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7시. 9월 첫 주 양양의 아침공기는 차가웠다. 벌써 가을의 찬 바람이 짙게 깔려있는 것 같았다. 마루는 엄마차에서 내려 친구들과 선생님을 만나러 갔다. 보건소 앞으로 걸어가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밝아오는 빛과 함께 서쪽 끝자락에서는 달이 보였다.
"마루야!" 누리의 목소리였다. 함께 타고 갈 버스 앞에서 손을 흔들며 뛰어오는 누리가 보였다. 누리의 뒤로 새온이와 도담이도 보였다. 새온이는 졸린 얼굴로 하품을 했고, 도담이는 옆에서 말없이 손을 흔들고 있었다.
"다들 잠은 잤어?" 몽 선생님은 아직까지 잠이 덜 깨보이는 아이들을 보며 웃었다. 아이들이 모두 도착한 것을 확인하고 차에 짐을 실었다.
"자! 저희는 모두 도착했으니 차에 타도록 하겠습니다! 이른 시간 여기까지 데려다주신 부모님들께 인사하고 가자! "
"네!" 아이들의 대답이 새벽 공기를 가르고 퍼져나갔다.
아이들을 태운 버스가 출발했다. 창밖으로 구룡령의 산들이 보였다. 설악산 끝자락을 지나면서 하늘은 어느새 밝아졌다. 마루는 창문에 기댄 채 눈을 감았다. 옆자리의 도담이는 벌써 잠이 들었는지 고개가 옆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세 시간은 생각보다 빨리 지나갔다. 서울에 들어서자 풍경이 달라졌다. 높은 건물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었고, 차들이 많았다. 마루는 이런 풍경이 낯설었다. 구룡령에서는 볼 수 없는 것들이었다.
"롯데월드 도착했습니다!"
기사님의 목소리에 아이들이 일제히 창밖을 내다봤다. 멀리 매직아일랜드의 놀이기구들이 보였다.
"우와!" 누리의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마루는 벌써 자신의 짐을 챙겨 내릴 준비를 끝냈다.
놀이공원에 앞에서 몽 선생님은 다시 한번 주의사항에 대해 말씀하셨다.
"자, 그럼 4시까지 자유롭게 놀고, 여기서 모이는 거야. 알았지?" 몽 선생님이 손목시계를 가리키며 말했다.
"네!" 아이들은 지도를 펼쳐 들고 머리를 맞댔다.
"우리 뭐 먼저 탈까?" 마루가 물었다.
"아틀란티스!" 새온이 지도의 한 곳을 가리켰다. 도담이도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건 좀 무서울 것 같은데..." 누리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마루도 고개를 저었다.
"나도 그건 패스."
"뭐야... 너네 이런 재미있는 거 못 탄단 말이야?" 새온이의 눈이 동그래지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지금까지 알던 누리와 마루라면 새온이와 도담이를 데리고 가장 무서운 놀이기구에 뛰어갈 거라 생각했다.
"그럼 나랑 새온이랑 가고 너네 둘이 가서 타는 걸로 하자!" 도담이의 제안에 누리와 마루는 신이 난 듯 뛰어갔다.
새온과 도담이는 아틀란티스 입구로 향했다.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와, 사람 진짜 많다." 도담이가 말했다.
"그래도 타야지. 여기까지 왔는데." 천천히, 정말 천천히 줄은 앞으로 나아갔다. 처음에는 신이 났다. 놀이기구가 내려오는 소리, 사람들의 비명 소리를 들으며 기대감이 부풀어 올랐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다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아,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 거야..." 도담이가 투덜거렸다. 새온은 시계를 봤다. 벌써 1시간이 지나 있었다.
"이제 얼마 안 남은 거 같긴 해."
드디어 차례가 왔다. 안전바가 내려오고, 놀이기구가 천천히 올라가기 시작했다. 새온의 심장이 두근거렸다. 도담이의 심장소리까지 들리는 것 같았다. 정상에서 잠시 멈췄다. 곧 내려간다는 안내방송에 숨을 꾹 참아보았다. 그리고...
"으아아악!" 순식간에 내려갔다. 물줄기가 튀었다. 새온은 웃음이 터져 나왔다. 도담이도 환하게 웃고 있었다.
"너무 재미있다!"도담이가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한 시간 넘게 기다렸는데, 타는 건 3분도 안 걸렸네." 새온이가 아쉬는 듯 말했다.
"그러게. 다시 타려면 이번에는 2시간은 기다려야 하는 거 아냐?"
둘은 서로를 바라봤다. 조금 아쉬웠지만, 다시 그 긴 줄에 서고 싶지는 않았다.
그 시간, 누리와 마루는 전혀 다른 곳에 있었다. 회전목마 앞이었다.
"누리야, 진짜 이것만 탈 거야?" 마루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응! 나는 이게 제일 좋아." 누리는 환하게 웃으며 말 위에 올라탔다. 마루도 옆의 말에 올라탔다. 음악이 흘러나오고, 회전목마가 천천히 돌기 시작했다.
