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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빈 틈'은 있다! 다만 크기가 다를 뿐..

왜 고용했을까? '나만의 완벽한 비서'가 된 협상가...

by 관돌

"빈 틈을 노려라!"

이 말은 무결점 한 무언가... 또는 어떤 사람에 대해 조그마한 약점을 찾아서 전세를 역전하기 위한 전략을 짤 때 주로 사용하는 말이다. 이는 꽤 장시간 대치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만큼 상대가 완벽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상대방의 빈 틈을 찾는 건 꽤 신중한 관찰이 아니라면 들춰내기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나의 빈 틈을 찾는 건 어떨까?

이 또한, 신중한 관찰의 시간을 가져야만 알 수 있는 걸까?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누구보다 나를 잘 아는 건 자신일 테고, 이는 그만큼 반복된 경험과 알게 모르게 해 왔던 스스로에 대한 성찰의 시간들이 꽤 많이 축적되어 쌓인 결과물들이 머릿속 어딘가에 박혀 있는 것일 수도 있기에...

상대적으로 나의 결점에 대해서는 바로바로 찾아내는 것 같을 수 있지만, 이것 또한 그간 쌓아온 데이터가 반영된 것이라 생각되기에 꽤 많은 시간이 할애되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무슨 말인지 원.... 아직 새벽 시간이라 잠이 덜 깬 건가?)


갑자기 뜬금없이 '빈 틈'이라는 말을 꺼내는 이유는?

생각을 해보면 꽤 많은 결심을 하고 행동으로 옮기려 노력을 해온 것 같다.

새해 연초가 되어서 세우는 계획이나 결심이 아닌 하루하루... 짧게는 시간 단위로도.

'오늘은 꼭 운동을 해야지!'

'퇴근하고 못 봤던 책을 봐야지!', '일본어 공부를 해야지!', '미라클 모닝을 해봐야겠다!'

하루에도 수십 가지 생각들을 하고, 또 결심을 한다.

그 결심을 하는 순간에는 정말 가슴속에서 보이지 않는 의지도 활활 타오르는 순간이었다.

기필코! 반드시!라는 말을 수없이 되새기면서...


그런데 막상 결심을 하고 이행을 해야 되는 그 순간이 다가오면...

의지를 활활 불태우며 금방이라도 쳐들어 갈 듯한 기세를 보였던 녀석은 희미해지고, 내 안에 있는 어떤 협상가라는 녀석이 그 순간 불쑥 튀어나와버리는 것 같다.

'어때? 지금 공부할 수 있겠어? 피곤하지 않아?'

'아침부터 지금까지 열심히 일하고 왔는데... 집에서 까지 책 볼 거야? 오늘만 일찍 쉬면서 TV도 보고 술도 한 잔 마시면서 긴장 풀어! 운동은 저녁에 하는 것보다 일찍 자고 아침에 하는 게 더 상쾌하지 않을까?'


이 협상가라는 녀석은 그 순간 누구보다 나의 마음을, 아니 심리를 꿰뚫고 있는 듯했다.

'누구지? 누군데 이렇게 현재 내 마음을 이렇게 잘 알고 있는 거지?'

아무래도 이 녀석은 나에 대해 세상 누구보다 빠삭한 전문가임에 틀림이 없는 것 같다.

그리고 이 녀석이 등장하는 그 순간... 그의 승률은 거의 80~90%는 되는 것 같다.

그냥 설득을 당해버리는 것 같다. 그것도 논리적으로 반박을 할 수 없게...

나를 설득하는 그의 가장 큰 무기가 바로 빈 틈을 노리는 것이다.


이번에는 괜찮겠지?

하루 정도 쉰다고 뭐 달라지겠어?

오늘 열심히 했으니 내일부터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데? 다 이해해 줄 거야!

지금 컨디션보다 푹 쉬었다 회복 후에 하는 게 더 나을 것 같은데?

안 한다는 게 아니잖아! 잠깐 계획을 변경하는 건데 어때?

