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겨울이 왔다. 얼마 전까지 밤새 선풍기가 돌아갔는데 언제 여름이 지나갔을까.
올여름은 내 인생 최악의 여름이었다. 에어컨이 고장 나고, 아이들은 더위의 짜증을 있는 대로 나에게 부렸다.
에어컨이 안 나오는 날은 창문에 들어오는 실바람과 선풍기 바람에 의지해서 잠을 청했다.
더위를 못 참겠어서 뒤척이던 그날 밤, 문득 딸아이가 걱정됐다. 이렇게 더운데 방문까지 닫고 자고 있다니.
딸아이 방문을 열자 선풍기가 열심히 돌아가고 있었다. 창문은 꼭꼭 닫혀 있고, 선풍기만 쌩쌩 돌아가고 있었다. 나는 자던 아이를 흔들어 깨웠다.
"야! 이렇게 창문까지 꼭꼭 닫고 선풍기를 틀면 어떻게 해. 선풍기 틀고 문도 안 열고 자면 숨 막혀 죽어!"
"아, 엄마 무슨 소리야? 나 맨날 문 닫고 선풍기만 틀고 자는데."
딸아이는 눈도 제대로 못 뜨고 투덜거렸다. 하지만 나는 진짜 걱정이었다. 밀폐된 공간에 선풍기만 돌리면 산소가 부족해진다고 들었거든. 그날 밤 나는 딸아이 방문을 살짝 열어두고 나왔다.
[잔소리의 진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선풍기 때문에 죽는 경우는 거의 없다.
'선풍기 사망설'은 한국에서만 유독 강하게 믿어지는 도시전설이다. 외국인들은 이 이야기를 들으면 "정말?"이라며 신기해한다.
그렇다면 왜 이런 말이 생겼을까? 여러 가지 설이 있다. 1970년대 전력난 시대, 정부가 절전 캠페인의 일환으로 퍼뜨렸다는 이야기도 있고, 변사체가 발견됐을 때 원인을 특정하기 어려운 경우 '선풍기'를 원인으로 추정했다는 설도 있었다.
선풍기를 틀어도 방 안의 산소가 줄어들지 않는다. 선풍기는 단지 공기를 순환시킬 뿐, 산소를 소비하거나 이산화탄소를 만들어내지 않는다고 한다. 다만 극심한 폭염속에서는 선풍기만 틀경우 체온조절에 실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밀폐된 공간에 있으면 열사병 위험이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이건 '선풍기' 때문이 아니라 '극심한 더위'와 '탈수' 때문이다.
엄마는 '선풍기 사망설'이 과학적으로 틀렸다는 걸 알았을까? 아마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엄마가 정말 걱정한 건 산소 부족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딸아이가 혹시 더워서 힘들진 않을까. 밀폐된 공간에서 제대로 잠을 자고 있을까. 밤새 땀 흘리며 괴로워하진 않을까. 그냥, 딸이 편하게 잠들기를 바랐던 거다.
"선풍기 틀고 자면 죽어"라는 말은 비과학적이지만 엄마의 입장에서 그저 아이가 조금이라도 안전하고 편안하게 자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과학은 엄마의 잔소리가 틀렸다고 말하지만, 그 뒤에 숨은 마음만큼은 절대 틀리지 않았다. 선풍기가 위험한 게 아니라, 아이가 불편할까 봐 걱정되는 마음. 그게 진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