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증금 2,000만 원 때문에 50억 건물이 경매된 사연
대화를 하여야
얽히고 설킨 것들이 풀어지고
사는 보람이 있지
만물과도 대화
이웃과도 대화
세계와도 대화
어제와 오늘도 내일도 대화
영원히 대화
- 정명석, <대화> 중에서
그분은 상담실 문을 열고 들어오시자마자 숨을 고르지 못한 채 말을 쏟아내셨습니다.
“아니, 변호사님. 보증금 2,000만 원 때문에 제 건물에 강제경매를 걸어놨다니까요.”
그분은 상가 건물의 임대인이었습니다. 시가로 50억 원이 훌쩍 넘는 건물이었고, 그 건물의 호실 하나를 임차했던 임차인이 계약기간 만료 후 퇴거하면서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이미 두 사람 사이에는 보증금반환청구소송 판결이 있었습니다. 판결의 내용은 간단했습니다. 임대인은 보증금을 반환하고, 임차인은 건물을 인도한다. 아주 전형적인, 너무나도 흔한 보증금반환청구소송 판결문이었습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습니다. 임차인은 자신의 짐을 그대로 둔 채, 즉 원상회복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열쇠만 반납했습니다. 그리고는 그 판결문을 근거로, 임대인의 건물 전체에 강제경매를 신청했습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그분은 억울함을 넘어, 이해되지 않는 상황 앞에서 분노에 가까운 감정을 느끼고 계셨습니다.
“아니, 자기도 인도의무를 다 안 해놓고, 어떻게 제 건물에 경매를 걸 수가 있습니까?”
그분의 질문은 감정적으로도, 상식적으로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법은, 종종 우리의 상식과 다른 지점에서 작동합니다.
임대차에서 보증금 반환의무와 임차인의 인도의무는 동시이행관계에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이렇게 생각합니다.
“상대방이 먼저 안 하면, 나도 안 해도 된다.”
“자기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으니, 강제집행도 못 한다.”
그러나 현실은 조금 다릅니다.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의 적용을 받는 임차인은, 인도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보증금반환청구소송의 확정판결문을 가지고 강제경매를 신청할 수 있습니다. 경매 신청 단계에서는, 동시이행이 실제로 이행되었는지를 따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론, 나중에 배당을 받기 위해서는 그 시점까지 인도의무를 이행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나중의 문제이고, 경매를 시작하는 것 자체를 막는 요건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강제경매절차 진행을 그저 수용만 하고 아무런 손도 못 쓰는 것은 아닙니다. 강제경매개시결정에 대해 이의신청을 할 수 있고, 그 이의신청이 확정될 때까지 집행정지를 신청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절차 진행과 확정을 미루는 시간을 벌 수는 있지만, 이러한 신청이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매우 낮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분은 다시 한번 놀라셨습니다. 법적으로 가능한 수단이 있음에도, 실제로 원하는 결과를 얻기 어렵다는 사실이 받아들이기 힘드셨을 것입니다.
“경매진행을 법적으로 다투는 것보다, 임차인과 협의해서 경매를 취하시키는 것이 훨씬 이익입니다.”
보증금 2,000만 원 때문에 50억 원짜리 건물에 경매가 걸려 있는 상태는, 금액의 문제가 아니라 신용, 거래, 시간, 스트레스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저는 제3의 방안을 제안했습니다. 일단 임차인이 원하는 보증금 2,000만 원을 전액 반환하여 경매를 취하시키고, 그 이후에 원상회복 비용 상당액을 별도로 청구하는 방법이었습니다. 물론 이 또한 완벽한 해법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분이 원하시는 결과—경매를 멈추는 것—에 가장 가까운 현실적인 선택지였습니다.
상담을 마치며, 저는 마음 한편이 무거웠습니다.
이렇게까지 일이 커지기 전에 만났다면 어땠을까?
임대차 종료, 보증금 반환, 명도. 이 모든 것은 사실 아주 흔한 일입니다. 그 흔한 일이, 소통의 부재와 감정의 누적으로 이토록 극단적인 국면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갈등에는 각자의 이유가 있습니다. <비폭력대화>의 표현을 빌리자면, 갈등의 밑바탕에는 언제나 충족되지 않은 욕구가 있습니다. 저는 각자의 그 욕구를 듣는 것에서부터 일을 시작합니다. 누가 옳은지 아닌지 시비를 가리기보다, 어떻게 하면 가장 빠르고, 가장 덜 지치게, 가장 현실적으로 문제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을지를 고민합니다.
저는 변호사이지만, 소송을 문제 해결의 첫 번째 방법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소송은 언제나 가장 마지막에 선택해야 할 수단입니다.
이 사건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강제경매 절차가 시작되었더라도, 그 절차가 끝까지 가도록 두어서는 안 됩니다.
법은 싸움을 키우기 위해 존재하지 않습니다. 관계를 완전히 끊기 전에, 상처를 최소화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소송이 아니라 대화와 협의로 풀 수 있는 문제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저는 그 길을 함께 찾는 변호사이고 싶습니다. 끝낼 수 있는 선택을 통해 결국 의뢰인이 이기게 되는 길을 함께 고민하는 변호사이고 싶습니다.
유노이아 법률사무소, 장유미 변호사 입니다.
법과 삶, 그리고 문학이 만나는 자리.
한 편의 시와 한 사람의 이야기 속에서
유노이아의 법률 에세이는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