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베이터가 멈추었다. 사용기한이 넘어 교체작업에 들어간 것이다. 20년을 넘게 정들었는데 고철덩이로 아스팔트 바닥에 어지럽게 뭉쳐져 있다. 폐기 처분되면 어떤 것도 이같이 처절한 아픔과 대우를 받는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쓰일 때는 귀한 대접을 받고 여기저기서 불러주기도 하지만 용도 폐기되면 엘리베이터 고철보다 못한 게 인간 육체 덩어리다
아무 곳에도 쓰이지 못하고
누구도 반기지 않고
가까이하기를 무서워한다.
최대한 빠르게 남에 입에 오르내리지 않을 정도로 처리하기를 원하는 물건이 된다.
엘리베이터가 멈추어 서자. 그것의 존재가치가 나타난다. 존재할 때는 몰랐다. 당연하게 오르고 내리는 줄 알았다. 고층에 살면서도 공간 개념 없이 살았던 착각도 엘리베이터 운행의 영향이 컸으리라 생각한다.
나름 계단 걷기를 건강 생각한답시고 16층까지 자랑스럽게 걸어 다니긴 했었다. 그때는 좋아서 한 짓이라 몰랐었는데 정작 도구가 없어지니 걸어서 16층은 운동의 범주를 넘는 것 같다.
존재하고 계속 운행되었다면 모르고 넘어갈 존재함에 가치를 깨닫는다.
아버님이 그랬다. 살아계실 때는 존재가치를 모르고 살았다. 철없는 시절엔 젊음이 재산이라 귀가 커서 주변 목소리는 잘 들어와도 아버님 말씀은 잔소리로 들렸다. 결혼 후에는 아버님보다 내 자식 먼저 챙기느라 언제나 뒷전이고 소홀했다. 이제 자식도 머리 커서 제 갈 길 가고 정신 차리고 얼굴 들어 아버님 돌아볼까 마음먹으니 철들자 이별이라 부모님은 침대 위에 누워계셨다. 단단하던 육체에 쌓여있던 근육은 풀려 서리 맞은 호박잎 같다. 검은색 머리카락은 흰색으로 물들어 양털 같았다. 양처럼 온순하게 편안하게 누운 모습에 눈길을 어디에 두어야 하나 난감하다. 무슨 말로 변명이라도 해 볼까 싶어 침대 주변을 서성거려 본다. 좀 더 건강하실 때 잘해 드릴 걸 후회해도 세월 앞에 내 한숨 소리는 옛 노래 황성옛터 가락처럼 구슬프다. 물끄러미 쳐다보시는 그 눈빛이 내 눈과 마주치며 무디어진 마음을 두드리며 아프게 하고 눈물만 흐르게 한다. 아버님은 조강지처 일찍 잃고 힘들게 사셨다. 어린 자식들 눈에 밟혀도 생활 때문에 원양어선 오르실 때 얼마나 마음 편치 않으셨을까 조금은 알 것 같다.
새벽 5시 기상했다. 평소보다 30분 일찍 고구마를 구웠다. 병원 식사 시간 7시 전에 따뜻하게 구운 고구마를 아내에게 먹이고 싶어서다. 주변 사람들 몫까지 5개를 식기 전에 보온용 용지로 감쌌다. 보온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지금까지 가족을 위해 새벽같이 식사를 준비했을 아내에 대한 최소한의 위로 만찬이다.
오늘은 성탄절이다.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성육신 하셔서 과부와 어려운 형제를 위해 오신 날이다. 인간에게 평안을 주신 날이지만 세계 곳곳엔 총소리가 멈추지 않고 있다. 다른 사람을 돌아보는 시간이지만 정작 내 사람 돌아보기에 바쁜 하루가 될듯하다.
매일 평안을 위해 애쓴다고 하지만 가족을 위한 노력은 진실한 표현과 실천적 관용으로 실현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받아 드림으로 완성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사랑의 열매는 맺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아버님께서 하늘나라 가신 지 오래되었다. 기억 속에 잊힐 무렵
이제부터 늙어가고 정리되는 과정을 밟고 있는 것은 우리다. 물론 흘러가는 시간만큼 익어가는 것도 사실이다.
엘리베이터처럼 수명이 결정되어 있는 것이 없는 게 인생이다. 결정된 것이 없는 인생은 그러므로 흥미롭고 새롭다.
오늘을 준비함은 내일을 보장하지 못함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늘을 후회하지 않기 위해 노력함이 곧 내일 기쁜 날로 열매 맺게 될 것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알 수는 없겠지만 아내의 입원과 엘리베이터 멈추어선 것을 계기로 2024년 성탄절에
교훈을 얻는다.
존재하는 오늘이 좋다. 할 수 있는 시간이 있어 더 좋다. 지금이 그래서 최고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