 싫었는데 왜 하필...

젊은 시절로 돌아왔지만, 결코 젊음을 누릴 수 없었던 그 시절...

다시 눈을 뜬 영애 씨는 주변을 두 리번 두리번거렸다.

이제 이러한 행동이 익숙해진 탓에 혼란스러움은 이 전 보다 덜했다. 단지 상황과 장소를 파악하는데 시간이 걸릴 뿐이었다. 엄마와 함께 시간을 보냈던 병실은 아닌 게 분명했다.

그리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제 엄마랑은 이렇게라도 다시는 만나기 힘들 것 같네. 그래도 편안히 잠드신 모습 볼 수 있어 다행이었지.'

그렇게 스스로 위안을 하며 마음을 추슬렀다.

다시 주변을 아니, 이제는 먼저 자신의 현재 몸상태를 한 번 훑어보기로 했다.

몸상태와 입고 있는 옷을 보면 대충 현재 나이와 상태를 짐작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옷은 가벼운 일상복을 입고 있었다. 다행히 전신 거울이 앞에 놓여 있어 현재의 얼굴을 똑바로 볼 수 있었다.

지금보다 젊은 시절이었다.

'어! 한창 젊은 시절로 돌아온 것 같네. 참.. 이걸 좋다고 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자신도 모르게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전신거울이 있는 걸 보니 여긴 집이었다.

다시 한번 둘러보니, 예전에 남편과 결혼 후, 처음으로 장만한 아파트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갑자기 방문이 열리더니,

"엄마! 일어났어요?"

큰 딸이었다. 평소 보던 모습과는 달랐지만, 분명 중학생 때 모습을 하고 있는 딸이었다.

"많이 피곤하죠? 어제 너무 늦게 오셔서 잠도 제대로 못 주무시고..."

"내가 애들이랑 어머니 드시라고 밥 차려놨으니깐 빨리 나와서 드세요."

'잉? 이 꼬맹이가 밥을 차렸다고? 하긴... 딸이 중학생 때 나도 참 정신없이 살아서... 지가 밥도 많이 하긴

했었는데... 밥 태운다고 혼도 많이 내긴 했었지...'

순간 무언가 머릿속을 쏜살같이 스쳐 지나는 느낌이 들었다.

'설마... 지금 여기가 그 때라고?'

"어머니 빨리 나오세요!"

"그래. 알았어."

방 문을 열고 부엌으로 가보니 둘째와 막내도 식탁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한 사람이 보이질 않았다.

'아니겠지? 하긴... 원래 부지런한 사람이니깐 새벽시장 나갔겠지?'

갑자기 말을 꺼내기 조심스러웠다. 아니 또 한 번 영애 씨 본인의 예상이 맞을까 봐 두려웠다.


"아이고! 우리 딸내미 다 컸네? 언제 이렇게 다 차렸노?"

"엄마 이제 없어도 되겠네? 혼자 동생들도 잘 챙기고 시집가도 되겠네?"

"어머니도 참... 시집은 무슨... 그리고 우리 어머니 없으면 어떡하라고!"

영애 씨는 딸이 하는 말을 듣고 흠씬 놀랐다. 이전에 자신의 엄마와 같은 얘기를 딸에게 하고 있는 모습에

민망하기도 하면서 웃음이 났다.

'엄마들 마음은 똑같은 것 같네. 그냥 기특하다는 생각으로 말하는 게 시집이야기라니...'


"어머니! 오늘은 몇 시에 가세요? 밥 드시고 좀 더 쉬셨다가 가시는 게 나을 것 같은데..."

둘째 아들이 말했다.

"응?"

'더 쉬었다 가라고? 어디 가야 되는 거지? 일하러 가야 되나?'

"어제 어머니 12시 지나서 오신 거 아니에요? 우리 기다리다가 잠들어가지고..."

"아빠는 좀 괜찮아요?"

"애들 데리고 내일 아빠한테 같이 가기로 했는데... 오늘은 우리가 집 청소 좀 해놓을게요."

'아빠한테 내일 온다고? 그럼...'

역시 영애 씨 예상이 맞은 듯했다.

