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꼽던 승리는 어긋났다. 마지막 춤은 없었다. 그렇다고 조용한 퇴장은 아니었다. 그것은 다시 만날 수 없는 이글거리는 불꽃이었다. 자신을 전부 사르고 세계 격투기 팬의 가슴까지 뜨겁게 달군.
2023년 8월 27일 밤 싱가포르. 'UFC 파이트 나이트’ 메인 이벤트 경기에서 맥스 할러웨이와 ‘코리안 좀비’ 정찬성이 만났다. UFC 페더급에서 할러웨이는 1위, 정찬성은 8위. 격투기 전문가들은 대부분 할러웨이의 압승을 예상했다.
드디어 1라운드. 두 선수는 서로를 탐색하며 팽팽한 긴장을 자아냈다. 정찬성의 묵직한 펀치가 몇 차례 적중했다. 움찔한 할러웨이의 반격도 만만치 않았다. 정찬성의 빈틈을 공략하는 할러웨이는 자신이 왜 UFC에서 최고의 타격가 중 한 사람인지를 보여줬다. TV 생중계를 지켜보던 나는 기대감으로 부풀었다. 전혀 밀리지 않는 정찬성의 모습을 보면서 ‘이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라운드 초반, 할러웨이의 펀치를 맞고 정찬성이 휘청거렸다. 곧 초크(목을 조르는 기술)에 걸렸다. 할러웨이는 숨통을 조여왔고, 경기는 곧 끝날 듯했다. 그런데 정찬성은 초인적인 힘으로 버텼다. 간신히 3라운드를 맞이한 정찬성은 승부수를 던졌다. 할러웨이에게 돌진하며 펀치를 주고받았다. 그러다 할러웨이의 펀치 하나가 정찬성의 턱에 제대로 적중했다. 코리안 좀비는 그대로 꼬꾸라졌다. 그의 주먹만 맥없이 허공을 갈랐다.
경기가 끝나고 정찬성은 “그만할게요”라며 은퇴를 선언했다. 오로지 챔피언을 목표로 달려왔는데 더 이상 꿈을 이룰 수 없는 현실을 냉정하게 받아들인 것이다. 알고 보니 정찬성은 16년 동안 격투기를 하면서 많은 부상에 시달렸고, 전신 마취를 9번이나 했다고 한다. 그의 주먹이 멈출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나는 탄식과 함께 지나간 두 장면을 떠올렸다. 정찬성이 2013년 처음 챔피언에 도전했던 조제 알도(브라질)와의 경기, 그리고 2022년 두 번째 챔프전이었던 알렉산더 볼카노프스키(호주)와의 경기. 조제 알도에게는 어깨 부상으로 안타깝게 패했다. 볼카노프스키에게는 완벽하게 밀렸다. 그리고 이날의 마지막 패배까지 더해 ‘결정적인 세 장면’이 오래오래 여운을 남길 것 같다.
왜 ‘코리안 좀비’인가. 그는 경기장에서 물러서는 법이 없다. 펀치를 맞고 또 맞아도 끊임없이 전진한다. 이기든 지든 화끈한 승부를 한다. 그 놀라운 격투 스타일이 세계 격투기 팬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다. 그의 마지막 상대였던 할러웨이도 “코리안 좀비는 전설”이라며 존경의 뜻을 나타냈다.
불꽃 같은 격투가 정찬성의 빛나는 은퇴, 그리고 새롭게 펼쳐질 그의 앞날에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아울러 인생이라는 치열한 경기장에서도 물러설 줄 모르는 ‘좀비의 파이팅’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2023년 8월 29일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