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2막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승승장구하던 월급 생활을 마감하고 2005년 어린 시절부터 꿈꾸어온 사회복지사업을 위해 사업의 길로 나섰다. 하지만 야무진 꿈은 하늘에 빛나는 별처럼 흩어져버렸다. 2014년 비바람에 비닐 날리듯 허무하게 난 사업을 접고 가정으로 외롭게 돌아왔다. 감사하게도 가족은 위로의 말로 퇴로가 없어 방황하는 가장을 따스한 봄날의 햇볕같이 맞아주었다. 말없이 몇 개월을 길 잃은 어린 사슴처럼 연약해진 마음에 상처를 치유하며 방에 틀어박혀 살았다. 어떻게 하면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을까 고민했다.
돌아온 답은 너무도 단순했다. 주변에서 많이 들었던 ‘할 일이 없으면 농사나 지어 볼까?’였다. 듣기는 많이 들어 알고 있지만 막상 그 상황이 내 것이 되니 간단한 게 아니었다.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접한 것이 바다이다. 고향이 강원도 동해다. 오징어 명태, 고등어 삼치 임연수는 알지만, 농사는 농자도 모른다.
백수의 장점은 시간이 내 편이라는 것이었다. 우선 ‘알아야 면장이라도 하지’ 말에 답을 내려면 농사를 배워야 했다. 난 용인농업기술센터에 초보 농 교육에 도전했다. 그린 대학이라 이름 붙여진 귀농, 귀촌 프로그램이었다. 그래 이참에 귀농이라도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출석을 열심히 했다. 그러나 용어부터 새롭고 펜과 입으로 먹고살았던 육신이 농사일에 적응되지 않았다. 힘으로 하려니 모든 게 고통이었다. 심지어 작물을 심어놓은 실습장에 고추 방아다리 제거를 과제로 받았는데 설명 들었을 때 교육장에서 분명히 끄덕거렸었는데 현장에 가보니 알 수가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알 수가 없어 강사에게 전화하는 촌극까지 벌어졌었다. 그러나 세월이 약이라고 누가 말했던가 조금씩 농사일을 알아가는 게 재미가 있었고 지인의 도움으로 농사할 터도 아주 저렴하게 빌렸다. 제일 초보 농이 만만하게 농사를 경험해 볼 수 있는 게 고구마라고 해 우리 부부는 고구마를 심었고 수확의 기쁨도 맛보았다. 고구마를 열매로 얻게 되면서 난 깨달았다. 어린 시절 꿈꾸었던 사회복지사업을 돈이 없어도 가능하다는 것을 고구마로 신세 진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또 어려운 이웃에게 고구마로 나누었다. 진심 어린 작은 나눔이 오히려 형식 없이 사랑을 전할 수 있어 감사했다.
하지만 아쉬움은 귀농, 귀촌을 준비하려면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과 사업 실패를 두 번 겪지 않으려면 농업도 관리를 잘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2024년 컴퓨터에서 귀농, 귀촌 프로그램을 찾다가 발견한 것이 그린 대로 사이트였다. 멘토라는 사람과 대면하며 상담도 가능하고 현장도 방문할 수 있는 귀농 닥터 사업이었다.
컴퓨터에 능숙하지 않아 버벅거리며 멘티로 신청했다.
“여보세요. 그린 대로 귀농 닥터 프로그램에서 멘티 신청하신 김동일 선생님 되시죠?”
“네 제가 김동일입니다.”
“반갑습니다. 저는 귀농 닥터로 활동 중인 멘토 김병용입니다.”
“네 감사합니다. 제가 너무 초보라서 신청은 했는데 어떻게 해야 하죠?”
“네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진행하는 대로 잘 따라와 주시면 좋은 결과가 있을 거예요.”
“선생님 시간이 언제 언제 되실까요?”
