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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일 Dec 01. 2024

느림과 기다림으로 보낸 하루

  느림과 기다림으로 보낸 하루.      

  이틀째 눈이 온다. 11월 첫눈치고는 너무 많이 온다. 11월 첫눈이 최고의 적설량으로 기록될 것 같다. 청소년 시절 같으면 기쁘고 즐거울 수 있으련만 나이를 먹음은 즐거움을 느끼기보다 현실에서 어려움이 걱정된다. 아침에 눈을 뜨고 밖을 보니 하얀 세상이다. 마음 바쁘게 TV 뉴스를 켰다. 용인 눈이 41센티를 넘으며 전국 2위다. 난 10시 반에 어린이집 동화 활동이다. 아내는 어린이집 조리사이니 식사를 책임지고 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먹는 건 해결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버스가 운행하지 못할 것은 대비하지 못했다.


“버스가 아예 정보가 뜨지 않아요.”

“그럼 경전철밖에는 방법이 없네.”

“잠시 기다려 옷만 입고 나갈게.” 아내는 버스 외 다른 교통수단을 경험해 보지 않아 출근을 혼자 하기엔 부담스러움이 있었다. 동행하므로 남편으로 몫을 감당해 주는 것 같아 마음 한구석에 뿌듯함도 잠시. 경전철엔 이미 사람이 가득했다.     

‘아! 우리만 버스를 못 타는 게 아니지?’     

갈등의 연속이었다. 승용차로 가야 하나? 이건 아닌 것 같은데 어떻게 하지? 더 일찍 나왔어야 하는 데 등등 답이 없는 질문을 던지며 경전철이 오기를 줄을 서서 기다렸다. 작년 겨울 경전철이 멈춘 것이 기억나 불안한 생각이 꼬리를 물고 있었다.

‘온다 경전철이다.’ 수많은 사람이 기다리던 경전철 한량이 정거장으로 들어왔다. 몇 사람 태우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우리만이 아니다. 모든 정거장에 사람이 가득 있다는 것을 생각지 못하고 기대가 컸었다. 하지만 다음번에는 탈 수 있게 순번이 가까워진 것으로 자위했다. 피조물이 할 수 있는 마지막 보루인 기도를 드려 본다. 순간 1대가 왔다. 사람들의 ‘밀지 마세요.’ 소리와 함께 빨려 들어갔다. 몸을 움직일 수 없게 사람이 실렸다. 경전철 창문 너머 인파가 많이 보이고 안에 있는 우리를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고통이 있어도 실려있는 게 행운인가? 하지만 경전철이 움직이지 않는다. 사람이 너무 많이 타 과적인가? 아니다. 눈 때문에 서행이라 신호를 기다린다. 무인 작동이 아니라 수동으로 작동시키고 있다. 서로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안전하게 이동하려니 정거장 하나 움직이는 데 20분 이상이다. 걸어갈 수도 없고 되돌아 집으로 갈 수도 없다. 이런 것을 진퇴양난이라 하는구나 싶다.     

 

  환승역을 한 정거장이 남겨진 강남대역에 도착했다. 역시 움직이지 못하고 경전철은 멈추어 기다린다. 인생이 앞길을 모르고 하염없이 주어진 삶을 살아가듯 경전철 안에 갇혀있는 우리 모습이 그런 것 같다. 기약도 없고 대책도 없다. 그저 기다릴 뿐이다. 20분 이상을 기다렸을까? 반가운 소리가 들린다. 

“스르르 탁!” 경전철 문이 닫혔다. 가야 한다. 이번만 가면 수인선으로 바꾸어 탈 수 있다는 희망이 보인다. 얼마나 많은 기다림이 있었는가? 그러나 이 기다림을 계속할 수 있었음은 희망 때문이었으리라. 모두의 기다림에 답을 해주려면 움직여야 한다. 그런데 외부의 안전장치 스크린도어가 닫히지 않는다. 경전철은 우리의 바람을 아랑곳하지 않고 무심하게도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함께 타고 있던 역무원이 말한다. 

“전동차 고장으로 갈 수 없습니다. 다들 내려주세요.” 

전동차의 문은 수동으로 전동차에서 가능했다. 하지만 스크린도어는 중앙에서 제어하는 방식이라 역무원도 방법이 없었나 보다. 착한 고객들은 너 나를 막론하고 짜증 소리 하나 없이 썰물 빠져나가듯 전동차는 순식간에 텅 비었다.

“이런 세상에나 방법이 없잖아 걸어서 기흥역으로 가봐야지”

“한 정거장이니 갈 만은 할 거야”

“눈길에 그것도 만만치는 않지?” 아내와 난 대책을 고민하며 올라가지도 못하고 있었다. 대기하며 줄을 서 있던 사람들은 무슨 일인지 정확히 몰라 멍하고 있는 순간 전철 안에서 밀려 나온 사람은 다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출발합니다. 어서 타세요.” 귀를 의심했다. 

분명히 사람들이 다시 밀려 들어갔다. 오히려 대기하고 있던 인원이 탔으니 여유로웠다.

살다 보면 예상과 다른 일이 간혹 발생한다. 의도와 상관없이 상황이 그렇게 만드는 경우다. 지금이 그런 경우다. 성질 급하게 움직였다면 아내와 눈을 맞으며 험난한 길을 걷고 또 걸어서 기흥역으로 갔을 것이다. 한 박자 느리게 생각하고 한 박자 느리게 움직이다 보면 예상치 않은 일이 발생할 수 있다. 세상은 이것을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한다. 운이 좋았다. 철학적으로는 운명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우리네 삶에서 기다림과 한 박자 느림의 수를 배워 보는 하루다. 내일을 알 수 없는 인생에서 오늘을 느리게 기다리며 살기란 쉽지 않다. 현대를 인터넷세상인 정보 홍수의 시대라고 표현한다. 좀 더 남들보다 빠르게 움직이고 빠르게 생각하고 빠르게 행동하기를 요구한다. 지치거나 쓰러지면 밟히고 도태되어 쓸모없는 인간으로 낙인 되기가 일쑤다. 그러나 빠른 것이 대수일까? 살아온 날들을 생각해 보면 오히려 넉넉히 기다렸던 시간이 소중하고 한발 늦다고 생각했던 일이 결과에서 기쁨과 감사로 연결된 일이 많았다. 어쩌면 기후재난으로 오늘 온 적설량이 내일은 가장 적게 온 적설량으로 기록될지도 모른다. 내일은 내일을 기다려 보아야 정확히 알 수 있기에 그렇다. 오늘은 오늘로 만족하고 내일은 기다림으로 감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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