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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날현 Jul 10. 2024

이 씹세야~!


결혼 전.

대학로 한 극장.

소개팅 남과 두 번째 만남.

연극을 보고 있었다.

연극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당연하지. 지난달에 봤던 연극이기에..

소개팅남의 제안에,

친절을 가장한 거절 못하는 병에 걸려

처음 보는 마냥 기뻐하며 다소곳이

그렇게 무대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런데

대각선 사선에서 날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그가 있었다.

지난달 이 연극을 같이 보았던 그.

그 옆에는 나 아닌 다른 여자와 함께.


그.

지난달 W호텔에서 열렸던

듀오 노블레스 파티에서 만났던 그였다.

그에게 에프터를 받았을 때에도

이 극장에서 연극을 봤었다.


30대를 들어서면서

교수라는 타이틀로.. 또 여러 가지 이유로..

난 50% 할인받는

듀오 노블레스 멤버가 되어 있었다.


맞다.

듀오 노블레스에는 실제 ‘사’ 자 들이

8~90%의 비중이었다.

의사, 한의사, 변호사, 변리사, 수의사,

검사, 판사, 교수, 회계사, 연구원 등등


‘아~이 씨~.. 이 남자~ 왜 또 여길 온 거야?

뭐야? 코스였어?‘

서로의 민망함은 그도 나도

티 내지 않음으로 마무리했지만

거의 매주 하는 소개팅에 그도 이골이 난듯했다.

(아직 A병원 정형외과에 있으려나?

아님 이 글을 읽고 있으려나?^^)


이때까지만 해도

나의 남은 모든 일상은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으리라~

그런 허무맹랑한 생각을 했었다.


그래. 이런 허무맹랑한 생각을 하던 때가

있었다란 것에 감사하자.

근데 왜 글쓰기도 전에 슬픈거야..덴장 ㅠ




두 번째 부부싸움에서였다.

우리 집이 부잣집은 아니었지만

나름 곱게 자란 나였다.

결혼 전날까지 내가 마신 물컵도 담가놓는..

결혼하고서 제일 재밌는 건

음식 하기, 설거지 하기, 정리하기..

뭐 이런 것들이 재미있었었다.

처음이라.. 처음에만!

한 3개월 하고 알았다. 체질에 안 맞다는 걸..ㅋ

그걸 알기 전 내가 하는 요리가 신기하고 맛있었다.

마치 내가 장금이가 된 것 같고 ㅋㅋ


남편이 도착하기 전 된장찌개도 끓이고

생선도 구웠다.

생선은 당연히 베란다에서 구웠다.

신혼집에 냄새 밸까 봐 베란다에서

버너를 켜고 쭈그리고 앉아서..

남편이 도착하고 생선이 펼쳐진 식탁 앞에서

난 자랑하듯 콧소리 한 방울 추가해서

“오빠~ 베란다에서 생선 구웠더니

다리 저려요. “

남편 왈 “누가 하래?”

헉!

‘아니.. 오빠 내가 남편 밥상 열심히 차리느라 힘들었으니까 나부터 안아줘~’ 이렇게 똭~ 오픈해서 얘기했어야 됐나 싶었지만.. 이미 빈정님이 기분 상하셔서 떠나고 없었다.

일단~ 같이 밥 먹어야 하니 패스 하자.


식탁에서 밥을 먹으며

“오빠 맛있죠?”묻는 내게

“먹을만하네~” 라는 눈 맞춤 없는 대꾸.

순간 눈동자 뒤에서 열기가 올라오며

눈알이 튀어 나갈 것 같은 열감을 느꼈다.

이상하다.

다섯 글자보다 ‘응’ 한 글자가 더 편할 텐데..

그게 힘드나?


연타였다.

참을 내가 아니었다.

아니 참을 시기가 아니었다.

에너지 넘치는 신혼 아니던가..

밥을 먹는 건지, 마시는 건지,

5분도 안 걸리는 그의 식사시간.

대꾸 없이 아무 말 없이 TV앞 소파로 가는 그.

밸이 꼬인 나머지 몇 마디 했었더랬다.


그러자 남편.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며 하는 말.

“난 당신 학생이 아니에요!”

순간..

난 얼음이 되었었다.

(이때부터였다.

남편이 화를 내면 난 대꾸하지 않는다. )


그렇다.

박사논문을 쓰기 전에 결혼하는 죄인이라

지도교수님께 신랑 될 사람과 같이

인사를 갔더랬다.

식사를 마친 교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우리 임선생이 윤대표를 조교나 과대 대하 듯해도 이해하세요. 그럴 수 있어요.”

그리고 나에게도 말씀하셨다.

‘항상 배운 사람답게 행동하라고. ’

이 두 문장은 우리의 결혼 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특히 내 마음속엔 더더욱.


다음날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아니~ ‘맛있지’에 ‘응’이라고 대답하는 게 어려워? 그게 그렇게 어려운 거야?”라는 내 질문에

친구가 대답했다. ”가르쳐야지. 울 신랑도 똑같아. 이 아메바들은 가르쳐야 해. “

”아니 무슨.. 자기가 십 대야? 가르치게?

중학교 안 나왔데? 중학생도 알겠어.

정말 수준이 딱 십 대야~

아놔~ 씹떼끼! 증말 욕 나와~“

그러다 탄생한 단어 씹세~!

발음에 유의해야 한다 띱세~!

th발음으로 묵음처리하여.

욕이지만 욕 같지 않게!

욕하고 싶을 때 애정을 담아서!

나으 애칭 ‘나으 씹세~!‘

(새의 이름인듯 십대의 대표인듯 하지만

감정을 더하면 씹세X가 되는 단어.

하지만 감정을 빼면 아주 적절한 애칭 되시겠다!)

남편에게 화가 나면, 대꾸하지 않는 대신

속으로 이렇게 외친다~

이 씹세야~ 오~ 나으 씹쎄야!!!





우리 씹세를 가르치는데 5년 걸렸다.

2018년 jtbc 미스티를 보며

“오빠 김남주가 이뻐? 내가 이뻐? “

그러면 0.1초도 안 걸려서

“당신!”이라고 답한다.

휴.. 이상하게~~ 기분이 나쁘다.

“아니.. 오빠! 좀 몇 초 쉬었다가.. 대답해야지!”

(마음속 묵음처리하여..‘야~~~ 이 씹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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