이렇게 난 원하던 교육과 상담 그리고 현장을 방문하며 질문하고 답을 찾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멘토인 강사는 내게 미리 준비한 각종 농사와 관련된 책자를 준비해 친절하게 설명해 주셨다. 귀농할 때 준비할 것, 가족의 동의 문제의 중요성 지역과 주민과의 갈등 문제 등 그리고 귀농, 귀촌 시 집을 어떻게 매입할 것인가 임대로 살 것인가 등 구체적인 문제를 서로 논의할 수 있어 좋았다. 더 좋았던 것은 멘토링 과정에는 시간과 내용에 구애받지 않고 궁금한 것을 구체적으로 질문하고 선행으로 살아본 경험으로 대답하는 것이라 너무 현실감이 있었다. 그리고 이론으로 알고 있는 문제를 현장에서 직접 작물을 심어 보고 만져보고 맛을 보며 질의하고 답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멘티, 멘토를 떠나 친구처럼 관계 설정하며 아무 때라도 어려운 문제에 봉착하면 질문하고 답을 얻을 수 있는 창구를 마련해 놓았다는 안도감에 귀농, 귀촌하려는 분들에게 강력히 추천하고 싶은 귀농 닥터 제도이다. 시간 시간이 귀중한 시간이었고 나도 언제 멘토가 되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귀농, 귀촌 후배들에게 좋은 멘토가 되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2025년 우연히 농촌이라는 단어를 검색하다 농촌 재생이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농촌 재생? 도시재생 대학 프로그램을 이수한 경험이 있는 터라 관심이 갔다. 농업에 경험이 적고 농업으로 수입원을 삼지 않고도 농촌에 도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도전했다. 경기도 농촌 재생활동가 교육 기초과정을 마치고 심화 과정도 무사히 마쳤다. 운 좋게 우리 팀은 활동가로서 경험해 볼 수 있는 지원금도 받아 농촌 재생활동가를 고민해 보는 시간도 가질 수 있었다. 농촌 재생은 농촌 공간 재배치로 매우 어려운 사업이다. 주민의 동의가 조건부이기에 활동가의 영역은 무한대라고 해야 옳다. 무한대는 가능과 불가능을 동시에 갖는 참 묘한 부호이다. 할 수 있는 능력껏 해보자는 생각에 농촌 재생 사업에서 우린 농촌에 모자라는 일자리를 장애인에게서 찾았다. 장애인은 돈을 벌고 일손이 필요한 농가는 일 처리를 하며 친분을 쌓고 대화를 할 수 있는 창구를 만들자는 작전이었다. 한국 장애인 농축산협회에 협조를 구하고 현장은 지원금 규모에 맞춰 3 가구로 결정했다. 제일 먼저 멘토링받았던 아로니아 행복연수원으로 전화했다. 멘티를 받았던 초보 농부가 농촌에 희망을 가져다줄 수 있는 농촌 재생활동가로 첫발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흔쾌히 농장을 내주신 김 사장님 덕분에 과제는 쉽게 시작되었다.
“안녕하세요. 여기는 아로니아 농장이고 여러분을 안전하게 작업하게 지도할 김동일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아로니아 열매를 한 손에 잡고 따서 봉지에 넣으시면 됩니다.”
“자 봉지 하나씩 받으시고 익었다고 생각되는 것 따서 넣으시면 됩니다. 더운 날씨입니다. 무리하지는 마시고 힘들면 언제라도 쉬고 천천히 하세요.” 우리는 한 몸처럼 즐겁게 아로니아를 수확했고 김 사장님은 시원한 수박과 참외로 기쁨과 감사가 넘치게 했다. 1년 전 아무것도 모르고 멘티 신청으로 친분을 갖게 된 행복 아로니아 농장에 이렇게 빨리 다시 찾아 이번에는 내가 장애인과 일손이 필요한 농가를 연결하는 멘토 역할을 했다. 난 어부의 아들로 30여 년을 광업과 토목업으로 농사와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경기도 귀농, 귀촌 프로그램에서 연결된 귀농 닥터의 도움과 배움에 열정으로 합치된 농촌 재생활동가의 실천 경험으로 한결 농촌에 가까이 다가왔다. 농촌을 변화시키고 농촌에 인구증가를 위해 농사를 짓고 그들과 함께함도 중요하다. 하지만 모두가 그럴 수도 없고 그럴 필요는 없다. 농업을 주업으로 삼지 않더라도 농촌을 위해 헌신하고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활동가로서 일손이라도 거들어주면 된다. 중요한 것은 나 한 사람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때 농촌은 살기 좋은 곳으로 변화되고 과거의 모습으로 재탄생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