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김없이 5시에 핸드폰에서 알람이 울린다. 피곤한 몸이 말을 듣지 않지만 억지로 육체를 좌우로 움직이며 정신을 차려본다. 잠시 하루의 평안과 안전을 기도하고 허리를 펴본다. 아내는 고단한 하루에 지쳐 깊은 잠을 자고 있다. 새벽에 깨워 함께 밭에 가자고 했다. 그러나 오늘은 맛있게 솜 설탕처럼 잠자고 있어 깨울 수가 없다. 살며시 굼벵이 알에서 벗어나듯 일어나 옷을 대충 걸치고 문소리를 조심하며 아내를 두고 밭으로 갔다. 오이와 가지가 대롱대롱 매달려 자기를 가져가라고 애원한다. 강낭콩은 노랗게 하얗게 채색되어 노려보며 울부짖는다. ‘주인장 때가 되었소 왜 열매를 수확하지 않소’ 어느 녀석의 말을 들어주어야 할까 고민하다 강낭콩에 손이 먼저 간다. 강낭콩은 4월에 심어 장마 전에 열매를 얻는 작물이다. 올해는 평년보다 두 배 많은 양을 심었다. 상추도 예년보다 풍년이 되어 다른 사람과 나누어 먹는 데 지장이 없다. 강낭콩도 나눔을 하려면 때를 놓치지 말고 열심히 수확해야 한다. 다른 사람에게 주려면 상품의 질에 더 신경 써야 한다.
“궁금한 게 있어요. 날도 덥고 힘든데 왜 이런 일을 하세요?”
“이유는 한 가지 그저 나누어 먹고 나누어 주는 게 좋아서요”
“저는 이해가 잘 안되어요. 힘들게 농사를 지으셨잖아요.”
해설을 마치고 오후에도 근무해야 하므로 다른 해설사들과 식사하는 자리에서 상추를 한 보따리 가져온 나에게 질문이 온 것이다. 처음에 당황했다. 이런 질문은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해설을 마치고 집으로 오면서 여운이 남는 말은 “왜 이런 일을 하세요?” 난 왜 이런 일을 하고 있지? 힘들게 일을 했으면 돈이 되는 짓을 해야지 남 좋은 일은 하는 게 정상적인 건가? 문을 열고 들어서기 무섭게 반갑게 맞는 아내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여보 오늘 당신이 따준 상추로 점심 맛있게 먹었어요.”
“모자라지는 않았어요?”
“아니 남아서 밭이 없는 사람은 봉지에 나누어 가져갔어요”
“다행이네요.”
“그런데 여보 오늘 식사 중 한 분이 내게 왜 이런 일하느냐고 질문해 한참 띵했거든 우리 왜 이렇게 사는 거지?”
“후후 그런 말 가끔 하는 분들 계세요. 그런 말 나올만하죠. 뭐 그냥 우리가 좋아서 하는 일잖아요” 아내의 야무진 대답이 시원하게 더위를 식혀주는 소낙비처럼 왜라는 질문을 쓸어가 버렸다.
아내와 난 농촌에 정착해 이웃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살고 싶다. 전국에 농촌은 많고 인구 소멸로 일손도 부족하다. 이런저런 이유와 핑계로 이루지 못한 시골살이 프로젝트를 가동 중이다. 올해 이곳저곳 두리번거리며 방문도 해보고 있다. 용인에서 활동하고 있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농촌으로 간다는 게 쉬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지금까지 삶이 그랬듯이 나그네처럼 안주하지 않고 또 다른 도전을 해볼 것이다. 그렇기에 요즘 나의 관심사는 농촌에서의 새로운 터전 잡기이다. 아무것도 손에 잡히는 것 전혀 없지만 단지 꿈꾸고 있다는 것으로 이루어질 것을 믿는다. 지금껏 그랬듯이
꿈 많았던 청소년 시절 어렵고 힘들 때 재물을 많이 모아 자선사업가를 생각했었다. 중년엔 사업을 하며 구체적으로 실행되는 모습도 보았다. 그러나 재물을 얻는 것보다 잃어버리는 게 쉽다는 세상의 논리도 배웠다. 그런 가운데서도 넉넉한 재물이 없어도 육체로 땀만 흘려도 함께 사는 세상을 만들어갈 수 있음을 깨닫게 됨은 큰 배움이었다. 공자의 말에 따라보면 70에 나 자신을 제대로 아는 것이 천하를 아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그 나이가 되면 하고 싶은 대로 하여도 법도를 어기지 않는다고 했다. 이제 나 역시 70을 눈앞에 두고 있다. 하고 싶은 대로 할 나이다. 늘 하던 버릇대로 행하여 왔던 나눔을 확장 시켜볼 시기다. 그리고 관심으로 머물던 생활인구로 정착해 농촌공동체를 이루어 볼 기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