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
두려움은 바이러스 같다. 전염성이 엄청나다. 아직 어린 나로서는 두려움이란 감정은 그 자체로 두렵다. 한 번 시작하면 끝을 모르고 퍼져나간다. 시작은 미래고 다음은 과거고 끝은 현재이다. 불안이라는 돌연변이는 삽시간에 수많은 생각들을 매개로 자신을 복제한다. 하나의 생각을 완전히 망가트리고 나서 그것의 영양분으로 복제품을 만든다. 썩어 문드러진 생각이 비로소 고름처럼 터졌을 때 복제품들은 재빠르게 다른 생각들에 달라붙어 같은 과정을 반복한다. 다행히도 불안에는 백신이 있다. 자존감이라는 면역이 있는 사람들은 문제없이 금방 완치된다. 그렇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도 극복할 방법은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저 현재를 열심히 살면 된다. 굳이 어떤 성과가 있어야 되는 것도 아니다. 내가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느낌만 나면 된다. 그럼 죽을 것 같이 뛰던 심장도 목적지를 모르는 뜀박질에 맞춰 속도를 늦춘다. 하지만 백신을 맞지 못한 사람들은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병의 증상이 심화된다. 과거에 대한 두려움은 중증이다. 미래는 바꿀 수 있다는 일말의 희망이라도 존재하지만 과거는 그럴 수 없다. 그저 전두엽에 장기적으로 소장된 흐릿한 영상들을 계속 들여다보면서 그리움과 분노 또는 기쁨과 슬픔을 한꺼번에 반복적으로 느낀다. 구린 화질로 재생되는 영상들은 대부분 아름답게 보인다. 그러다 보면 남는 것은 오직 후회밖에 없다. “그냥 ~해볼걸.” 또는 “아, ~하지 말걸” 같은, 실행하지 못할 계획을 머릿속으로 세운다. 그러다 보면 현실보다는 꿈이 편하게 느껴진다. 옛날 영화같이 낭만 있고 찬란한 것처럼 보이는 나의 그리운 영상들이 한낱 꿈처럼 몽롱해진다. 그럼 그 몽환적인 영상들 속에 존재할 수 있는 꿈을 꾸거나 상상을 한다. 거기서는 내 마음대로 세상이 흘러간다. 내가 실수를 했으면 시간을 돌려 지워버리면 끝이고, 못했던 말이 있으면 영상을 집어넣어 편집하면 된다. 더 이상의 후회거리를 만들기 싫어진다. 때문에 나는 주로 잠을 많이 잤던 거 같다. 나아질 것이 없는 현실보다는 행복한 꿈에 머물고 싶은 정신 나간 생각을 한다. 중증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단계에 머물거나 불안보다 몇 배는 더 많은 양의 백신을 투여해 극복한다(매우 드물겠지만). 그러나 나와 같은 사람들은 병세가 깊어진다. 현재에 대한 두려움이다. 사망선고이다. 그것과 다름없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무력하다. 미래를 바꿀 의지도, 과거를 돌아볼 힘도 남아있지 않다. 나는 정체되었다. 그래서 현재가 죽도록 두렵다. 시간이 흘러간다는 사실이 두려워진다. 봄 다음에 여름이 오고, 여름 다음에 가을이 오고, 가을 다음엔 겨울이 오고 다시 빌어먹을 봄이 오는 사실과 그게 너무나도 뚜렷한 대한민국의 온대성 기후, 그리고 착실히 넘어가는 달력이 밉다. 그다음은 지구의 자전을 탓하고, 그러다 보면 지구의 공전을 탓하고… 비난은 우주로 향하다 결국 나에게로 돌아온다. 이때부터는 자기혐오의 시작이다. 급격한 자존심과 자신감의 하향세를 그린다. 무력한 나를 미워한다. 두려운 나를 미워한다. 두려운 나를 미워하는 나를 미워하고, 무력한 나를 미워하는 내가 나를 미워하고, 두려운 나를 탓하는 무력한 나를 미워하는 내가 또다시 나를 미워한다. 내가 미워 보이니 남들도 미워 보인다. 그러니 신경이 예민해지고 성격은 까칠해지고 말은 곱게 나가질 못한다. 사망이다. 검은 화면 속에서 규칙적으로 요란히 뛰어다니던 그림은 이제 곧은 직선을 그리며 이명 같은 나지막한 비명을 내지른다. 사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