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가 뭐예요?”
“네 저는 기독교입니다.”
“신이 존재한다고 믿는 건가요?”
“그럼요. 저는 종교라는 단어도 좋아하지 않아요. 피조물인 인간이 명칭을 정한 것이잖아요.”
“피조물이 창조주를 믿는다는 건 당연한 것, 종교라는 명칭이 필요 없다는 취지예요.”
“그렇군요. 믿음이 좋군요.”
무엇을 믿는다는 건 상대적이다. 신뢰를 바탕으로 한다. 이론이 뒷받침될 필요는 없다. 어떤 논리가 이해되고 답을 정할 수 있다면 신의 영역은 아니다. ‘사람은 한번 나고 반드시 죽는다.’ 이것은 명제다. 태어남에는 순서가 있어 맏이가 있고 막내가 있겠지만 하늘에 별이 되는 죽음의 순서는 정해진 게 없다. 죽음을 스스로 방어할 수 없는 한계가 있기에 신이 존재할 수 있다. 만약 모든 것이 가능하다면 인간은 욕심이 많고 자기중심적이기에 신의 존재를 부정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논리적인 성격보다는 단순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종교를 가질 확률이 높다. 나도 그중 한 사람이다.
청소년 시절 어머니 정이 없었던 때 집보다 밖을 서성거릴 수밖에 없었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집으로 가는 게 신바람 나지 않았다. 반겨줄 사람도 없고 간식도 없었다. 저녁을 먹으면 친구 집에 공부하러 가는 척하고 시내를 배회하는 게 낙이었다. 가정에서 탈출한 자들과 방황하며 다니고 밤바람을 쐬는 게 행복했다. 집에 있는 게 외로웠고 타인과 어울리는 게 부담 없고 좋았다. 그때 길에서 우연히 친구를 만나 교회를 처음 방문하게 되었다. 학생들이 모여 친목을 도모하는 자리의 초대였다. 분위기에 적응하지는 못했지만 여러 학생을 만나게 되어 좋았었다. 가정에서의 외로움을 달래주고 따뜻하게 인정해 주는 공동체가 마음에 다가왔다. 시간이 지나면서 신의 존재를 믿음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외로움은 사라지고 가정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다. 거부감 있던 어머니를 이해하고 신앙 안에서 서로를 용납해야 함을 깨달았다. 창조주가 나와 함께 한다는 것이 위안이 되었고 피조물로서 한계도 인정하게 되었다. 인간의 사회변화와 발전은 동물과 다르게 허구를 믿으면서라고 한다. 집단적 믿음이 사회 구성원이 되면 종교가 되고 국가로 변화할 수 있다. 개인도 신이라는 존재를 믿음으로 받아드려 삶에 적용하고 부단히 노력할 때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
아버지는 북한에서 한국전쟁 때 피난 오셨다. 배로 북한에서 이동해 터 잡은 곳이 묵호항이고 지금은 동해시다. 바다를 직업으로 정하시고 바다의 신이 되는 용왕님께 제사를 지냈다. 그러다 어머니가 새로 집에 오시면서 외갓집 할머니께서 무당직업을 갖고 계셔서 자연스럽게 신내림 믿는 굿을 하는 집이 되었다. 온갖 잡신이 가정을 지배한 것이다. 그런데 외할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앞으로 내가 없더라도 무당 부르지 말고 물 한 그릇이라도 떠 놓고 너 가 손수 빌어라’에 어머니께서 순종하시면서 토속신을 믿게 되었다. 어머니 물 한 그릇이라도 떠 놓는 정성은 기독교로 개종하기 전까지 계속되었다. 그 시절에 땅의 신을 믿었고 물의 신을 믿었다. 조상신도 지극한 정성으로 모셨다. 3년 상이라고 해 부모님 돌아가시면 3년 동안 집안 한쪽 벽에 상을 차리고 매일 아침저녁으로 밥을 올리고 절을 했다. 이것은 조상이 후손을 지켜주리라는 믿음에서 생겼다. 토속신 역시 땅의 신이 우리 공동체를 보호하고 물의 신이 비를 내려주어야 풍년 된다고 생각했다. 논리적으로 이해되거나 학설에 근거도 없다. 단지 집단이 그렇게 신뢰하고 믿었기에 신은 존재하게 되었을 뿐이다.
청소년 시절 우연히 친구 따라 방문하게 된 계기가 지금까지 날 교회로 이끌고 있다. 하나님을 믿고 삶이 바뀌었고 꿈을 꾸게 되었다. 어머니를 고맙게 생각하고 공동체를 위해 섬기고 배려도 배웠다. 또 배운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실천되어 변화된 모습에서 타인을 공감시켰다. 공감을 얻은 부모님과 누님 두 분도 같은 신을 믿는다. 같은 신을 믿는 신앙 가족공동체라 감사하다. 믿음은 보지 않고 믿는 것이 성경에서 믿음이라고 한다. 신의 영역이다. 그렇지만 사람 간의 영역에도 보지 않고 믿을 수 있는 믿음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인터넷세상이 되면서 비대면이 흔한 세상이다. 회의도 강의도 수업도 많은 사람을 수용하니 가성비가 좋아 온라인에서 만난다. 가상화폐가 향후 어떻게 변화할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인류가 문명의 진화를 거듭하듯 지금 막연하게 생각하던 것도 언젠간 후세에 대세가 될 수 있다. 그것은 사람이 집단으로 믿음을 가지는 순간부터 가능해진다. 집단의 믿음이 선한 쪽으로 열매 맺어 가난한 이웃에게 힘이 되길 바람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