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홀로 시간속 새해 다짐

by 김동일

습관처럼 연말 송구영신 예배를 드렸다. 기억해보면 중학교 2학년 때 친구의 권유로 교회에 친목 놀이 참여가 기회 되어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계산해보면 50년은 족히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송구영신은 교회에서 보냈던 것 같다. 그런데 올해는 조용히 집에서 글을 쓰며 보내 보기로 했다. 아내가 부재한 틈을 이용해 공동체에서 한발 넘어서 나를 보는 시간 여유를 가져보는 것이다.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은 사람처럼 방에 있는 게 낯설고 어색하다. 공동체와 함께 삶을 공유하고 즐기고 나누는 것도 좋지만 혼자만의 되돌아봄도 나쁘지는 않으리라는 기대로 결심한 일이다. 연말연시 청소년 시절에는 교회에서 밤을 꼬박 새운 적이 많다. 첫 번째 기억나는 날이 성탄절 전야다. 우선 산에 가 벌목을 해야 한다. 소나무를 하나 잘라서 여러 명이 들고 와야 한다. 성탄 트리 장식용이다. 지금 같으면 경찰에게 잡혀서 형사 입건될 일이지만 과거엔 가능했던 일이다. 그리고 밤새 친구들과 톱밥 난로에 의지하여 몸을 녹이며 시간을 보내고 새벽이 되면 새벽 송을 다녔다. 걸어서 10리 길도 마다하지 않고 산타 복주머니 자루를 등에 메고 집집을 방문했다. 복을 빌어주고 과자를 얻어 교회학교 아이들에게 선물로 나누어줄 기쁨에 추운 줄도 몰랐다. 그리고 연말 송구영신이다. 제야의 종소리를 듣기 위해 기다리다 종소리와 함께 새해 첫날을 맞으며 예배를 드리며 참되게 살아가리라 마음을 다졌다.

가옥이 옹기종기 모여 살던 마을은 없어진 지 오래되었다. 콘크리트 벽장 속에 갇혀 작은 창문 사이로 거친 숨 몰아쉬며 사는 삶이 1980년 이후 대한민국의 주거 형태다. 땅에 뿌리 박지 않고 콘크리트 덩이만으로도 가치를 인정하는 세상이니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부동산이라는 이름으로 세상 거래는 그렇게 이루어지고 있다. 이런 형태의 주거환경이 되면서 어린 시절 기다려지고 좋았던 새벽 송은 추억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옆집에 민폐 된다고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었다. 밤에 아파트 현관 앞에서 노래를 부른다는 것, 자체가 두려운 세상이 되어버렸다. 층간소음 때문에 살인이 저질러지는 험한 세상이니 그럴 수밖에 없지만 안타깝다. 얼굴에 먼지 뒤집어쓰며 불을 붙였던 솔방울도 사라졌다. 겨우내 땔감을 모아두었던 톱밥 창고도 소용이 없어졌다. 전기와 가스가 모든 걸 대체해 버렸다. 청정연료로 먼지도 없고 창고도 필요 없어졌다. 편리함이라는 타이틀 앞에 전부 무릎 꿇어 항복해 버렸다. 그 굴복함 속에는 우리의 낭만도 함께 묻혀버렸다. 친구들과 함께 노래 부르고 별것 아닌 말에도 웃어주며 철없이 지냈던 과거는 이제는 어린이집 할머니의 이야기보따리 속으로 들어갔다. 폐허 속에 문화유산이 파묻혀 있듯 앞으로 아이들은 동화 속에서 만나게 될 것 같아 안타깝다. 그러나 언젠가는 주거 형태가 아파트를 벗어나고 마을이 회복되어 공동체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오길 기대해본다.

방에 혼자 있는 공간이 싸늘하게 느껴진다. 지금은 생동감 있게 움직이고 손뼉을 치고 노래를 부르고 고함을 지를 친목의 시간이다. 송구영신 예배 전 행사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난 혼자 지내보고 싶어졌다. 나이를 먹고 있다는 증거인가? 무리 지어 어울리는 것도 흥이 없어진다. 함께하는 즐거움에 공유보다는 혼자의 시간이 필요해 보여서다. 찬찬히 되돌아봄이, 바둑에서 복귀하면서 패인을 살피듯 내 삶을 복귀해보는 것이다. 어린 날은 기억에도 없다. 왜 그런지는 모른다. 청소년기에도 단지 몇 컷이 떠오를 뿐이다. 청년 시절은 어떨까? 장년 시절은? 답을 찾아보려고 혼자 시간을 가졌는데 오히려 혼란하다. 기억 속에서 복귀해 살펴볼 내용도 찾을 수 없고 머릿속엔 온통 잡생각이다.

‘어디 인생이 마음을 먹었다고 다 되는 것도 아니잖아’

‘미련을 가지고 살펴서 지금 와 어찌할 건데 소용없는 짓 아냐?’

혼자 문제 내고 답을 찾고 혼란을 겪다 이내 포기한다. 지나간 것은 그저 지나간 대로 품 안에서 따뜻하게 간직하자. 손이 차가울 때 손난로 사용하듯 마음이 허할 때 따스한 추억으로 꺼내 사용할 수 있게 야무지게 보관하자.

역시 인간은 사회적동물이고 혼자만의 세계로 익숙하지 않다. 2025년 아침 해가 올랐다. 계획한다고 계획대로 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계획을 세워본다. 올해는 글을 열심히 써볼 예정이다. 성경 필사를 목적대로 이루었으므로 기록으로 남길 다음 목적이 생겼기 때문이다.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않고 묵묵히 앞으로 갈 것이다. 다음 시간이 주어진다는 보장이 없다는 생각으로 문제를 정리할 것이다. 주어진 시간만큼 감사하며 최선을 다해 삶에 충실해 볼 계획이다. 누가 뭐라 해도 상관하지 않고 내게 주어진 시간을 즐길 거다. 즐기며 사는 사람을 누구라도 이길 자 없다고 하잖는가? 승리의 깃발을 높이 들고 깃발에 내 글을 적으리라. 수고했다고 애썼다고 최선을 다했으니 후회하지 않는다고 쓴 깃발을 힘차게 흔들며 안녕을 부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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