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음의 연금술사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황보름/클레이하우스 2023)
만족스러운 대화는 좋은 물음으로 시작된다. 대화의 달인들은 하나같이 물음의 장인들이다. 그들은 가벼운 질문으로 처음 만나는 상대방의 마음을 두드린다. 단 몇 마디로 상대방의 관심사를 훤히 읽고 적절한 질문을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짧은 대화로도 상대방의 마음을 얻는다.
물음은 내가 사랑하는 독서회 활동에서도 아주 중요하다. 독서 모임을 할 때 관심사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어떤 작품을 읽을 것인가’이다. 다른 하나는 ‘논제는 무엇인가’이다. 읽을 책은 대체로 독서회 회원들의 추천과 검토를 거치기에 고민할 여지가 적다. 그렇지만 논제는 어떤 사람이 맡느냐에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논제를 잘 뽑으면 대화는 절로 활기를 띨 것이고, 반면에 아쉬운 논제가 주어지면 대화 또한 그렇게 흘러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독서회 ‘광명산책’은 2023년 8월,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클레이하우스)를 함께 읽었다. 이 책은 광명시 ‘책 한 권 함께 읽기’ 사업에 선정된 소설이다. 나는 광명시에서 활동하는 ‘광명산책’에서 마땅히 읽어야 할 책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회원들에게 강력히 추천했고, 다소 이견이 있었지만 8월에 만나기로 한 것이다.
황보름 작가는 이 소설과 관련해 말했다.
“이 소설에 제가 좋아하는 것들이 가득해요. 책, 동네 서점, 책에서 읽은 좋은 문구, 생각, 성찰, 배려와 친절, 거리를 지킬 줄 아는 사람들끼리의 우정과 느슨한 연대, 성장, 진솔하고 깊이 있는 대화, 그리고 좋은 사람들.”
작가의 말에서는 “소설을 쓰는 시간은 놀라울 만큼 즐거웠다”고 밝혔다. 황보름 작가의 뜻이 고스란히 다가온 것일까. 나는 삶에 지친 사람들이 동네 책방이라는 오아시스에서 만나 다시 생기를 되찾고 잊었던 자신을 만나는 풍경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누구나 쉽게 공감하고 좋아할 만한 이야기라고 느꼈다.
나는 이 소설을 한 번 읽은 것으로 만족한다. 두 번 펼치고 싶은 욕망이 생기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내가 논제를 뽑아야 한다면 다시 읽어야 할 상황이었다. 살짝 고민스러웠다. 그때 짠 하고 구원투수가 나타났다. 여러 독서회에서 열정적으로 활동하는 믿음직한 회원이 선뜻 논제를 맡겠다는 것이었다. 무척이나 고맙고 든든했다.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독서 모임을 즐기기로 했다.
독서 모임을 며칠 앞두고 회원들에게 신박한 논제가 공개됐다. 나는 SNS를 통해 논제를 확인하는 순간 쾌재를 불렀다. 한 마디로 싱싱한 물음이었다. 발제자는 9가지 논제를 준비했는데, 이것은 모두 책 속의 질문에서 발췌한 것이었다. 몇 가지를 인용해 본다. “인생에서 놓치면 가장 아쉬운 것은 정말 사랑일까요” “책을 안 읽은 시대라고 하잖아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삶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사랑이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일이 뭔지 알아?” “언제 행복하세요?” “살면서 어디까지 솔직해 보셨나요?”
이날 독서 모임은 시원한 개울에 발을 담그는 시간이었다. 밖은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회원들은 뜻있는 물음들을 만나 저마다 진솔하게 이야기를 나눴다. 작가의 생각과 성찰을 제대로 읽고 곱씹는 시간이었다. 계획된 2시간의 대화는 금세 지나갔다. 진행을 맡은 나 또한 부담없이 휴가를 누린 기분이었다.
좋은 논제는 독서 활동을 살찌운다. 이는 독서 모임을 하면서 늘 확인하게 된다. 따라서 책을 읽고서 알찬 물음, 신선한 물음, 가치 있는 물음을 던지기 위해 꾸준히 갈고닦을 것이다. 아울러 독서 모임을 성공으로 이끄는 물음의 연금술사들을 각별히 소중히 하고 싶다.
2023년 8월 15일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