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시절..
‘놀랠 노’ 자를 매일 외쳤더랬다.
보통 남녀가 극과 극이 만난다지만..
이건 뭐.. 모서리와 모서리가 만난 거였다.
친정 엄마와 남편이 만나면 배틀이 붙었다.
“나는 국민학교 때부터 7리를 걸어 다녔어 “
라는 장모님께 이에 질세라..
”장모님! 저는 10리를 걸어 다녔어요 “라고
자랑하는 남편.
뭐야? ‘리???‘
리를 왜 걸어 다녀?라고 말하는 나는
안드로메다에서 온 여자 취급을 받았더랬다.
우리의 결혼은 만남에서 결혼까지 총 7개월.
그 시작은 첫 만남일! 그날이 문제였다.
소개팅을 하기로 하고
남편과 나는 만남의 약속을 문자로 주고받았다.
너무 잦은 소개팅에 지친 나는
나가기가 너무 귀찮았다.
그래서 약속 장소를 내가 가기 편한 곳으로
바꾸었다.
그것도 만나기 전 첫 만남의 장소를
내 맘대로 바꿔서 문자로 통보하듯..
그리고 만남 첫날.
약속시간이 다가오고..
우린 비슷하게 도착한 듯했다.
그런데..
만나기로 한 패밀리 레스토랑이..
글쎄.. 이전한 것이었다!
순간 당황~~~
헉! 내가 정한 장소인데 이를 어쩌지?
이전 안내문이 있는 문 앞에서
남편을 처음 만났다.
“어떡하죠?”
당황한 얼굴로 묻는 내게
”딴 데는 없어요? “라며 ‘요’ 자를 올리는 그.
어디서 많이 들어본 억양인데..
맞다! 개콘! 개그콘서트 같은데서 사투리 유머!
난 나도 모르게 “지방분이세요?”라고
물었고 (이때까지만 해도 각 지역의 사투리를 구분하지 못했기에..)
남편이 “티 나요?”라고 답하는데..
순간적으로 너무 웃겨서 참느라 콧물이 튈 뻔했다.
누가 들어도 끝을 올리는 어색한 사투리의 표준화.
난 정말 빵 터트려 웃고 싶은 걸
간신히 참느라 아랫입술을 꼭 깨물었다.
그리고 갈 곳을 찾는데
차가 막혀 두 시간이 걸렸다고 말하는 그.
‘아~나~참~ 미안하게시리..‘
라고 생각됐지만..
“배 고프시겠어요? “라고 묻는 내게
배고픈 표정을 드러내는 그.
그렇게..
잘 모르는 동네에서 밥집을 찾게 되었다.
그러다 간 일식집.
초밥은 왜 이리 빨리 나오는지..
정말 초밥을 먹는데 20분도 안 걸린 듯했다.
그리고.
밥 먹으며 내게 뭐를 좋아하냐고 묻는 그.
난 별생각 없이 말했다.
”장어 좋아해요. 아님 산낙지? 순대국밥?
전 그런 거 좋아해요~”
이렇게 말한 데는 이유가 있다. 고단백을
좋아해서 실제 좋아하는 음식들이기도 하지만,
얌전해 보이는 내 외모가 나 스스로 불만이었던 탓도 있었다.
하얀 얼굴에 염색하지 않아도 갈색머리. 누가 봐도 까르보나라 먹게 생긴 외모에 부담을 느낄까 약간의 배려도 있었다.
그는 젓가락 놓기가 무섭게 일어서며
장어를 먹으러 가자고 했고
우연인지 정말 그 동네에 장어집이 있었다.
그리고 그곳을 들어간 우리.
주문을 하고 앉았다.
그런데 맥주만 나왔을 뿐 한참 동안이나
음식이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큰소리가 났다.
돌아보니 사람들끼리 싸움이 붙은 것이다.
그 상황에 남편은 조용히 맥주값만 계산하고
나를 데리고 나왔다.
아이 덴장~ 줸장~ 오늘 정말 꼬이네~
라는 생각이 들어 짜증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런 내게 “산낙지 먹으러 갈까요?”라며
그냥 헤어질 수 없음을 얘기하는 듯했다.
산낙지에 소주를 시켜 야외테이블에
앉은 나는 산낙지에 소주를 마시며
짜증을 풀듯 약간의 취기와 함께
재미난 얘기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의 질문.
“내일 만날 수 있어요?”