'왜 하필 이 시기로 돌아온 거지? 좀 더 행복하고 좋았던 시기로 돌아가면 안 되는 건가?'

"아빠 지금 입원하신 지 얼마나 됐는지 알고 있나? 엄마가 요즘 정신이 없어서..."

남편의 건강 상태가 어느 정도인지 확인하고 싶었다.

'제발... 최악의 상황만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아빠? 음... 지금 입원하신 지 1년 좀 지나셨으니깐... 작년에 수술하시고 계속 입원 중이시니깐.."

"어머니 오늘 그냥 좀 쉬실래요? 많이 피곤하셔서... 아빠도 아빠지만, 어머니가 더 중요하니깐..."

그랬다. 남편은 지병이 있어 꽤 장기간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수술을 반복하기도 했지만, 당시 위증한 병이었기에 집에서 케어하기에 쉽지 않았다.

그리고 시한부 판정을 받았기에... 더 퇴원을 하기는 쉽지 않은 상태였다.

바로 그 시절로 돌아온 것 같았다.


"우리 관돌이가 이제 몇 학년이고? 엄마가 집에서 좀 챙겨주고 해야 되는데... 미안테이."

"아니에요. 누나야랑 형아가 옆에서 잘 챙겨주고 있어서 괜찮아요. 나 이제 3학년이고... 내년에 4학년

되잖아요. 이제 고학년이라서 혼자 잘한다."

'막내가 3학년 후반... 이제 곧 4학년에 올라가는 시점. 딱 이 때다.'

영애 씨의 판단이 맞다면 지금 남편의 상태는 많이 심각한 수준이다.

얼마 남지 않은 순간이었다.

'왜 다시 이 모습을 봐야 되지? 이 순간만큼은 다시 돌아오기 싫었는데...'

'하늘도 무심하시지...'

딸이 차려준 밥상이었지만, 갑자기 식욕이 사라졌다. 그리고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

벽에 있는 거울을 보니, 그냥 젊은 시절의 얼굴이 아니었다.

다시 본 얼굴은 피부도 상해있고, 신경을 쓴 탓에 살도 많이 빠진 상태였다.


이 시기 영애 씨는 집에 있는 시간보다 남편이 입원해 있는 병원에 있는 시간이 더 많았다.

사람을 쓸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고, 남편 또한 남의 손길을 타는 것을 싫어했기에 어쩔 수 없이

영애 씨가 전부 도맡아야 했던 상황이었다.

화장실에서 나와 자식들의 얼굴을 다시 한번 찬찬히 살펴보았다.

해맑은 모습이긴 했지만, 어딘가 모르게 쓸쓸함도 느껴졌다.

이제 겨우 중학생, 초등학생들인데 앳된 모습이 보이기도 하지만 일찍 철이 든 아이들의 모습에 미안하기도

하면서 보기 싫었다. 너무 일찍 철이 든 것 같아서 안쓰러웠다.

'우리 애들도 다른 애들처럼 철도 늦게 들고 그냥 걱정 없이 뛰놀면서 지내야 되는데..'

'지들이 무슨 죄라고... 부모 걱정을 해주고 있노...'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나왔다. 엄마가 우는 것을 눈치챈 딸이 조용히 휴지를 건네주었다.

민망하기도 하면서 고마웠다.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했다. 애들한테 더 이상 나약한 모습을 보여주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오늘 엄마 병원에서 자고 올 것 같은데... 너네들은 집에 좀 있다가 내일 아빠 보러 올래?"

"어떻게 오는지 알고 있나? 버스..."

"당연하지! 한두 번 가는 것도 아닌데... 우리 그러면 집 청소 하고 내일 갈게요."

"어머니도 가서 아빠 병간호 조금만 하고 일찍 좀 쉬어야 된데이!"

여전했다. 엄마를 생각해 주는 이쁜 마음들...

"그래. 고맙다. 니네들 때문에 엄마가 힘이 나네! 아빠한테도 내일 온다고 말해주면 좋아할 거다!"

그렇게 마무리를 하고 집을 나섰다.

30년이 훨씬 더 지난 시절이었지만, 병원 가는 그 길은 다시 가도 익숙했다.

