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봄 글 쓰임 방에 지은 작가의 공지 내용을 보고 도전한 경기도교육청평생학습관 ‘나만의 책 만들기 프로젝트’ 1년을 결실하는 날이다. 출판기념회에 가족과 함께 참여했다. 잊을 수 없는 삶의 한 획이었다. 행복이라는 단어를 이럴 때 쓰는 단어인듯하다. 2025년 최고의 해였다. 나이를 먹으며 최고의 해라고 명명하는 해가 올해가 되고 다시 내년이 되길 기대한다. 욕심일 수도 있겠지만 아직은 욕심을 부릴 열정이 남아있다. 육체의 나이와 상관없이 정신이 살아있다면 글을 쓸 수 있기에 정년이 없이 욕심부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돌아가신 이어령 선생님께서는 평소에 컴퓨터 자판으로 글을 쓰셨다. 그러다 중병으로 손가락에 힘이 빠져 마우스의 더블 클릭이 어렵게 되시면서는 손으로 종이에 직접 마지막 순간까지 글을 쓰셨다고 한다. 작가가 된다는 것은 이런 것이 아닌가 싶다. 책이 판매되어 유명작가로 이름을 올리는 것과는 관계없는 일종의 사회적 책임이라고 본다.
“막내! 11월 27일 시간 어때?”
“왜”
“응 네가 선착순에서 성공해 준 나만의 책 만들기 출판기념식이 열려서 함께 갈 수 있나 물어보는 거야”
“그래 그럼 엄마는?”
“물어봐야지 시간이 어떤지”
“엄마가 못 가면 나라도 가야지 좋은 일이잖아” 막내의 시원한 대답에 동지가 생겨서 좋았다.
“여보 27일 시간 어때 오후 5시 나만의 책 출판기념식에 함께 갈 수 있어?”
“어디예요?”
“수원 경기도 교육청 평생학습관”
“가야지 막내는?”
“함께 가기로 했어요” 가족 동행이 성공이다. 정년 후 농업기술센터의 그린 대학교, 그린 대학원, 방송통신대 등 여러 수료식과 졸업식이 있었지만, 가족의 관심과 사랑은 처음이다.
나만의 책 만들기 톡 방에 문자가 떴다. 소감문을 발표해 달라는 문자다. 여기까지 따라온 것도 벅찬데 마지막 소감문까지 고마우면서도 심적 부담이 되었다. 그러나 거절하거나 아니요 말하지 못하는 성격 탓에 글 쓰는 것에 밤새 머리를 쥐어짰다. 막내는 서론이 너무 길다고 조언해 주었고 아내는 문맥을 짚어주었다. 역시 가족이 최고의 도우미다. A4용지에 잘 볼 수 있게 글자 포인트도 15로 했다. 검은색 표지의 보드에 프린트해 넣었다. 소감문을 들고 읽을 작정이었다.
학습관이 좁은 탓에 1층 윤슬 갤러리 장소가 내 상상 속 면적보다 적고 칸막이도 없었다. 꾸며 놓은 출판기념식을 위한 준비는 너무 깔끔하고 다양했고 멋졌다. 포토존까지 준비해 주어서 정말 작가가 된 기분이었고 스타가 된 느낌이었다. 일찍 도착해 시간 여유가 있어 차분하게 하나하나 읽어보고 사진까지 찍으며 호사를 누렸다. 70년을 살면서 처음 느껴보는 나를 위해 준비해 준 거대한 현수막과 책, 그리고 참석해 준 사람들 감사가 저절로 나오고 눈물이 나올 지경이었다. 소감문 시간이 되었다. 성이 김이라는 죄로 첫 번째로 발표자였다. 축사가 있으려면 탁자가 있고 축사 후 소감문이 자연스럽게 탁자에 놓고 읽으면 된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장소가 좁은 관계로 탁자가 없이 평생교육관장 축사가 끝났다. 소감문을 놓고 읽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이가 없으면 잇몸이라고 했다. 강의할 때처럼 자연스럽게 검은 보드를 한 손에 들고 슬쩍 훔쳐보며 소감문을 발표하는 데 성공했다.
“오늘 나만의 책 만들기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갖게 된 소감은
살아온 70년을 돌아보는 시간이어서 좋았습니다. 글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심이기에 행동이 바르게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억지로라도 글을 쓰려면 생각을 하게 되고 생각을 담아내려면 마음이 정화되어 좋았습니다. 좋은 마음은 곧 행동을 억제하는 능력이 있음도 깨달았습니다. 글을 쓰며 저의 뒷모습을 돌아보게 되고 공동체 속 제 모습을 반추하게 되어 고마웠습니다.”
함성과 박수에서 기쁨과 감사가 어우러져 행복이라는 단어가 마음 깊은 곳에서 용솟음쳤다. 또한 이제는 내 이름으로만 책을 내고픈 욕심도 생긴 자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