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재능을 논할 때 어떤 일을 잘할 때 능력이 있다고 판단한다. 결국 행하지 않은 사람은 능력을 인정받지 못한다. 사람도 마찬가지 재능이 어떤 것인지 알려면 행위가 필요하다. 그렇기에 경험해 보라고 조언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직접 해보면 이론적으로 안다고 생각했던 것보다 전혀 다른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어 당황하거나 기쁠 때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만의 방법이 터득되고 재활용되었을 때 그 일에 전문가라는 평을 받게 된다.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발생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왜 아무 일도 하지 않을까? 그것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 것이다. 누구나 좌절을 맛보는 것을 싫어한다. 비판받고 실패자로 낙오되어 뒷전으로 밀려나 기억 속에 사라지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행함이 없는 믿음이 믿음이 아니듯 해보지 아니하고 어찌 터득될 수 있겠는가. 이론으로 알고 있는 것은 지식이다. 시험지에 답을 정할 때 필요한 정보 정도다. 그렇지만 인생은 지식으로 살아갈 수 없듯 정답이 없다. 아니 정답이 필요 없다. 태어난 길은 같고 마지막 가는 길도 같은데 살아가는 길은 제 각 각이기 때문이다. 정해진 길을 가는 전용도로도 없다. 태어남과 죽음은 어찌할 수 없지만 살아감은 자기 하기 나름으로 달라질 수 있다. 중간 나갈 수 있고 길을 바꿀 수 있는 갈림길도 있다. 인생이 그렇기에 묘미가 있다. 인생은 한 번뿐이기에 다시 살아볼 수는 없다. 하지만 생명이 존재하는 날까지 변화를 시도해 볼 수는 있다. 그러므로 하루하루의 시간은 사람을 바꾸는 요술 기계일 수 있다. 일 년 단위로 시도할 수 있고 월 단위로 시도할 수 있고 일 단위로 시도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루의 시간 속에 외부환경이 어제나 오늘이나 같다. 가족, 집, 자동차, 교회, 일, 활동, 2024년 12월 31에서 2025년 1월 1일이 되었다고 세상이 달라질 것도 없다. 아니 달라지지도 않는다. 2024년을 정리해 보고 2025년을 계획한다. 달라지기를 바라는 자신과 약속하고 다짐해 보기 위해서다. 이것부터가 행하는 것이다. 변화의 시작이다. 변할 것이 없기에 행하고 있지 않은 면 기회도 오지 않는다. 젊다고 기회가 빠르게 오고 늙었다고 기회가 더디 오는 것도 아니다. 기회는 늘 곁에 있다. 준비되지 않아 기회가 기회인지 모르고 넘겨버리는 오류가 많을 뿐이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으려면 자기 무장이 되어야 한다. 자기 무장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담대함이다. 담대함은 자기 가치의 확신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자기 가치란 자신이 추구하는 삶의 방향과 목표일 것이다. 사회가 자본화되면서 돈의 가치가 사람의 추구하는 목표 가치로 전락되어 버렸다. 초등학생의 목표가 건물주가 되어 버린 세상이다. 돈이 적으면 불편하다. 그렇다고 많다고 모든 것이 편한 것 또한 아니다. 그렇다면 2025년 어떤 목표를 정하고 달려볼 것인가?
빼곡하게 날짜마다 채워진 2024년 탁상용 달력을 펼쳐보며 눈을 감아본다. 상상 속 세월이 빠르게 지나간다. 어제같이 오늘이 왔고 어제같이 오늘이 다시 오는 날의 반복이었다. 예상하지 않았던 일을 만나 당황하며 시작한 것도 있었고, 예상했으나 나와 무관해진 일도 있다. 누구의 잘못이 있는 것도 아니다. 굳이 변명해 보거나 아쉬워할 것도 없다. 오늘 일은 오늘로 족하고 내일 일은 내일로 시작하면 된다. 버린 것이 아깝다고 붙들고 있으면 오는 기회를 붙잡을 여력이 없어진다. 손이 2개라 잡고 버틸 수 있는 한계가 있듯 기회도 여러 번 오지 않는다. 손을 비워 놓아야 두 손으로 어떤 것이든 재빠르게 꽉 잡을 수 있다. 무엇을 놓고 무엇을 잡아야 할까? 이제는 놓는 준비도 병행할 때가 되었다. 욕심을 내려놓고 가치를 추구하는 삶을 살아보자. 열심히 살았음에도 안 해본 것도 많고 못 해본 것도 많다.