"야, 사진 찍어줘!" 누리가 환하게 웃으며 포즈를 취했다. 마루는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었다. 누리는 다시 마루의 사진을 찍어줬다. 마루와 누리가 이렇게 보낸 시간이 있었던가.
회전목마는 천천히, 평화롭게 돌았다. 무섭지도 않았고, 기다리지도 않았다. 마루도 여유로운 회전목마에 몸을 맡겼다.
"이거 진짜 좋다." 마루도 슬쩍 미소 지었다.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4시, 약속 장소에서 네 명이 다시 만났다.
"뭐 탔어?"
"아틀란티스! 정말 재밌었어. 근데 줄이..." 새온이 말을 흐렸다. 도담이가 웃으며 말했다.
"한 시간 넘게 기다렸어. 근데 타는 건 3분."
"헐." 누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우리는 회전목마 다섯 번 탔어!"
"다섯 번?" 새온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응! 줄도 안 길고, 계속 탈 수 있어서." 마루가 으쓱하며 말했다.
둘째 날, 잠실 야구장.
"와, 잠실 야구장에 왔다!" 마루가 소리쳤다. 마루는 양양에서 유소년 야구단 소속이었다. 다른 경기장에도 가보고 다른 지역 선수들과 시합도 해보았지만, 잠실 야구장은 처음이었다.
"오늘은 우리 팀이 이길 거야!" 누리가 응원 막대를 흔들며 말했다.
"무슨 소리! 우리가 이길 건데." 새온이 맞받아쳤다. 둘은 서로 다른 팀을 응원했다.
"선생님은 어느 팀 응원하세요?" 마루가 물었다.
"나는... 어쩌다 보니 누리랑 같은 팀을 응원하게 된 것 같네! "
"선생님도 하필 왜 저 팀이에요... 그래도 우리 팀이 이길 거예요!" 새온이 뾰로통한 표정을 지었다. 표정은 뾰로통했지만, 실제로는 재미있었다. 같은 팀을 응원하지 않아도 같은 장소에서 야구를 보면서 응원한다는 것이 좋았다.
경기가 시작되었다. 타자가 나오고, 투수가 공을 던졌다. 땡!
공이 외야로 날아갔다. "우와!" 모두가 환호성을 질렀다. 1루 끝자락. 아이들 쪽으로 공이 오는 듯했다.
아이들도 자리에서 일어나 환호했다. 갑자기 가방에서 글러브를 꺼낸 마루가 소리 질렀다. "나한테 온다!"
아이들 생각과는 다르게 더 멀리 공이 떨어졌다.
3회가 끝났다. 몽 선생님은 잠시 나가셨다가, 양손 가득 치킨을 들고 오셨다.
"치킨이다!" 누리의 눈이 반짝였다. 아까 저녁을 먹었는데도 치킨 냄새를 맡자 배가 고파졌다.
"이게 진짜 야구장 치킨 맛이구나." 도담이가 한 입 베어 물며 말했다.
"역시 야구장은 치킨이지!" 마루도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새온은 치킨을 먹으며 경기를 봤다. 혼자만 다른 팀을 응원하는 것 같았지만, 이상하게 외롭지 않았다. 친구들이 옆에 있었고, 선생님이 있었고, 함께 치킨을 먹고 있었다.
경기의 승패와 상관없이 아이들은 신이 나서 숙소까지 걸어갔다.
"우리가 언제 서울에서 밤에 걸어보겠어." 마루가 신이 나서 겅중겅중 뛰었다.
숙소는 올림픽 공원 앞의 호텔이었다. 방에 짐을 풀고, 아이들은 창가로 모였다. 서울의 밤하늘을 보았다. 학교에서 밤에 보는 밤하늘도 반짝거렸지만, 서울의 밤하늘은 불빛들로 반짝거렸다.
"우리 학교랑 완전 다르다." 도담이가 조용히 말했다.
"그래도 학교가 더 좋아." 마루가 말했다.
"왜?"
"학교에서는 우리가 전부잖아. 여기는 사람이 너무 많아."
마루의 말에 아이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었다. 구룡령에서는 이 네 명이 전부였다. 반 전체였고, 구룡령에서의 마지막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은 늦은 밤까지 이야기를 나눴다. 오늘 본 것들, 재미있었던 것들, 맛있었던 것들.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마지막 날이 밝았다. 서대문형무소에서 역사 이야기도 듣고, 소극장에서 뮤지컬도 보고, 한강 유람선에서는 서울의 낮풍경을 보았다.
돌아오는 버스 안, 아이들은 모두 잠들었다. 잠시 눈을 뜬 마루가 창밖을 보았다. 잠들기 전까지 보았던 높은 빌딩들은 보이지 않았다. 산이 보이고, 중간중간 도로들이 보였다. 산 사이로 하늘도 보였다. 그리고 익숙한 풍경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2박 3일은 꿈처럼 지나갔다. 하지만 꿈은 아니었다. 사진 속에 남아 있었고, 기억 속에 남아 있었고, 마음속에 남아 있었다. 그날의 기억은 아이들의 마음속에 오래오래 남을 것이다.
그 해 구룡령 아이들의 서울 나들이는 그렇게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