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을 벼르던 쇼핑을 떠났다. 남들 휴가 떠났을 때 한가하게 쇼핑하겠다는 야심 찬 포부로 집을 떠났다. 용인지역을 벗어나 하남까지 가게 된 건 막내의 계획에 무조건으로 동의한 탓이다. 하지만 먼 곳에 원정 쇼핑가는 기분도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토요일 특별한 일이 없으니 마음을 비우고 가족 나들이 겸 외식도 즐기자는 생각에 쾌히 운전을 자처했다. 하남 스타필드이다. 작년 안성 스타필드를 다녀온 경험이 있어 대충 그림은 그려졌지만 궁금한 쇼핑이었다. 일찍 서둘러 오전에 쇼핑하고 점심은 장소를 벗어나 식사하고 다시 돌아와 오후 영화관람이다. 들뜬 아이 마음으로 9시가 되기 전 출발했다. 함께 떠나는 자동차 이동은 고속도로보다는 국도나 지방도가 좋다. 주변을 둘러보며 속도를 조절하며 눈으로 즐기는 차창 밖 눈요기로 대화를 하는 것도 가족을 한마음으로 묶어낸다.
“한때는 저곳에 다녀도 지금 삼성에 근무하는 것만큼이나 자부심이 있던 곳인데”
“그랬지요.”
거대한 빈터엔 잡초가 무성하고 공사를 하다만 각종 건설 자재들은 하늘에 별들이 뿌려져 보이듯 여기저기 처음부터 자기 자리인 양 버티고 있다. 옛 경방이 있던 곳이다. 정확히 표현하면 경성방직주식회사 1919년 김성수에 의해 설립된 우리 기업이다. 초대 사장이 박영효라면 더욱 놀랄 수밖에 없는 곳이다.
씁쓸한 마음을 뒤로하고 하남에 들어서자 성장하는 개발 도시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거대한 건물들 뻥뻥 뚫린 지하 도로, 과거의 혼잡한 모습은 제3한강교에 흘려보낸 과거의 노래처럼 사라지고 없다. 용인을 벗어나기 전 옛 경방 부지에서 시대가 변하고 패션도 변하고 사업도 영원하지 않음을 보았었기에 무덤덤할 수 있었지만 마음속으로는 놀라웠다. 하남에서 시작은 기다림부터였다. 나름 다른 사람들 휴가 기간에 여유를 가지고 쇼핑을 즐기려고 생각했다. 하지만 주차장 진입부터가 전쟁터다. 잘못 찾아온 건가 할 정도로 차량이 많이 대기 중이라 놀랐다. 개미 줄지어 먹이를 물고 들어가듯 차례차례 지하 동굴로 들어가 표시된 곳에 정확하게 주차하고 사진을 찍는다. 개미는 하지 않을 법한 행동을 사람은 한다. 혹여 못 찾고 헤맬까 걱정해서다. 이게 인간이 지혜롭고 현명해하는 행동인가 고민되는 순간이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말이 허사인듯하다.
웅장한 콘크리트 건물 안에 들어서자 다시 놀란다. 사람들이 휴가 장소를 바다나 산 대신 이곳으로 피서를 정한 것처럼 많았다. 주변을 둘러보아도 백화점 세일 기간도 아니다. 시대가 변한 것이다. 전통시장에 장바구니 들고 싱싱한 채소 찾던 시대가 아니라는 걸 실감한다. 소상공인들의 어려움을 이해할 수 있는 현장 체험이다. 건물 공간 중심을 차지하고 멋지게 빛나는 벤츠 차가 보인다. 차량을 손님들이 시승하는 모습을 보면서 다시금 입을 다물 수 없다. 역시 난 촌놈이다. 머릿속에 아직도 어떻게 억대 차를 이런 곳에서 살 수 있을까 고민하는 구세대 사람이다. 먹는 것 입는 것, 보는 것 각종 용품에 음악 장비까지 실로 대형 쇼핑몰이다. 또 놀란 부분이 있다. 애완견이라는 이름으로 데리고 다니는 개가 자녀와 움직이는 수만큼이나 많이 눈에 띈다. 요즘은 반려견이라고 부른다는 개다. 개 팔자 상팔자라는 말이 이렇게 변하는구나 싶다. 과거에 개가 더운 여름 길게 누워 잠자는 모습을 보고 상팔자라고 했다면 신세대 개들은 쇼핑몰에 아이들이 타야 할 유모차에 모시고 다니는 팔자가 상팔자라고 표현하고 싶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한다. 70년이면 강산이 7번 바뀔 세월이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 보면서도 현실이 너무나 빠르게 변하고 있다는 것에 두려움이 엄습한다. 점심 식사를 위해 쇼핑몰을 벗어나 미사리로 나갔다. 예전 낭만의 공간이요. 통기타 가수들의 요람이요.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의 대명사로 불리던 곳의 변화된 모습을 보고 싶었다. 역시 세월 앞에 장사 없다고 했다. 가게들은 문을 닫았고 걸으며 즐기는 무리는 별로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막내의 취향에 맞춰 들어간 신세대 간판이 달린 카페에 간단한 빵조각과 커피가게에 우리 말고 사람이 몰려있는 것에 시대의 변화를 다시금 느꼈다. 오후 1시 반 예약된 영화관람을 위해 다시 주차장으로 들어가면서 놀라움은 절정에 이르렀다. 줄지어 들어가는 정도를 넘어 명절에 병목현상이 나타난 고속도로처럼 혼잡이다. 정차를 반복하다 주차장 진입에 20분을 소요하고 목적을 이루었다. 피서지인가? 고개를 갸우뚱거릴 틈도 없이 영화관으로 달려갔다.
2025년 여름은 이렇게 시작되는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