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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일 Sep 12. 2024

쓰라, 그냥 쓰라, 그냥 쓰기만 하라

나탈리 골드버그의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중에서

 중앙도서관 ‘나의 첫 에세이 출판 수업’도 중반을 넘어 이제 수강생들끼리 소통하는 모습도 조금씩 보이고 글쓰기를 갈망하는 눈빛도 초롱초롱하다. 나 역시 억지로라도 끌려가다가 보면 무슨 방책이 나오겠지 하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런데 글쓰기 도움받을 책을 추천하거나 공유해 달라고 내용이 카톡 방에 올랐다. 지도 강사께서는 ‘나탈리 골드버그의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를 추천하셨다. ‘뭐야 글쓰기에 도움 되는 책이 있어?’ 당연히 무슨 책인 들 없으리오마는 글 쓰는 데 도움 된다는 단어에 호감이 갔다. 그런데 책 제목에서 기가 질렸다. ‘당연한 이야기 아냐?’ ‘뼛속까지 내려가서 쓰라고?’ 뼛속까지 내려가서 하면 무엇인들 못 하겠어? 왕도 되고 천국에도 갈 것 같은 결론에 고장 난 시계처럼 생각이 멈추었다. 포기해 버릴까? 하다가 그래도 강사가 추천한 것이니 학생으로서 기본은 지켜야겠다고 생각했다.     

 

 책이 대여되었다. 이제는 읽어야 한다. 최소한 추천하신 선생님과 책에 관한 대화를 하려면 내용은 알고 싶어 밤에 책을 폈다. 눈에 피로감이 빠르게 오고 읽어도 감이 떨어져 어려웠다. 역시 공부도 젊어서 해야 하고 독서도 젊어서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론으로 많이 듣던 이야기지만 막상 내게 닥쳐 서평의 목적을 갖고 읽어보려니 부담스러웠다. 그래도 억지로 눈으로 흘려보내며 10페이지를 보고 덮었다. 시도라도 한 것을 자위했다.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조금씩 도전하여 읽었다. 계속 고개가 끄덕여지고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다. 그럼 나도 도전해도 되는 건가? 하는 착각에 빠져보기도 했다. 그러다 중간을 넘기며 나타난 쓰라. 쓰라. 그냥 쓰기만 하라. 에서 미소를 지었다. 어쩜 내 마음을 알고 있나 싶었다. 나 역시 아무 생각이 없다. 그저 두드린다. 나중에 삼수갑산을 가든 백두산 천지를 가든 무슨 상관이냐 싶어 그냥 쓴다. 아무도 내게 평을 해주지 않아도 답글이 없어도 상관이 없다. 난 작가가 아니기 때문에 부담이 없다. 돈벌이 수단이 아니니 내가 하고픈 대로 그냥 쓴다. 사실 숙제라는 핑계를 달고 그냥 쓴다. 그래서 난 어떤 교육이든 시간만 허락되면 참여하려고 노력한다. 생각의 연결고리를 이어가고픈 나름의 방편이다. 사실 자신에게 질문해도 에세이 수업이 아니었으면 나의 블로그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이었을 것이다. 남들이 블로그 한다니 멋있게 보여주시기식 명함 한 줄 달기용 정도였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은 블로그에 과제가 있어 글을 쓰니 행복하다. 걸어가면서도 머릿속에서 스토리를 구상하고 그림을 그린다. 물론 집에 와 생각하면 다 잊어버리고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아 아깝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삶에 모습이 최소한 에세이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 동안만은 다를 것 같다. 이래서 생각을 많이 하면 치매 예방이 된다는 건가? 아니야 오히려 생각을 너무 많이 해 머리가 복잡해 치매가 오는 것은 아닌가? 별 쓸데없는 생각을 다 한다. 그래도 알 수 없는 것은 아침마다 성경 필사를 조금 미루고 블로그에 글을 쓰려고 자판기를 두드릴 수 있다는 게 무슨 병인지 나도 모르겠다.     

  

 흔히 이야기하길 한 우물을 파면 뭐라도 되지 않겠냐고 한다. 이론적으로 맞다. 하지만 꼭 맞는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물을 팔 때 천공기로 땅에 구멍을 낸다. 쇠 파이프를 먼저 넣으면서 연결해 내려가고 물을 발견한다. 발견하지 못하면 기계를 다른 위치로 옮기고 다시 시도한다. 이때 물을 발견하면 쉬 파이프 속으로 수도 파이프를 집어넣고 땅 파기를 했던 쇠 파이프는 회수한다. 한 번에 물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물이 흐르는 강 옆이라고 지하수가 한 번 천공으로 발견되는 것도 아니다. 땅속에 흐르는 지하수를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먼지만 일으키고 1백 미터 이상 들어가고 물을 발견하지 못하는 경우는 허다하다. 기계를 다루는 전문가는 감으로 찾는 게 보편적이다. 여러 공을 뚫어 목적을 달성한다. 결국 에세이에서 쓰라 쓰라는 이론도 같은 근거일 것이다. 글을 글답게 쓴다는 것이 그리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지하에 있는 물을 찾듯 글이 제대로 끝맺음 대는 일도 쉽지 않다. 하물며 책으로 편집되고 구매되는 과정에서 독자의 선택을 받는 건 만만한 게 아니다. 그렇지만 모든 일에는 예외가 있듯 단 한 공으로 지하에 물을 찾는 고수도 있다. 운이 따랐을 수도 있지만 역시 기술이다. 글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한 편을 쓰고 유명 작가 된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 역시 눈물 흘리며 쓰고 버린 습작의 고통과 포기하고 싶었던 갈등과 아픔이 있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쓰자. 또 써보자. 열심히 써보자. 글이 되든 말든 누가 읽어주든 말든 내가 좋아서 쓰고 내가 남기고 싶어 쓴다고 생각하자.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 머릿속에 아무리 좋은 생각도 쓰여 있지 않으면 작품이 아니다. 생각만 하는 것은 아무짝에도 쓸모없고 안개처럼 사라지고 기억에서 멀어진다. 쓰고 싶다고 생각한 이때 바보처럼 그냥 써보자. 마음이 시키는 대로 선생님 하라는 대로 일단 쓰자. 이후에는 작품으로 남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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