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 전, 둘째 출산하고 받은 암선고 후 가장 슬픈 순간을 꼽자면.. 기억한다. 남편에게 유언하던 순간을. 가장 맑은 정신에 가장 괜찮은 시기에 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암선고 이틀 후 남편에게 커피숍에서 유언했었다. ‘오빠는 아이를 혼자 키울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니, 아이 잘 키워줄 수 있는 여자와 꼭 재혼해야 한다고.’ 이것이 내 유언이었다. 당시,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태어난 지 백일도 안 된 둘째를 보는 것조차.
그리고 두 번째 암선고 이후 가장 슬펐던 순간은, 수술을 앞두고 막내딸이 ‘왜 내 엄마만 아픈 거야?’라고 묻던 순간이었다. 직접 신께 묻고 싶었던 말을 딸이 대신했을 때, 난 담담한 척 대답했었다. ‘하나님께서 엄마에게 모두 허락하시지는 않으셨나 봐~ 건강을 노력하라는 숙제를 주셨나 봐.’ 이렇게 대답을 하고 난 아직도 이 질문에 답을 찾고 있다. 라이프니츠의 말처럼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다는 것을 받아들였지만, 어쩌면 이 이유의 답은 삶이 끝나는 즈음에 알지도 모르겠다.
두 번의 암 수술 후, 나에게 남은 건 뭘까? 가장 큰 변화는 위가 없어진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제아무리 좋은 걸 먹어도 온전히 흡수하지 못한다. 위에서 흡수하는 비타민B12의 경우는 흡수하지 못하여 말초신경장애를 평생 약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
그러나 위가 없어지고 남은 건.. 있었다. 세상에 공짜가 없듯이 두 가지의 변화가 있었다. 이 변화가 그저 연륜에 따른 것일지도 모르겠으나, 키르케고르가 말했듯 ’ 죽음은 누구에게나 온다는 것을 아는 것과, 실존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전혀 다른 것’이라는 걸 증명하듯 나의 변화는 암이라는 체험을 통해 들어왔다.
또,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는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의 말처럼 암은 나를 강하게 만들었다. 이 강화는 몇 천권의 책으로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감히 말하고 싶다.
첫 번째 변화.
두 번의 암선고 모두, 처음에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닐 거야.. 아닐 거야..‘ 부정을 했다. 그러다 분노하고, 분노에 지쳐 타협하고, 타협하면 우울해지고, 결국 어쩔 수 없이 수용을 하는 단계를 거쳤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Elisabeth Kubler-Ross)가 말하는 5단계 죽음 수용 단계를 비슷하게나마 거쳐 보았다.
그랬더니 이제는 그 어떤 결과가 와도 부정하지 않는다. 웬만해서는 화도 나지 않는다. 그냥 받아들일 뿐이다. 부정한들 어차피 변하는 것도 없고, 화를 낸다 한들 나만 지칠 뿐, 속 시끄러운 타협도, 어두운 우울의 터널도, 다시 반복하고 싶지가 않은 것이다. 어쩌면, 두 번이나 무한 반복해 봐서 또다시 했다가는 학습될 것 같은 무서움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그보다 가장 넓은 이유는 하늘의 뜻을, 우주의 조화를 한낱 인간이 거스를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임’ 그 자체로 배운 것이다.
이런 나에게 젖어들듯 일어나는 생각이 있었다. 덤으로 사는 인생이 좀 더 의미 있는 것이 좋지 않을까? 이 생각은 ‘나의 쓰임’에서 시작하였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그냥 죽기 아까워서 더 쓰이고 죽는 게 낫다는 심보였을지 모른다. 내가 쓸모 있다는 것은 나의 가치를 증명하는 듯하기도 했으니까.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누군가를, 혹은 주변을, 혹은 어려운 이들에게 보탬이 되거나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것에 대한 기쁨을 작게나마 맛보기 시작했다. 창피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난 한 번도 누굴 위해 살아보고 싶은 생각을 한 적이 없다. 이런 생각으로 살기도 했다. ‘누가 나를 이용해 먹으면 어떡하지?’ 그러다 생각의 흐름이 옆으로 흘렀다. ‘나를 좀 이용하면 어때?’로. 그리고, 여기에 더해지는, 이상한 욕심이 생겼다. 타인을 위한 삶도 살아보고 싶다는 소망이 생긴 것이다.
