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고달프고 힘든 세월을 살아가는 나그네다. 부모님 삶을 돌아보면 그랬다. 한국전쟁을 겪으며 북한에서 사시다 남한으로 삶의 터전을 옮겨야 했다. 가족을 피난시켜 남한에서 재결합하는 아픔도 겪어야 했다. 또 전 재산을 북에 두고 왔으니 무일푼으로 가족 생계를 양어깨에 짊어지셔야 했다. 함경북도 청진에서 서울로 수학여행을 오셨을 정도의 생활 여유에서 한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피난민의 되셨으니 마음의 상처는 바다처럼 깊었으리라. 요즘 텔레비전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전쟁에서 먹을 것을 얻으려고 사람이 구름 떼처럼 몰리고 폭격으로 죽는 것을 보면 전쟁을 겪어보지 않은 세대지만 전쟁의 고통을 알 것 같다. 1950년 한국전쟁이 시작되었고 1953년 전쟁이 정전협정이 되었다. 하지만 전쟁이 남긴 홀로 남겨진 고아와 과부들의 생계 문제와 사회질서는 극심한 혼란이었다. 그 와중에 56년생 3대 독자를 낳고 2년을 병으로 고생하시다 생모는 하늘로 가셨으니 아버님 마음의 고통은 한이 되셨으리라 생각한다.
어부로 평생을 사셨던 아버님은 배가 출항하지 않은 날이면 방에 누워 노래를 자주 부르셨다. 가수 김정구가 부른 바다의 교향시 ‘어서 가자 가자 바다로 가자 출렁출렁 물결치는 명사십리 바닷가 안타까운 젊은 날의 로맨스를 찾아서 헤이’ 끝머리에 나오는 ‘헤이’에서는 늘 신이 나신 모습이 저절로 느껴질 정도로 음정을 높이셔서 부르셨다. 북한에서도 배를 운영하셨고 남한에서도 바다를 업으로 삼으셨기에 노래 가사에 추억을 떠오르시며 신바람 나지 않으셨을까 생각해 본다. 두고 온 고향 산천도 그리웠을 것이다. 같은 동해지만 북한에서 바다와 남한에서의 바다는 잡히는 어종도 다르다. 술을 드시지 않으셨기에 젊음을 전쟁터에 빼앗기셨던 한을 풀어내시기 위해 노래를 부르신 게 아닌가 싶다. 젊은 날의 로맨스는 어머니를 생각하며 부르시지 않았을까 추정해 본다. 함께 오래오래 사셔야 할 아내를 먼저 보냈으니 속마음을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하셨다. 그러니 노래로 혼자 울음을 삼켰다고 생각하니 철이 든 내 가슴도 아프다.
철이 들어 만난 새어머니는 아버지께서 잡수시지 않았던 술을 좋아하셨다. 술 마시는 게 여자에게 금기 중 하나로 생각했던 그 시절에 어머니는 신세대셨다. 춤도 잘 추셨다. 미 8군에서 좀 노셨다는 전언도 있다. 탱고, 블루스, 차차차 등을 능란하게 소화해 내셨다. 가끔 춤을 배우러 가신다고 외출하셨는데 돌이켜보면 춤을 추러 가신 것 같다. 활달하고 끼가 만발하셨던 분이 초라한 가정에 오셨으니 얼마나 마음 다스리기 힘이 드셨을까 그래도 끝까지 가정을 지켜주신 어머니께 감사드린다. 어머니의 노래는 설운도의 원점과 현철의 청춘을 돌려다오 이다. 원점으로 돌아가는 내 마음 그대는 몰라 청춘아 내 청춘아 어딜 갔느냐 가사를 곰곰이 씹어보면 어머니 인생이 녹아있다고 생각한다. 처녀로 가난한 자식 셋 있는 홀아비에게 결혼하셨다는 자체가 미스터리였다. 잘 놀던 좋은 물 버리고 어촌마을 산동네에 묻혀 사셨으니 답답함은 어디에라도 발산하셔야 했을 것 같다. 술을 마시고 춤을 추셨기에 오히려 견디는 힘을 얻지 않았을까 추정해 본다. 인간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춘다는 것은 자신의 인생을 목소리와 육체로 대변하는 행위예술이다. 가사에 녹여진 이야기는 자서전 대신 노래로 불러 지나간 삶의 보따리를 풀어내는 책 읽기와 같다. 어머니 삶이 그랬다.
난 안치환 가수가 불러 히트 친 내가 만일이라는 노래 가사 중 ‘엄마 품에 안긴 어린아이처럼’과 ‘오늘처럼 그대 함께 있음이 내겐 얼마나 큰 기쁨인지’ 이 노래 가사를 부르면 눈물이 절로 난다. 어머니라는 존재에 대한 그리움이 연상되고 품이 그립기 때문이다. 함께 있고 싶은 욕망이 뒤엉켜 엄마와 아내가 혼동되기도 한다. 원천적 그리움은 인간에게 엄마의 자궁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그리움이 복받쳐 노래를 부르다 보면 때로는 시인처럼 어느 경우엔 철학자처럼 심오한 경지에 이를 때도 있다. 노래가 대중가요라는 이름으로 인간에게 사랑받고 있는 이유 중 하나로 보인다.
노래를 부르고 나면 어두웠던 마음이 봄날 눈 녹듯 살며시 사라지는 느낌이 있다. 가사에 심취하면 때론 시인되어 고상함에 빠지기도 한다. 노래를 춤과 함께 몸부림치고 나면 가슴이 시원하게 뚫리는 정신적 치료 효과도 있다. 인간은 태어나면서 목청 높여 “으앙”노래 부르며 세상에 났다. 이유가 엄마 뱃속에서의 스트레스를 풀려는 자기 방어 노력 같다는 생각이 든다. 원시림에서 타잔이 “아 아 아” 소리 지르며 주변 동물과 교감하듯 노래로 마음을 다스리고 잠시 잊고 있었던 주변을 둘러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