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라는 단어를 오랜만에 써본다. 요즘은 이메일이라는 전자 문서로 모든 소식과 알려주고 싶은 내용을 전달하는 시대가 되었다. 손 글씨로 글자 하나하나에 온정성을 쏟아 내용을 전달하려던 편지 시대가 그립다. 특별히 여자친구나 남자친구에게 관심을 보이고 싶어 쓰던 연애편지는 손글씨 편지의 묘미 중 단연 최고였다. 대신 편지도 써주고 성사가 잘되면 빵도 얻어먹었던 기억을 떠올려보면 마치 안갯속에서 아침 햇살이 여명의 아침을 깨우는 모습처럼 힘이 솟아난다. 청춘은 가을 마른 가지 낙엽이 아니라 봄에 물오른 가지처럼 탱탱해 탱탱볼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천진난만함이 있었다. 전자 문서나 문자로 전달하는 인터넷 시대 연애편지는 어떤 맛이 있는지 궁금하다.
편지는 마음을 전달하는 무기다. 가까이 있다면 소리로 할 수 있는 말로 마음을 전달할 수 있다. 멀리 외지에 있다면 마음을 전달할 방법은 종이로 써서 글을 이용해야 한다. 종이에 마음을 담고 글자에는 조상님께 제사를 올리는 심정으로 성의를 표해야 한다. 편지는 종이라 시간이 지나면 훼손되지만 전달된 마음은 일생을 가슴에 품고 살아갈 수 있는 증표가 될 수 있다.
아내와 난 6년 연애 끝에 결혼에 성공했다. 대학을 들어가기 전 강원도 동해 태생이지만 경기도 용인에서 직장을 다니게 된 계기로 아내를 만나게 되었고 평생 함께 살게 되었다. 1년 정도 현장에서 만났고 나머지 시간은 서로 떨어져 지냈다. 우리의 사랑을 이어준 끈은 편지였다. 고향으로 내려와 시험을 준비하고 대학을 다니는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편지를 썼다. 기억에는 그렇다. 일기를 쓴다고 생각하고 매일 편지를 썼다. 보낸 것은 며칠 모아서 전달되었을지 모르지만 쓰는 행위는 매일 마음을 담았다. 멀리 있으면 거리만큼 마음도 멀어지는 게 인간 본성이라 이것을 깨뜨리기 위해 매일 사랑을 전하려고 애를 썼다. 애쓰고 노력한 결과 좋은 사람을 만나 같은 길을 걸어갈 수 있어 감사하다. 하지만 아쉬움도 있다. 그렇게 애쓰고 정성껏 보내고 받았던 우리들의 추억 편지는 단칸방 살 때 비를 맞아 훼손되고 다툼이 있어 찢어버리면서 마음속에만 남아있다.
마음이 외로웠던 청년 시절 편지 쓰기는 또 하나의 탈출구였다. 아내와의 편지 외에도 여러 친구에게 편지 쓰기를 좋아했었다. 그중 교회 친구였던 여자 J가 있었다. J는 고등학교 졸업 후 취업해 서울에서 간호사로 일하고 있었다. 가끔 소식을 주고받는 정도였다. 어느 날 아내의 편지와 친구 J의 편지 두 통을 한 날같이 보낸 적이 있었다. 그런데 아내가 평소와 다르게 편지의 답장이 없었다.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바빠서 그렇겠거니 하고 넘어갔다. 요즘 같으면 즉시 핸드폰으로 확인하겠지만 그 시절은 기다리는 방법밖에는 별도리가 없었다. “인내가 쓰다. 하지만 그 열매는 달다.”라는 문구를 좋아하고 책상 앞에 붙여두고 좌우명으로 삼고 있었던 난 더욱 버티기를 잘했고 기다려도 자기 위안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기다리던 아내의 편지는 오지 않고 친구 J의 편지가 먼저 왔다.
‘동일아! 너 편지 잘못 보냈어. 여자친구가 오해할지 모르겠다 야’
헉 편지가 봉투 주소가 서로 바뀐 것이다. 아내의 마음속에 한동안 찬 바람이 불었다. 그러나 뜨거운 우리의 사랑을 막지는 못했고 진심을 알아준 아내가 고마웠다. 지금도 정신없이 여러 가지 활동과 강의를 하다 보면 엉뚱한 일이 많이 벌어지는데 그때마다 난 옛날 편지 사건이 생각나 혼자 피식 웃는다.
글을 쓰다 보면 종종 왜 쓰고 있는지 자신에게 질문할 때가 있다. 바쁘고 돈 되는 일도 아닐진대 뭘 그리 열심히 하려는지 궁금할 때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답이 있다면 내 마음을 담고 싶은 욕구가 샘솟고 있다는 증표다. 그리고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공감을 얻을 공간으로 화면을 사용하고 도구로 글을 사용하고 있을 뿐이다. 시대에 묻혀 종이에 펜으로 쓰던 편지 시대는 막을 내렸다. 하지만 잃어버리고 있던 종이에 마음을 전달하는 사랑의 편지를 이 가을에 꼭 써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