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결혼하고 처음으로 가족초대를
받았다. 다름 아닌 나와 친한 선생님 댁이었다.
나보다 두 살 많은 선생님이지만
학교에서는 내가 선임이었기에
우린 친구처럼 지낸다.
우리는 쌤 아니면 여사님이란 호칭을 아니 애칭을 한다. 쌤은 나에게 소개해 주고 싶은 지인들이 있다며 구태여 멀리 사는 나까지 남양주로 불렀다. 난 첫째를 뱃속에 안고 남편을 끌고 남양주까지 갔다. 왜냐하면..쌤이 정말 요리를 잘한다 ㅋㅋㅋ
모인 자리에는 우리 부부, 쌤부부, 그리고 두 부부가 더 있었다. 사실, 한눈에 알아볼 정도로 인상이 후하고 좋은 느낌은 아니었다. 그러나 다들 호의적이었고 좋은 분위기에서 가볍게 한 잔씩 하며 대화가 오고 갔다.
대화의 주는 아이였다.
당시 뱃속에 첫째를 가지고 있던 나를 위해
물꼬를 트는 대화였다.
아이는 뱃속에 있을 때가 제일 좋은 거라고.
그다음은 잘 때가 행복한 거고.
그다음은 학교 갈 때가..
그리고 나갈 때가 행복한 거라고.
이 심오한 얘기가 내 체험으로 될 거라고 그땐 미처 상상하지 못했다.
두 부부 중 한 부부는 전사장님네라고 불렸고 우리도 그렇게 불렀다.
전사장님은 6살 아들을 데리고 왔었다.
육아 이야기가 한창 무르익을 때쯤 전사장님은
“나도 내가 아빠노릇 한지 1년밖에 안 됐다고.
아빠나이 한살이라고.
내가 어릴 때 아빠가 없었어서
아니 있어보질 않아서
어떻게 하는지 몰랐다고.
뭘 받아봤어야지 알지.
어떻게 하는지 몰라 한참 고생했었다고.
책도 보고 와이프도 고생했었다고.
이제야 쪼금 알 것 같다고. “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다음 이어진 말은
“그렇잖아요. 애비 없이 자란 자식이 또 애비 없는 것처럼 키울 순 없잖아요? “..
분위기는 동조하며 위로하며 첨언하며
더 고조되어 갔다.
나만 잠깐의 정적이 있었을 뿐..
와~~~ 이 분 정말 멋진 분이다!
그 모임 이후 난 이 생각이 일주일을 지배했건 것 같다. 자기의 자격지심을 이렇게 자신 있게 드러낼 수 있는 그 전사장님의 내공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아빠 없이 컸지만 난 아빠 노릇을 잘하고 싶노라’고 선포하는 듯한 마음이 느껴졌다.
그 후 나의 작은 변화가 시작됐다.
받아들임. 인정. 그대로 둠. 알아차림.
이런 것들이 아름답다고 생각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때였다!
내가 자격지심에 대해 생각하게 된 시점!
그간에 풀리지 않았던 인간관계들과
마음 상한 일이 끝끝내 풀리지 않았던 순간들이
생각나면서..
자격지심!
누구나 다 있다고 생각한다.
정도의 차이, 드러냄의 차이이지..
완벽한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나는 아니 누구나 만날 것이다.
자격지심으로 똘똘 뭉쳐 있는 사람,
자기의 자격지심을 숨기기 위해 자신을 포장하여 자신을 더 외롭게 하는 사람,
자기의 자격지심을 인식조차 하지 못하는 사람 등..
나는 가끔 위의 경우에 사람들을
내 주변에서 보면 마음이 많이 아프다.
그리고 말해주고 싶다.
자격지심은 숨길 수록 더 자라나니,
드러내고 편안해지라고.
그들의 마음속 평안을 위해!
완벽하게 살 필요는 없지만..
마음 편안하게 살 권리가 자신에게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