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서운 한파 소식이 있었다. 영하 12도이다. 귀찮고 싫은 마음 이겨내고 아침 일찍 외출 준비를 했다. 외손녀의 초등학교 졸업식이다. 다행히 가까이 살고 있어 참석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아내가 입원 중이라 작은딸을 대동하고 학교로 갔다. 큰딸이 출산 후에도 회사 다녀야 했기에 유아 때부터 초등학교 입학 때까지 우리의 양육을 받았던 손녀다. 함께 했던 시간이 많았던 만큼 정이 더 갈 수밖에 없는 아이다. 큰딸은 사춘기를 호되게 보냈다. 엄마의 마음을 힘들게 했었다. 일부러 약 올리는 행동도 막무가내로 했던 모습도 있었다. 그렇게 힘들었던 큰놈이 아이를 낳고 그 녀석이 초등학교를 졸업한다니 옛 생각이 나고 아내가 동행하지 못한 게 아쉬웠다. 사춘기로 방황하는 큰 녀석에게 늘 입버릇처럼 했던 말이 기억에 있다.
“아빠는 널 믿는다.”
믿는다는 말이 통했는지 지금은 엄마와 잘 통하는 아이다. 어그러져 나갈 때 자식에게 딱히 할 말이 없었다. 믿고 싶고 믿어주고 싶은 마음 밖에는 표현해 줄 단어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녀석이 자식을 낳고 벌써 초등학교 졸업을 한다니 세월이 참 빠르다고 생각을 했다. 참석해 느껴 보는 첫인상은 사람이 적다 와 자유스러움이다.
오랜 시간 속에 기억을 끄집어 내보기로 했다. 1972년 초등학교 졸업식이다. 한 반의 학생 수가 70명 가까이 되었다. 그리고 6개 반으로 구성되었었고 남녀의 구성비는 5반과 6반은 여학생반 4반은 남녀 혼성반이었고 1, 2, 3반이 남학생 반이었다. 남학생 비율이 높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 같다. 그때는 남학생과 여학생은 구분되어 편성되었다. 남녀 칠 세 부동석이라는 유교적 발상이 남아있었다. 그렇지만 남녀 혼성반도 있었다는 건 아이러니하다. 내 졸업식에 누가 왔었는지 기억에 없다. 아무도 오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추운 날 옷도 변변치 않았을 것이고 부모님은 오지 않았고 외롭고 힘든 하루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학교 운동장에서 추위에 떨며 지루한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철저하게 잊어버린 유년 시절의 기억을 찾아낼 방법은 없다. 최소한 무언가를 먹은 기억이 당시 경제 상태로 보면 기억 거리가 될법한데 그것 역시 없다. 먹을게 귀했던 시절이라 짜장면이면 최고의 선물이 아니었을까 싶다. 마음이 얼음처럼 동결되어 기억 없는 졸업식으로 가슴 한구석에 묻혀있다.
“여보 빨리 준비해 늦겠어.”
“네 끝나가요. 용돈 준비되었고 꽃다발도 사다 놓았어요.”
“그래도 계단 올라가려면 시간 좀 걸리지 않을까?” 큰 녀석은 학교가 언덕에 있었다. 서울 동대문 성벽이 있는 산이다. 아내는 화장을 예쁘게 하고 머리 단장도 했다. 본인 졸업식도 아닌데 자식에게 예쁘게 보여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열심히 꾸몄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계기로 아파트가 대세로 지어지면서 아파트가 입주하면 학교가 활성화되었다. 큰 녀석은 그 무렵 입학하여 1996년에 졸업했다. 학교가 산에 있었고 동네도 가난해 학생 수가 적었던 학교다. 종로 초등학교가 과밀학교가 되면서 학생이 몰려 분교가 졸지에 이름이 났다. 아파트가 생기면 학교가 생기는 현상이 그 시기였던 것 같다. 학급수는 5개 학급이 넘었다. 물론 학생 수는 우리 때보다는 적은 40명대로 기억한다. 큰 녀석도 졸업식에는 강당이 아직 없어 운동장에서 했다. 추운 줄도 모르고 마냥 좋았고 자식이 초등학교를 졸업하니 너무 행복했었다. 졸업 기념으로 첫아이 손을 잡고 부자 연습하기 위해 소고기 등심을 먹었던 것 같다. 지금은 흔한 게 소고기지만 그 당시만 해도 무슨 날이어야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다.
3대 손녀의 졸업식은 대강당에서 이루어졌다. 학생들은 대학 졸업식에 구경해 본 사각모에 졸업식 예복까지 갖추고 있다. 강당에 엄마와 함께 옆자리에 앉아 있는 게 특이했다. 졸업식 순서에 졸업생 송사 재학생 답사가 없었다. 막내 이야기로는 자기네 졸업식에도 없었다고 한다. 생각나는 가슴속으로 아련하게 답사를 읽으며 울먹이던 재학생이 생각나며 정감이 메마르지 않았나 생각했다. 그런데 졸업생이 일어나 옆에 계신 엄마에게 감사 편지를 읽어주는 순서가 있어 감성의 표현 방법이 변화된 시대를 이해했다. 졸업식 노래에서는 변화를 더욱 실감하고 깜짝 놀랐다.
1세대인 나는 재학생이 먼저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 꽃다발을 한 아름~ ’ 1절 노래 후 답가로 졸업생들
‘잘 있거라 아우들아, 정든 교실아, 선생님 ~’을 불렀고 3절은 함께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며 ~’을 부른 게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2세대 딸이 졸업할 때
‘오랫동안 사귀었던 정든 내 친구야 작별이란 웬 말인가 가야만 하는가~’ 작별 노래로 졸업 노래를 대신했었다. 그런데
3세대 손녀 졸업식에서는 경쾌한 음악과 영상이 나왔다.
DAY6라는 아이돌 밴드의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라는 대중가요였다.
‘솔직히 말할 게 많이 기다려왔어. 너도 그랬을 거라 믿어 오늘이 오길~’ 밴드 리듬에 맞춰서 학생들이 노래를 부르는 걸 보면서 세상이 바뀌었음을 실감했다.
시간 속에서 세상의 모든 것들은 소리 없이 변화하고 있다. 변화에 잘 대처하려면 빠르게 인정해야 한다. 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노력은 개인의 몫이다. 세상 탓을 하며 적극적인 대응 전략 시기를 놓치면 결국 도태된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바뀌고 흑백에서 칼라 시대로 바뀌었다. 듣는 문화에서 영상으로 보는 문화가 되었다. 음식조차 내 돈 주고 먹는데 배워야 외식도 가능한 세상이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고 도전하자. 자녀들의 시대가 우리와 다름을 인정하자. 분명 그들은 우리보다 나은 세상을 살아갈 것임을 믿고 신뢰하자. 교장 선생님께서 졸업생 한 명씩 안아주며 덕담을 나누는 모습이 보기 좋았던 졸업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