버스 번호도 자연스레 기억이 났다. 버스를 타고 20분 후 병원 입구에 도착을 했다.

셔틀버스가 대기하고 있었지만, 그건 타기 싫었다.

왜냐하면 남편이 병실에 누워있는 모습을 단 일분일초라도 조금 늦게 마주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다시 볼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

'어떡하지? 많이 야위었을 건데... 말도 잘 못하는 상태 일건대...'

'왜 하필 이 순간으로 돌아왔지? 엄마도 한창 좋을 때가 아니고 하필 입원하셨던 시기고..'

'남편도 차라리 술 마시고 혈기 왕성할 때가 아니고 한창 아픈 시기에...'

'내가 뭘 잘못한 건가?'


버스에서 내린 후 입구까지는 십여분 이상 걸어가야 했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수만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특히, 30여 년 전 돌아간 남편의 생전 모습을 본다는 생각에...

반가움보다는 긴장감이 역력했다.

'어떻게 보지? 무슨 말을 하지? 울어야 되나? 웃어야 되나? 이제 익숙해졌는데, 다시 이렇게 만나버리면

나보고 어떡하라는 거지...'

좀처럼 생각 정리가 되지 않았다. 그때 갑자기 전화벨이 울렸다.

"여보세요?"

"언니 어디고? 여기 형부 밖에 안 계시네? 언니 집에 갔나?"

둘째 동생이었다.

"응. 나 좀 있으면 도착할 것 같은데... 니 웬일이고?"

"웬일은? 형부가 내 보고 싶어 하니깐 병문안 왔지. 우리 형부 그래도 이제 힘 좀 나는가 보네? 침대에 떡하니

앉아 계시네."

'앗! 다행이다. 기력이 있는 상태인가 보다.'

"그래! 영자야! 내 거의 다 왔으니깐 그럼 니가 좀만 형부 좀 보고 있어래이!"

"알겠다. 언니야! 천천히 와도 된다. 형부 내가 잘 보고 있을 테니깐 커피라도 한 잔 하고 온나!"

본인도 모르게 안도의 숨이 내쉬어졌다.

다시 한번 예전 남편이 병원에 입원해 있던 시절의 기억을 되살려 보았다.

솔직히 아픈 거 말고는 더 이상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때, 영애 씨 나이도 30대 중반...

한창 어린 나이에 너무나 큰 일을 당했기에 충격이 큰 상태였었다.

그래서 꽤 오랜 시간 병 수발을 들었음에도 거짓말처럼 그 순간의 기억이 지우개로 지워진 것처럼

잘 떠올려지지 않았다. 지금까지도...

남편의 얼굴 또한 제대로 기억이 나지 않는 순간도 있었다.

그런데 이제 몇 분 후면 다시 마주해야 하는 순간에 직면해 있다.

드디어 병실 입구에 도달했다. 병실 옆에는 남편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문 앞에 서서 문을 열기 전 귀를 기울여보니 동생의 웃음소리와 더불어 익숙한 목소리가 새어져 나왔다.

눈물이 빗물처럼 흘러내렸다.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쏟아졌다.

다급히 화장실로 뛰어가 흘러내리는 눈물을 훔치고, 세수를 하며 최대한 티를 내지 않으려 마음을 다잡았다.

그리고 다시 병실로 향했다.

'후~후~후~'

크게 심호흡을 하고 병실 문을 열었다.

그리고 침대 옆에 앉아 있는 동생의 모습이 보였고, 그 옆으로 환자복을 입고 있는 남편의 모습도 보였다.

"언니 왔나? 형부요! 언니 왔네요!"

그 소리를 듣고 힘은 없지만, 반가운 미소를 띠며 손을 흔드는 남편의 모습...


다음 회차에 계속 이어가겠습니다.


에필로그.

어머니를 보내드리고 온 영애 씨...

이제 다음은 남편과의 만남이었다...

그런데 그 만남은 유쾌한 기억을 가진 시절이 아닌 제일 기억하기 싫은 그 순간...

회사복 대신 환자복을 입고 있는 남편의 모습...

이번에 영애 씨는 왜 이 순간으로 돌아온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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