마음이 편해야 일도 잘 되고, 좋은 생각도 나는 거니깐... 일단 무리하지 말고 오늘은 좀 쉬자!

하루의 마무리는 맥주 한 잔 아닌가? 한 잘 먹고 푹 자고 아침 일찍 일어나는 건 어때?

오늘 하루 미룬다고 큰일이 생기겠어? 의무사항도 아닌데 좀 여유 있게 생각하자!


이 협상가 녀석이 나에게 하는 거의 단골 멘트인 것 같다.

처음에는 '아니야! 안돼! 너한테 넘어가지 않을 거야!'라고 반박도 해보지만...

거의 결과는...

'그래.. 오늘 하루 정도는 괜찮겠지?'라는 안일함이 어느새 스멀스멀 기어 나와 이 전까지 다져온 의지의 불씨를 한 번에 확 꺼버리고 만다.

한 두 번이 아니다. 특히 최근 들어서 이런 경험들이 너무 잦았던 것 같다.

물론 생각했던 일들을 전부 다 해나가는 것 자체가 무리일 수 있다.

업무가 힘겨운 날에는 진짜 몸이 피곤해서 쉬어야 되는 경우도 있고, 갑작스러운 상황이 발생하면 그 계획을 자연스레 수정해 나갈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냥... 단순히 아무 이유 없이...

순간적으로 결심했던 열정이 쉽게 식어버리고, 그저 편안함을 더 추구했기에 벌어진 참사인 것 같다.

그리고 이 순간.

나의 빈 틈이 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협상가라는 녀석이 매번 튀어나오는 것이고.


어쩌면 그 협상가는 나 자신을 변호하기 위해...

스스로 죄의식을 느끼지 않으려고...

아무도 모르게 항시 대기시키고 있는 가장 싫어하지만 어쩌면 '나의 가장 완벽한 비서'가 아닌가 싶다.


오늘은 또 얼마나 이 비서를 활용할 생각인지 모르겠다.

처음부터 쓸 의도는 가지고 있지 않으니.. 항상 들추기 싫은 내 마음을 스스로 알고 나오는 녀석이다 보니...

웬만하면 이 녀석에게는 일거리를 주고 싶지도 않고, 마주치기도 싫은데...

쉽지만은 않은 것 같다.


그래도 이 녀석을 누르고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전혀 없는 건 아닌 듯하다.

바로 습관!

반복적으로 무의식적으로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몸에 베이는 게 습관이다.

하루 이틀 정도 반복한다고 해서 습관이라는 녀석은 쉽게 몸에 베이려 하지 않는다.

한 달, 두 달? 일 년?

꽤나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겨우 나를 조금씩 믿어주면서 천천히 몸에 들어오려고 할 정도로 조심성도 많은 반면에 그 심지 또한 상당히 굳건한 녀석이다.

웬만한 상황에 쉽게 흔들리지도 않고, 쳐다도 안 보는 녀석이다.

그리고 한 번 몸에 들어왔다고 해서 죽을 때까지 계속 머무는 건 아니다.

잠시 그 녀석에게 소홀하게 대해버리면 언제든지 몸에서 빠져나갈 수 있을 정도로 예민한 성격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그만큼 애정과 관심을 받고 싶어 하는 것 같다.

항상 반복해 줘야 되고, 매일매일 생각을 해줘야 되는 반려견 같은?

없으면 허전하고, 있으면 든든한 힘이 되는 그런 존재가 습관인 듯하다.

물론 좋은 습관이어야겠지만...


좋은 습관을 들인다는 건 그만큼 아마 평생토록 심혈을 기울여야 되는 일인 것 같다.

부족한 나의 빈 틈을 메꾸는 일이니깐...

견고한 댐에 한 방울의 물방울도 새어나가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처럼 빈틈없이...


완전히 견고하지는 못하더라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 것 또한 괜찮겠지?

(마지막까지 살짝 협상가의 속상임이 들리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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