난 태생이 개인주의인 줄 알았던 사람이다. 그러던 내가 어찌 이런 기특한 생각을 했을까? 왜 그간 이런 생각을 못했을까 되짚어 보았다. 그건 바로 열등감이었다. 항상 나를 채우려 했던 열정. 이건 스스로 부족하다고 느끼는 열등감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이 열등감을 아들러(Alfred Adler)는 단순히 부정적인 감정으로 보지 않고 오히려 성장과 발전의 출발점이며, 사람이 더 나은 존재가 되기 위한 내적 동력이라고 했다. 맞았다. 이 열등감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삶의 방향은 전혀 달라지는 것이었다.
열등감을 외면하는 사람은 자신의 부족함을 감추기 위해 타인보다 우월해지려 하고, 경쟁과 비교 속에서 자신을 증명하려 한다. 이것은 자신이 인정받고자 하는 ‘우월감 추구’로, 겉으로는 자신감처럼 보이지만 그 내면에는 깊은 불안과 고립이 자리한다. 고백컨데, 지난날 내가 느꼈던 우월감은 불안과 고립 그 어느 중간쯤이었다는 걸 알아버렸다. 과거의 나를 현재의 나에게 들킨 것처럼.
반면 자신의 열등감을 인정한 사람은 그것을 바탕으로 사회 속에서 유용한 존재가 되려 한다. 열등감을 원동력 삼아 성공한 축구선수 박지성을 비롯하여 오프라윈프리, 스티브잡스 그리고 알리바바의 창립자인 잭 마와 같이 세계적인 기업인을 포함하고도 이에 해당하는 인물들이 꽤나 많다.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삶뿐만 아니라 주변인들의 삶 또한 함께 빛내고 있을 숨은 영웅들은 진정한 승부사로서 타인을 이해하고 협력하며, 함께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려 하는 것이다.
이걸 몰랐던 걸까? 모든 사람은 자신의 지위를 떠나 다양한 계층의 사람을 만난다. 때로는 그들을 부러워하기도 하고 때로는 그들에게 굽신거리기도 하고 때로는 그들 때문에 비참해지기도 한다. 나 역시 그랬다. 때로는 준거집단 안에서 시기 질투를 하며 누군가를 부러워한 적도 있었다. 그래서 자세히 보았다. 가까이 보았다. 그 부러움의 대상이 가지고 있는 것은 한낱 상황이었고 그들 역시 속세에 있는 사람이었다. 그저 자연이 품어주는 먼지에 불과한, 나와 같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재밌는 건, 받았다고 느낀 감정들은 그들이 준 것이 아니라는 아니라 내 안에서 스스로 만들어낸 ‘환상’이었다.
나의 위(stomach)가 떠나며 알려주고 갔다. 나는 부족하지만 그럼에도, 타인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깨달음은 ‘이제는 내 위(up)에 두고 부러워할 대상이 없다’가 되었다.
그렇게 나는 위(stomach)도 없지만, 위(up)도 없는 여자가 되어 선한 영향을 타인에게 미치는 삶으로 살아보려 한다.
두 번째 변화.
첫 번째 암 수술 후 항암을 하던 시절이었다. XS사이즈가 컸을 뿐 아니라 바지를 입기 위해 발을 올릴 힘조차 없던 때에 구강기인 딸이 둘이나 있었다. 그 시기는 아이가 더러운 것을 먹거나 빠는 것을 우려해 엄마들이 소독에 신경 쓰며 아이에게 한 시도 눈을 뗄 수 없는 시기이다. 당시 항암으로 누워있는데 아이가 먼지 가득한 소품을 빨기 시작했다. 원래의 나였다면 빛의 속도로 달려갔을 테지만, 나는 그저 눈을 감을 뿐이었다. 일어나 그것을 아이에게 빼앗을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었다. 아마 이때부터였을 거다.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내가 할 수 없는 것’의 분간 능력이 빨라진 것이.
아무도 모르는 아픔을 갖고 산다는 것, 매 번의 불편을 갖고 산다는 것은 조금 빠른 ‘인지 처리 속도’가 생긴다는 의미이다. 남들과 아주 조금 다른 삶을 산다는 것은 받아들임, 그대로의 인정을 하는 것이다. 매번 내가 외친다 한들 그 누구의 관심과 주의도 끌지 못할 뿐, 혼자 만의 속 시끄러움은 스스로를 지치게 하고 노화를 재촉할 뿐이었다.
