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흥은 자족함으로

by 김동일

노래는 흥이 나야 부르게 된다. 춤도 마찬가지다. 흥으로 춤과 노래는 연결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노래가 리듬을 타고 흥을 일으키면 춤을 추게 된다. 춤을 추는 데 음정이 잘 맞고 듣기 편한 목소리와는 관계없다. 몸이 자연스럽게 움직이고 흥이 나면 된다. 곡이 느리고 잔잔한 여운을 남기고 감정이 바닥을 치고 있는 곳에서 춤은 나오지 않는다. 흥이 나질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흥을 강제로 북돋으려고 술이라는 도구를 사용하기도 한다. 흥이 나는 경우는 또 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좋은 일이 생겨도 흥이 난다. 콧노래가 나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흥을 이기지 못해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는 수도 있다. 결국 흥은 직접적인 요소보다는 간접적인 요소다. 흥이 많은 사람도 있고 흥이 적어 웬만한 감정 변화에는 몸이 움직이지 않는 사람도 있다. 사람마다 감정을 다스리는 자기 방식이 있기 때문이다. 무리 중에 흥을 잘 받아들이는 사람은 혈액형이 B형이 많다고들 한다. 사교적이라고 표현하는데 정확한 과학적 증거는 없다. 우리가 B형 가족이라 반박할 수 있다.


“제는 뭐가 저리 좋은 일이 있기에 목욕을 할 때나 드라이로 머리를 말릴 때나 시도 때도 없이 흥얼거릴까?”

“글쎄? 마음이 편하다는 증거 아닐까?”

막내는 오늘도 드라이기 소리에 묻혀 가사 전달도 제대로 되지 않는 노래를 신나게 부르며 머리를 말리고 있다. 남들이 부러워할 SKY를 졸업한 지 3년째다. 자존심을 건드릴까 물어보지는 않지만 3년째가 되니 부모로서 조금 걱정은 된다. 하지만 아침 기상이 정확하고 꾸준히 정해진 시간 공부를 하고 있으니 믿음이 생긴다. 더욱 아내와 나를 안심시키는 요소는 흥이 있다는 것이다. 흥은 마음이 여유롭지 않으면 생기기 어렵다. 막내가 우리와 함께 생활하면서 아직 심적 여유가 있고 흥이 살아있다면 무엇인가 자신이 계획한 일을 열심히 하고 있다는 증거다. 우울하거나 계획하고 있는 일에 목표가 없다면 흥이 날 리가 없다. 짧지만 지금까지 소신 있게 결정하고 결과에 순응해 왔다. 때가 되면 아내와 내게 흥이 날 일로 무엇을 보여줄지 궁금하다.


막내라는 닉네임으로 보면 나도 막내였다. 형제는 없었고 누나가 두 분 계셨다. 어머니께서 젖먹이 나를 남기고 세상을 떠나시고 가정 형편은 매우 어려웠다. 큰누나가 먼저 가출을 해 서울로 갔다. 1970년대 서울 상경은 취업을 목적으로 시골에서는 청소년가출이 유행이었다. 작은누나도 몇 해를 못 견디고 집을 나갔다. 가난을 극복하려는 의지와 집이 싫은 사춘기 마음이 겹쳐 쉽게 행동으로 연결되었다. 어머니의 부재로 가사는 할아버지께서 돌보셨다. 연세 많으신 분이 감당하시기에는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보다 못한 고모의 주선으로 새어머니가 들어오셨다. 아버지는 고기잡이배로 출항을 하시면 한 달은 집에 들어오시지 못했다. 새어머니와는 대화가 쉽지 않았다. 밤이면 방에 덩그러니 혼자 있을 때가 많았다. 새어머니가 들어오시고 몇 년 후 나를 가장 아끼시던 할아버지께서도 하늘나라로 홀연히 가셨다. 그동안 힘든 짐을 벗고 편안한 안식을 찾으셨기에 오히려 감사했다. 시간이 갈수록 외로움을 감내하기에는 어렸었다. 밖에 바람 소리에도 사람 오는 소리로 착각하고 방문을 열어볼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주변 사항들이 우울을 겹겹이 싸이게 만들었다. 마음이 불편하니 흥이 날 일이 없고 저절로 흥을 내 볼일도 없었다.


생활에 여유도 없고 힘이 드니 흥이 없다고 생각했었다. 무슨 일을 해도 흥이 없었다.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 일고 돈을 벌기 위해 일하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알았다. 흥이 있는 삶이 아니라 목숨을 부지하고 가족을 부양 책임의 무게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세상사에 무감각하니 대화도 짧았고 만사가 살아야 한다는 생존 논리로 귀결되었다. 가정보다는 주어진 직업에 열정을 다했고 성실히 일만 했다. 가정에 소홀했지만 살기 위한 방법이라고 합리화시켰다. 남편을 이해해 주고 가정을 잘 이끌어준 아내 덕에 무일푼으로 시작해 남에게 빌리지 않을 정도의 부도 축적했다. 가정이 안정되면서 내게 변화된 게 있다면 흥이 생겼었다. 그동안 삶에 지쳐 흥을 노출할 기회도 없었고 흥은 복 있는 사람들의 몫이라 생각했었다. 흥을 회복하니 삶의 질이 달라졌었다. 그러나 흥을 찾고 나를 온전히 발견할 즈음 9년을 이어온 사업은 폐업으로 막을 내렸다. 다시 어두운 삶에 그림자가 엄습해 흥을 앗아갔다.


인생 2막 숨어서 때를 기다리던 흥이 발현되었다. 어려서부터 하고 싶었던 활동과 일을 하고 있으니 저절로 힘이 나고 흥이 난다. 내게 광대 기질이 있고 흥이 많다는 걸 흰머리가 나서야 알게 되었다. 가족 부양의 책임을 벗고 삶의 가치를 전파하는 강사 활동을 하니 흥이 났다. 사람 앞에 서면 저절로 신바람이 나고 흥이 난다. 주체 못 할 흥은 사람이 많을수록 더 발현된다. 강의가 없고 활동이 쉬면 어김없이 밭으로 간다. 뜨거운 낮시간 비지땀을 흘리며 풀을 메고 작물에 물을 주면서도 노래가 나오고 흥이 난다. 다른 사람에게 값없이 나누어줄 것이 내게 있다는 자긍심 때문이다. 흥에 취하는 건 춤이나 노래나 술이 아니어도 가능하다는 소중한 도구를 터득했다. 자신에게 만족하면 흥이 생긴다. 자족이 진정한 삶의 흥이고 인간이 누릴 행복이라 생각한다. 이제 남은 인생 삶의 가치에 흥을 북돋는 사람으로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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