“식사는 조금 기다려야 합니다. 12시가 넘어야 합니다.”
“아~네 기다리겠습니다.” 밥솥에서는 김 빠지는 소리가 난다. 늦둥이가 식사를 준비하면서 나눈 대화이다. 아내의 부재로 식사를 염려했다. 매 끼니 준비하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아내는 입원하기 전날에도 반찬을 준비해 주려고 노력했다. 냉장고에 무엇이 있는지 알려주려고도 애썼다. 막내와 둘이 있는 게 불안해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외로 막내는 밥도 척 척이고 세탁기도 혼자 연구해 돌려댄다.
“아빠 세탁기 언제 배울 거야?”
“같이 돌리면서 배울 거야 한번 하는 것 보고 배울 거야”
“엄마가 알려준 것하고 비교해 봐”
“알았어” 어리둥절하다. 공부만 하는 아이로 알고 있었는데 착각이었다. 어제는 병원을 다녀오는 사이에 화장실 청소까지 도전해 깔끔하게 해 놓았다.
“거울은 아빠가 해”
“그래”
“승혜야 이리 와 봐 ”
“거울은 젖은 물수건으로 먼저 때를 닦아내고 마른 수건으로 한 방향으로 닦아내면 돼”
“어때 깨끗하지?”
“어 진짜 깨끗해졌네?”
“그래 그러니까 이제부터는 네가 직접 해 봐 알겠지?” 막내는 신기한 듯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네” 대답한다. 안 해본 것은 어렴풋이 이해하는 것이다. 그건 자기의 것이 아직 아니다. 이론으로 알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이론을 직접 체험하고 논리적으로 체득되었을 때 그것은 자기 것이 된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설명할 수 있게 되고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최고의 학습법이라고 한다. 막내를 보면서 아내의 입원으로 우리가 염려했던 막둥이에 대한 근심이 쓸데없는 염려였다는 것을 깨닫고 반성했다. 기회가 없어 안 하고 있었지 못하는 게 아니었다. 막내라고 기회를 주지 않고 안 해본 것이니 못할 것이라는 선입관이 문제였다. 안 해본 것이지만 조리를 위해 작은 노트에 깨알같이 적어서 불 앞에 도전하는 막내에게 박수를 보내주고 싶다. 그러면서 생각해 본다. 못하는 건 없는 거다. 안 해본 것뿐이라고, 못한다고 겁먹고 두려워하지 말고 쟁취하는 것이다. 불 앞에 서지 못하면 자취 자립은 강 건너 불구경하듯 남의 일이 될 것이다.
문제는 항상 우리 앞에 나타난다. 문제가 산처럼 높게 보여 앞이 보이지 않아 답답할 때가 있다. 그런가 하면 문제가 잔잔한 파도처럼 곁에 스쳐 지나가 언제 무슨 일 있었는지 느낌조차 없는 수도 있다. 하지만 큰 산이든 작은 파도이든 문제를 대하는 나의 태도에 따라 문제가 문제가 아니고 오답 노트가 될 수 있다. 인생의 문제는 단순하지 않다. 그러므로 문제 때문에 고민할 필요는 없다. 그 일을 아직 넘겨보지 못한 것이지 문제를 못 푼다고 단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설사 잘못 풀어 틀린 답이라고 하더라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틀린 문제를 오답 노트에 잘 정리하여 다음 기회에 문제를 풀어내면 된다. 인생은 숨 쉬는 한 연속문제다. 언제 오답 노트와 유사한 문제가 우리 앞에 다가올지 모른다. 그러므로 오답 노트를 정리해 놓아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다. 생각만 하고 끝내는 것이 아닌 글로 남기고 정리하는 일기며 수기며 에세이라고 생각한다. 2025년에도 어떤 일이 네게 닥칠지 모른다. 그러나 언제나처럼 당당히 맞서고 인생 오답 노트로 실수를 줄이며 즐겁게 전진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