이런 아픔을 가진 사람들은 인지 처리 속도만 빠른 것이 아니다. 아픈 이들에게는 특별한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예민성이다. 사람이 아프면 극도로 예민해지기에 진심을 분별하는 능력이 상당하여 그 능력이 거의 신 급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니, 주변 아픈 이에게 회복하라는 말대신 자신이 할 수 있는 마음의 행동 하나를 보여주면 어떨까 싶다. 가끔은 진심 있는 무언의 동행을 따듯한 언행으로 느끼기도 하여 그것을 기반으로 일어나기도 한다. 마음의 치유는 사람만이 줄 수 있으며, 가까이에 단 한 사람만 있어도 그 힘은 실로 엄청난 것이다. 또 그것이 한 사람의 인생의 흐름을 바꿀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 복은 부메랑이 되어 반드시 자신에게 돌아올 것이다.
예민하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데이비드 흄(David Hume)은 그의 저서 [도덕 원리에 관한 탐구]에서 ‘감정의 예민성(delicacy of sentiment)’을 중요한 미덕으로 여기며 감정에 예민한 사람이 더 깊이 있는 미적·도덕적 판단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갖은 자에게는 힘든 일이요, 못 갖은 자에게는 부러울 뿐이다. 이 예민성은 잘 꺼지지 않고 늘 삶과 함께 하니 자신에게는 무거운 짐이나 마찬가지이다.
이런 예민함은 타고 나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들도 많다. 예민하지 않던 사람도 삶에서 반복이라는 것을 하다 보면 예민성에 가까이 갈 수 있다. 수많은 불편과 아픔을 감당하다 보면 ‘아~ 내가 아프겠구나’와 같은 느낌을 미리 알아차리곤 한다. 바로 이것이 핵심이다. 반복은 의식을 빨리 불러오고 예민성은 그것을 알아차리는 능력이 뛰어나다. 삶 속에서 감정 역시 마찬가지다. 감정의 되풀이를 거치다 보면 지금의 감정을 알아차릴 수 있다. ‘내가 화가 났구나’와 같은. 이뿐만이 아니다. 내가 어떤 기분인지, 내가 어떤 상황인지도 알 수 있다. 이 것을 그냥 인지하기만 해도 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고 자신에게서 한 발 떨어져 볼 수 있게 된다. 지금 내가 기분이 좋구나, 들떠 있구나, 내가 지금 뭔가 심리가 꼬여 있구나, 내가 지금 지쳤구나 등등..
여기서, 중요한 것은 관점이다. 자신의 삶의 방향에 관점을 가져야 한다. 이 관점은 나의 의식 혹은 나를 만드는 가치관에 중점을 두어야 멈출 수 있다. 가치관 자립을 위해 책을 보며 공부하면 좋겠지만 굳이 그럴 필요까지 없다. 각자가 살고 싶은 방향을 계속, 지속적으로 생각하기만 하면 된다. 그럼 이런 생각이 든다. ‘이것도 과정일 거야. 내가 좀 힘들겠네. 아휴~ 고생 좀 하자’ 또 계속 생각하다 보면 이런 생각에 닿게 된다. ‘이 또한 지나가겠지..’ 이렇게 나를 한 발 떨어져 볼 수 있는 관망의 자세를 경험하게 된다.
나는 아픔의 대가를 주고 배웠다. ‘나’를 관망하는 자세. 어느 철학자의 말처럼 인생의 진정한 행복은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이라 하지 않았던가. 그런 의미에서 ‘진정한 나’를 즐기는 방법을 조금 배운 듯하다. 나를 안정시키는 법, 나를 놀리는 법, 나를 흥하게 하는 법. 물론 아직 익숙하지 않다. 그저 한 발 떨어져 볼 뿐이다. 그렇게 점차 나에게 다가가고 있다. 스스로 자신을 컨트롤하는 사용설명서 정도를 이제 겨우 읽은 셈이다. 이것은 나를 떨어뜨려 볼 수 있는 행복이며, 나를 멈출 수 있는 원동력이며, 나의 평안을 찾게 할 수 있는 힘이리라~
위가 없다는 것, 건강을 노력해야 한다는 것, 이건 나의 몫이다. 각자의 몫을 감당하고 산다는 것은 누구와 비교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이다. 나는 ‘나의 몫’을 감당하며 ‘나의 삶’을 살아갈 것이다. 나의 속도와 나의 방향으로.
-끝-
마치며..
고작 위 하나 떼어낸 주제에
삶의 통찰을 쓰는 것이 맞을까를 고민하다가
이런 생각을 했어요.
저와 같은 일반인의 깨달음이 오히려 도움이 되지는 않을까 라는 생각으로 솔직하게 저만의 사유를 잡아서 기록해 보았습니다.
읽는 분에게 진심이 닿을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매 글 읽고 라이킷 눌러주시는 독자분들께
머리 숙여 감사인사를 올립니다.
진심으로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이제 건강을 노력하며
다음 연재는 재미있는 연재로 인사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