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둥이와 나의 초등학교 수학여행에서

by 김동일

여행이라고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추억이 학창 시절 수학여행이다. 수학여행은 학습에 연장이기에 역사 유적지가 대부분이다. 신라의 유적이 있는 경주나 백제의 유적지인 부여나 공주가 대상지다. 선조들의 삶의 지혜와 뛰어난 기능과 예술적 가치를 알고 가치관 정립에 도움이 되길 바라서이다. 수학여행 하면 초등학교 시절 손꼽아 기다렸던 기억이 있다. 수학여행 덕분에 버스도 처음 타 보았다. 수학여행지는 남들이 가는 유적지가 아니었다. 장소가 무슨 상관이겠는가 집을 벗어나 친구들과 어울려 다닐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이었다.

한참을 졸다가 자고를 반복했다. 선생님의 기상 소리에 화들짝 잠에서 깨어나 버스 창밖을 보았다. 흙물이 있고 강처럼 생각되는 넓은 호수가 눈에 들어왔다. 주변은 우리 동네 산보다 낮은 산이 있는 게 전부다. ‘충청남도 서산에 있는 아산만이다.’ 목적지에 도착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서산만 간척지 개발하는 곳이다. 지금 표현으로 보면 선진지견학을 온 것이다.

“여기가 서해다. 일명 ‘황해’라 부르기도 한다. 그리고 보이는 물은 흙으로 메워질 거야”

“지금은 바다이지만 들판으로 변해서 쌀을 생산하게 될 것이다.”

담임선생님께서는 완장 찬 군인처럼 힘주어 말씀하셨다.

“어라 바다라고?”

아무리 보아도 흙물이다. 그리고 동해의 푸르름은 없다. 바다일 리가 없다. 뭔가 거짓말이 아니면 잘 못 들은 것이다. 바다는 파란색이 정상 아닌가?

어린 시절 당황했던 추억 속 궁금증은 나이를 먹고 학습이 되면서 이해되었다. 그리고 서해를 왜 황해(黃海)라고도 하는지를 알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답을 찾지 못한 건 왜 유적지가 아닌 간척지에 아이들을 데리고 갔을까? 이다. 선생님께서 좀 더 자세히 알려주셨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수학여행이었다.

세월이 흘러 막내가 수학여행을 간다. 막내딸과 나는 43년 차이다. 수학여행에서 1세대와 2세대인 막내와 변화된 게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우선 막내는 버스가 학교 앞 큰길에 대기를 하고 있다. 우리는 차가 학교로 오는 길이 없어 우리가 큰길로 내려갔었다. 그리고 우리는 부모가 오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부모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아이가 타고 있는 버스에 다가가 손을 흔들고 있다. 세상이 변한 것이다. 막내가 수학여행 가는 곳은 경주다. 수학여행 코스는 43년 전이나 장소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수학 여행하면 역시 유적지다. 물론 우리는 전혀 예상 밖의 간척지였지만, 그때도 그렇고 큰 녀석 때도 역사 탐방에는 변화가 없었다. 버스가 눈앞에서 사라질 때까지 잘 다녀오라며 손을 흔들어 막내의 안전하게 다녀오길 기원했다.

“뭐라고 선생님이 아이들을 집에 가라고 했다고?”

“아이들이 말을 듣지 않아 엄마에게 전화해 데리러 오라고 했다네요.” 큰 녀석이 근심 어린 목소리의 전화다.

“선생님이 아이들 군기 잡기 위해 하는 소리지 걱정하지 마라”

대화를 끝내고도 아이들의 모습이 선하게 보여 마음이 무거웠다. 나의 예상대로 별문제 없이 수학여행은 그대로 진행되었다. 그러나 수학여행에서 받은 상처는 각자 다를 것이다. 막내는 초등학교 때 본인 핸드폰이 없었다. 선생님의 핸드폰으로 언니에게 전화했을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찡하다. 그때 우리는 막내가 집에 없으니 자유인이다 싶어 강원도 산에 갔었다. 이런 사태를 누가 짐작했으랴.

“그때 너희 선생님 왜 그러셨니? 너희가 무엇을 잘못한 거야?”

“응 기억은 잘 나지 않는데 아마 방을 마음대로 바꿔서였을걸~~”10여 년 지난 기억을 더듬어 막내가 대답한다.

“야 아~~ 잘 기억해 봐 그때 애들의 반응은 어땠어? 나 수학여행 글을 쓰고 있다. 도와줘.”

거울 앞에 있던 막내 돌아서면서 뭔가 기억난 듯 말한다.

“근데 애들이 울었던 것 같은데 왜 울었지?”

“그거야 엄마에게 전화하라고 했으니, 엄마에게 선생님 말씀 듣지 않았다는 잔소리와 수학여행 못하고 올까 봐 그렇지 않았을까?”

“그런데 너는 안 울었니?”

“응”

“ 대단하다. 너같이 멘탈이 강하면 모를까 보통은 울지”

“그래?”

막내는 무덤덤하게 말한다. 저 정도면 트라우마가 남아있지 않다는 증거다.

“야 그래도 너희들 그때는 울고불고했어도 평생 우려먹을 추억거리는 생긴 거네”

“그렇긴 하지” 우린 웃으며 수학여행 이야기를 마쳤었다.

여행이란 추억을 만드는 과정이다. 아쉬움도 남고, 계획과 다르게 문제들이 발생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결과는 기억 속에 추억으로 아름답게 장식될 수도 있고 트라우마로 평생 자신을 옭아맬 수도 있다. 결과의 몫은 오직 자신이 정하는 것이다. 여행은 너무 거창할 필요가 없어 보인다. 여행이 노동이 되면 괴롭고 후회스럽게 된다. 특별히 가족여행에서 엄마의 습관적 챙김은 노동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서로 배려하며 즐기는 여행이 좋은 여행이라 생각한다. 수학여행은 사춘기 시절 가족보다 소중하던, 친구들과 남아있는 학창 시절의 기억이다. 오늘은 기억 저편에서 몽실몽실 떠오르는 수학여행의 추억에 입가의 미소가 절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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