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아직 오지 않은 봄을 기다리는 어느 날..
3월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난 꿈을 꾸고 있었다.
내가 중학생이 된다는 설레임으로 가득한 채..
이제 내가 꼭 어른이 된 것만 같고.. 아니 될 것만 같고..
이제 나의 꿈을 펼치는 시작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 시절 보는 드라마에서는
판사가 가운을 입고 앉아서
판사봉을 두드리는 건
정말이지 내게 너무 멋져 보였고
검사와 변호사라는 직업에 대해서도 알게되면서
꿈을 갖고 싶던 내가..
이제 꿈을 가져도 될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어디서 본 거라도 있었던 걸까?
난 엄마에게 내 꿈을 멋~지게 얘기하고 싶었다.
마치 자랑이라도 하듯..
아니면 호언장담의 허세라도 부리듯..
엄마와 외출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경기도 어느 빌라를 지날 때 였다.
엄마에게 난 “엄마 판사는 어떻게 되는 거야?”라고 물었다.
엄마는 한 쪽 콧구멍을 막고
세게 흥~하니 또 다른 콧구멍에서 노란 정체가 튀어나가 땅에 떨어졌다.
그리고 엄마는 “그런건 저 위에 있는 사람들이나 하는 거야”라고 했고
그 말을 못알아 들은 나는 “위에 사람이 있어?”라고 물었다.
엄마는 답답한 듯 빨리 얘기를 끝내고 싶은 모양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잘사는 집안에서 태어나서
좋은 교육 받은 사람들이 하는 거야.
그러니까 넌 꿈도 꾸지 마!”
엄마는
학자이신 외할아버지의 장녀로
아니 돌아가실때까지 손에 물 한방울 안 묻히신
외할아버지 덕분에
여자라서 배움이 허락되지 않았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갖 설움과 고생으로 집안의 장녀 역할을 하시고
우리 삼형제를 헌신으로 키우신
사랑많고 아직도 소녀감성을 가진 할머니가 되었다.
그때 내가 받은 충격은 뒤통수를 맞은게 아니라
위에서 누가 세게 누르는..
아니 아니 아주 좁은 우물에 빠진
현기증나는 기분이었다.
그 때의 엄마의 몸짓과 말투…
그리고 그 때의 내 기분이..
아직도 아주 정확하게 기억난다.
내가 태어난 이 곳이 좋은 곳은 아니구나..
어린 난 이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었고..
단념하는 걸 이 때 처음 배웠는지도 모르겠다.
그때의 기억이 내 의식에 영향을 미친걸까?
난 계획을 하지 않는다.
난 단지 주어진 일을 한다.
주어지는 하루를 살고 주어지는 관계를 맺는다.
뭔가 새로운 것에 도전하지 않지만..
절대로 피하지는 않는다.
아무리 힘든 일도 그 어떤 일도 피하지 않으며
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사람 잡지 않는다.
이런 나의 장점으로는
일을 함에 있어 피하지 않고
어떤 일이든 해내는 습관이 있다.
이건 내게 ‘그냥 해야 하는 일’, ‘피할 수 없는 일’, ‘당연히 하는 일’이다.
이런 나는 초,중,고,대학교까지 모두 개근이다.
어릴적 허약해서 아픈 적도 있었고 가기 싫은 날도 있었다.
그러나 난 가야만 했다.
무서웠던 아빠는 항상 이렇게 말했다.
‘아파도 학교가서 아파!’
이 말에 난 토를 달수가 없었다.
이건 나에게 어떻게 해서라도 마쳐야 한다는 그런 관념으로 자리 했으리라..
이걸 지금의 나의 성실성의 베이스라고 하고 싶다.
20대 후반 나보다 10살 이상씩 많았던 지인 분들이
나에게 이런 말을 했었다.
‘넌 삶의 태도가 다르다고..앞으로 잘 살꺼라고..’하며
당신의 친동생을 소개해 주시기도 했다.
난 이때 이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다 나처럼 생각하고, 나처럼 자라서, 나처럼 사는 줄 알았다.
세상에 이처럼 다양한 생각을 하고 다양한 처지에 사람들이
다양한 형태로 산다는 걸.. 아마..난 결혼을 하고 안 것 같다.
한때는..이게 불행이라 생각했지만..
불혹을 넘어 성숙이라는 걸 하고나니
이제 나의 지천명이 너무 기대된다.
이제와서 엄마를 원망하거나 탓하지 않는다.
그 배움으로 그 힘든 과정을 겪으신 안타까움..ㅠ
그때 그렇게 사셨던 엄마가 안쓰러운 마음이 더 크다.
아니 엄마는 지금도 높으신 분들은
뭔가 다른게 있다고 생각하신다.
나는 이제 엄마와 그 높이에서 대화하는 게 좋다.
이런 내가 요즘 고민이 있다.
난 한 번도 계획을 하고 최선을 다해보지 못한 것 같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난 단 한 번도 일등을 꿈꿔본 적도
하고 싶은 적도 없었다.
왜일까?
운전면허도 아침에 대충 보고는
커트라인에서 10점 넘기는 정도로 합격.
매 번이 이런 식이지 않았나 싶다.
99도와 100도의 차이를 아는가?
끓지 않은 물과 끓은 물의 차이!
98도까지 올랐다고 한들..
고작 2도가 부족해 끓지 못하고
못 먹는 물이 되어 버린다.
항상 난 87도에서 멈추고..이 정도면 됐어!를 하고
93도에서 멈추고..나 열심히 했어!를 했었다.
주어진 일을 줄이거나 안 하지는 안았지만
단 한번도 최선을 다해 해 본것 같지 않다.
심지어 공부도..지금의 요리까지도..
뭔가에 최선을 다하지 못하는 내가
내 아이에게 최선을 다하는 법을 가르치고 싶다.
꿈을 잘게 잘라 계획을 세우고
그걸 세분화 해서 최선을 다하는 실천을 하게 하고 싶다.
요리도 항상 대충하는 내가..
그런 엄마를 보며 자라는 아이가 그걸 배울 수 있을까?
난 아이의 거울이 되어 주고 싶다!
욕심일까?
불가능일까?
아님 나의 자격지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