한참 내가 신나게 얘기하는 도중에 말을 끊고!
“아~ 알았어요. 알았어요”
대충 마무리하고 또 말을 이어 나갔다.
그런데 또 그의 질문.
“내일 몇 시에 만날까요? 11시?”
(‘아놔~ 이 세끼~ 내 얘기 안 듣고 있었던 거야’
속으로는 요래 말하였지만..)
“네? 아침에요? 일요일은 늦잠 자는데..”
왜냐하면 지난주 했던 소개팅 남이 애프터를 해서
다시 만나기로 했었다. 그런데
“그럼 12시 어때요? “라고 재촉하듯 물어 왔고
“아~ 네 네~”라고 귀찮은 듯 말했다.
그리고 소개팅에서 뻔한 대화들..
왜 이때까지 결혼을 안 했냐고 묻길래
안 한 게 아니라 못 한 거라고 말했더니
그럼 자기랑 하자고 말하는 그.
내가 꽃뱀이면 어쩌려고 그렇게 알아보지도 않고
결혼하자고 하냐니까..
만일 꽃뱀이어도 자기 선택이니 자신이 책임지겠다고 말하는 그.
그리고 정말 다음날 10시에 전화가 오고
집 앞에 차가 11시부터 대기였다.
그렇게 시작된 첫 만남일에서
결혼까지 7개월이 걸렸다.
그랬던 그가..
신혼집에서의 첫 부부싸움이었다.
어느 부부와 마찬가지로 기억도 안나는 일로
옥신각신 몇 마디 다툴 때였다.
아직 신혼인지라.. 싸움의 시작은
볼일 보고 물을 안 내리는 거에 대한 잔소리
아니면 양말을 벗어 화장실 앞에 둬서 한 잔소리
아니면 밥 차려놓고 기다리는데
떡볶이 순대 튀김을 잔뜩 사가지고 왔거나
뭐.. 이런 시답지 않은 것들 중 하나였었다.
보통의 싸움에서는 내가 두 세 문장 얘기하고
남편은 대답만 하고 끝나는 형태였다.
그런데 남편이 콧방귀와 함께 내뱉은 말..
“내가 응 그 뭐야.. 그.. 뭐? 와인의 눈물?
아니 아니.. 신의 물방울?
그거까지 읽었어.. 나.. 참..”
자랑하는 말투인지 화내는 말투인지
순간 구분되지가 않았다.
앞뒤 없는 이 문맥이.
처음엔 한참을 생각했다.
신의 물방울 읽은 걸 왜? 지금! 나한테 말하지?
와인 좋아하는 나 때문에 연애시절에
우린 와인 마시러 자주 다녔다.
그때마다 남편은
가성비 와인으로 칠레 와인을 고르기도 했고
피니쉬 좋은 비싼 이태리 와인을 사주기도 했고
까베르네 쇼비뇽이 제일 잘 맞는 거 같다는 둥
와인의 품종도 함께 얘기했었다.
그런데..
지금 이 말은
아니 이 뒷말은
‘내가 당신 만나려고 그런 와인 만화책까지
읽어가며 노력했고.. 이제 잡힌 물고기에는
밥을 주지 않겠다’라는 통보???
오 마이갓!
순간적으로 남편의 진심을 알아버렸다.
난 완벽하게 속!았!다!
가슴이 벌렁댔지만
모든 사람들이 그렇듯 ‘아닐 거야’란
기대심리 아니 환상심리가 날 지배하게
내버려 두었다.
하나님! 부디 제발.. 이란 심정이었을까.
남편은 한 번 꽂힌 건 해내는
집념의 사나이였다고 해야 할까?
그것도 처음 듣는 지방인 안! 동! 에서 태어난..
몰랐다. 안동이란 곳도.
이제 안다. 모르는 건 죄라는 걸.
이날의 부부싸움의 끝은 이러했다.
“아니 왜 자신을 속여가면서까지 연애를 하냐고..
누가 결혼 하재?”라는 내게
남편이 불같이 화내며 이렇게 소리쳤다.
”안 그랬으면,, 당신이 날 만났겠어? “
뜨악..
어이가 먼지털만큼도 남지 않고 사라졌다.
헉.. 이게 과연 나에게 화 내며 할 말이란 말인가..
아마 어이도 화가 나서 냅다~ 뺀듯하다.
난 정말 아무 말도 못 하고 부부싸움은 이렇게 끝이 났다.
그러나 이것은 신호탄에 불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